코로나 중증화 후엔 열에 여섯 사망... 공공 의료 인프라 확충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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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석 차례를 기다리던 투석환자가 폐에 물이 차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바닥에 쓰러졌다. 이후 의료진이 긴급 투석을 하는 모습. 2021년 12월 17일 SBS 뉴스 갈무리. | |
ⓒ SBS 뉴스 |
지난 3월 19일 강원도에 거주하던 투석환자 A(67)씨가 병상을 찾다가 사망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뒤다. 확진 당일 가족이 도내 병원, 보건소 등을 하루 종일 수소문했지만 투석 가능한 병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니던 병원은 확진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투석을 거부했다. 상태가 위중해진 A씨는 다음 날 밤 서울 김포 소재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유석현(63) 신장장애인협회 성남지부장은 "그나마 언론에 알려진 경우"라고 말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투석환자는 훨씬 더 많을 거라는 추측이다. 유 지부장은 성남시에 사는 협회 활동회원 200여 명과 소통한다. 이 과정에서 전해 들은 사망 사례는 7명 정도다. 그러나 성남시에 거주하는 전체 투석환자는 1700여 명이다. 전국 투석환자는 10만 명가량이다.
투석환자는 감염병에 취약한 대표적인 고위험군이다. 면역 기능이 저하된 환자가 많아 확진시 일반인보다 사망률이 75배가 높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취약하다. 특히 주 3회 일정하게 투석을 받아야 하는데 정해진 날보다 2~3일만 늦어도 상태는 손 쓸 도리 없이 악화될 수 있다. 하루 성인 소변량이 2000cc라면, 투석을 못하는 날 수만큼 이 양이 몸 속에 쌓이고 요독도 쌓인다. 폐에 물이 차면 호흡곤란이 오고 심장까지도 물이 차 사망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원아무개(43)씨는 안타깝게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투석환자는 월·수·금이나 화·목·토로 주 3회 투석을 받으면 주말엔 하루를 더 투석 없이 견디게 된다. 원씨 어머니는 주말에 종종 호흡곤란이 오곤 했고 그때마다 119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 처치를 받았다.
이 체계가 코로나 2년 간 끊겼다. 호흡곤란은 코로나 증상 중 하나다. 지난 2년간 응급실이 있는 모든 지역 종합병원이 호흡곤란 증상을 이유로 원씨 어머니를 받아주지 않았다.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음성이면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과는 검사 하루 뒤에 나왔다. 그래서 원씨 어머니는 거의 2년 간 물과 음식 섭취를 줄였다. 언제 위급해질지 모르니 아예 매주 2~3회씩 PCR 검사를 받아 '음성 결과지'를 준비해 놓기도 했다.
기존 병원이 이 사연을 알게 돼 '음성 결과 없어도 아침 7시 병원 문 열자마자 투석해드리겠다'고 배려해줬다. 그래서 새벽녘 호흡곤란 증세가 오면,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 앞에 가 서너 시간을 119 산소호흡기로 버틴 뒤 오전 7시에 들어가곤 했다. 원씨는 "그러나 지난 11월 그날엔 어머니가 버티지 못했다. 투석이 가능한 7시가 되기 30분 전인 6시 30분 숨을 거두셨다"며 "평소 문제없이 넘겨온 일이 코로나 시기엔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병상 배정 체계 붕괴, '살려 달라' 상담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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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장애인이 투석을 받고 있다. 투석실은 보통 밀집된 공간에 20~30명이 함께 투석을 받는다. | |
ⓒ 한국신장장애인협회 |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든, 의료 전달 체계 붕괴로 인한 사망이든 투석환자의 사망 건수는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이영정 신장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신장질환자는 질병 코드가 있다. 지난 2년 간 투석환자 사망 통계를 최근 질병관리청에 요청했으나 '관련 자료는 없다'는 답을 받았다"며 "대한신장학회와 대한투석협회에도 문의했으나 자료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적었던 2020년 3월까지 질병청은 사망 통계에 기저질환을 같이 공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신장장애인협회가 2020년 2~3월 사망기록을 조사한 결과 총 사망 158명 중 15명의 투석환자가 확인됐다. 실제 협회엔 지난 2년 간 '병상 좀 찾아 달라',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투석환자 전화가 빗발쳤다. 협회가 전자파일로 기록해놓은 상담 건수만 최소 71건이다. 협회가 코로나 이후 투석환자 사망률이 대폭 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다.
지난 2월 대한신장학회가 2020년 2월~2021년 11월 총 206개 의료기관의 코로나 확진 투석 환자들 예후를 조사한 결과 380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이 중 85명(22.4%)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인 확진자의 코로나 감염 사망률 0.3%보다 75배 높다. 투석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경우 사망률은 64.7%로 급증했다.
유 지부장은 사회적 고립감에 따른 자살 문제도 거론했다. 지난해 가을 숨진 한 성남시 투석환자 사례다. 유 지부장은 "투석 날 환자가 보이지 않으면 병원은 신장장애인협회에 연락을 준다. 수소문 과정에서 사망자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울증으로 자살한 환자가 있었다"며 "적지 않은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고 일상생활도 쉽지 않다. 여기다 (고위험군은)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니 집에 박혀있기도 하는데, 사망자 집에 투석환자들은 보통 멀리하는 술병, 담배가 쌓여 있었다 한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기록된다"고 전했다.
정부, 코로나 유행 2년 지나 병상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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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카페 "신장병 환우 모임" 관련 공지사항 갈무리. | |
ⓒ 신장병 환우 모임 카페 |
투석 병상이 본격적으로 확충된 시점은 지난 2월이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후다. 2년 동안 투석이 가능한 음압 병상이 있는 병원은 전국 11곳(64개 병상)에 불과했다. 확진자가 외래 투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전국 2곳이었다.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하자 투석환자 등의 전담 병상을 확충했다. 지난 3월 28일 기준, 음악 투석 병상 운영 기관은 89개소, 외래 투석 센터는 318개로 총 624개 병상이 있다.
그동안 투석환자들은 공포를 감내해왔다. 지난 3월 확진된 투석환자 천아무개(63)씨는 병상이 언제 배정될지 몰라 사흘간 물도 입에 대지 않고 환자용 영양제 음료만 먹고 사흘을 버텼다.
지난 2월 이아무개씨는 다니던 병원에 확진 투석환자가 입원하면서 다른 병원의 병상을 배정받기까지 7일이 걸렸다. 투석환자들은 보통 4~5일을 버틸 수 있는 한계라고 말한다. 이씨는 투석을 막 시작한 환자라 다행히 견딜 수 있었다. 지난 4일 확진된 수원의 한 투석환자는 병상 배정에 4일이 걸리는 동안 자가호흡이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현재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있다.
이동권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확진자나 자가격리자 모두 방역을 위해 자가용을 타거나 보건소 운용 차량이나 구급차 등 지정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자가용이 없어 사설 구급차나 방역 택시를 타야 할 경우 비용 부담이 막대했다.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입국해 격리 대상이었던 50대 투석환자는 거주지인 평택에 병상이 없어 서울을 가야 했는데 25만 원을 이동비로 내야 했다. 격리 2주 간 6회 투석에 150만 원이 들었다.
부산에 사는 투석환자 서아무개(51)씨는 "확진된 때 투석 병원을 가기 위해 방역택시를 알아보니 왕복 이동에 12만 원을 불렀다. 너무 비싸서 이용할 수 없었다"며 "마침 자전거가 있어 자전거를 몰고 갔다. 왕복 2시간 걸렸다. 갔다 오면 몸살에 걸려 열이 38도까지 올라, 투석받는 날엔 매일 타이레놀을 먹고 잤다"고 말했다.
투석환자들은 연락이 어려운 보건소나 정부기관보다 환자 커뮤니티를 찾았다. 신장질환자들이 가장 많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신장병 환우 모임'엔 "보건소가 연락이 안 된다", "전화 100통을 돌려도 투석 병상을 찾지 못했다", "투석 못 한 지 벌써 4일째다" 등의 글이 매달 십수 개씩 올라온다.
카페는 환자들의 정보를 모아 '확진자도 투석이 가능한 병원' 목록을 직접 정리해 공개했다. "보건소·시청엔 전화가 안 되니 모든 가족을 동원해 긴급함을 알리고 직접 보건소를 가서 통지해도 된다"며 "병상이 확충됐다는 뉴스와 실재는 다르니 전투적으로 임하셔야 한다. 전쟁과 같다"라고도 공지했다.
"필요한 시·군마다 거점 병원 마련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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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사진 | |
ⓒ 성남시의료원 |
이영정 신장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이 같은 혼란의 이유로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2020년 2월부터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국회, 각 지자체, 확진 투석환자가 발생한 보건소 등 유관 기관을 망라해 찾아갔다.
투석환자가 위험하다며 ▲ 지역 거점 전담 병원 지정 ▲ 격리 투석 병상 마련 ▲ 비확진 자가격리자에 대한 투석 병상 배정 방법 마련 ▲ 이동권 보장 등을 전화·공문·면담·성명 발표 등으로 재난 초부터 지금까지 요구했다. 2년 후 격리 투석 병상과 외래 투석 병상에 한해 대책이 마련됐다.
최근의 병상 확충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라는 비판도 있다. 유석현 지부장은 "병상이 확충됐다고 하는데 투석환자들이 체감을 못한다. 병상이 부족해 배정까지 오랜 시간이 자꾸 소요되고, 사립 병원은 확진자·격리자를 계속 거부하고, 전화를 수십 통 돌려야 하는 상황이 마찬가지기 때문"이라며 "확진자가 병상 확충 속도보다 늘어서"라고 추측했다.
투석환자들은 2015년 메르스 감염병 이전부터 지역 거점 병원 지정을 대안으로 주장해왔다. 투석 의료 수요가 있는 지역이라면 최소한 시·군 단위마다 하나씩은 투석환자를 위한 거점 병원이 있어서 감염병 등의 상황에서 원스탑으로 병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공의료원을 단기간 내 설립할 수 없다면 현재 설립된 지역 의료원에라도 인프라를 구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병상을 찾다 사망한 강원도 투석환자 사례를 두고는 의료 취약지가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까지도 '1시간 내에 투석 병원에 접근할 수 없는' 혈액투석 취약지는 37곳이 넘었다. 강원도 기초지자체가 9곳으로 가장 많았다. 속초, 영월, 평창, 정선,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양양 등이다.
어머니의 투석 생활을 6년 간 지켜본 원씨는 "메르스 감염병 때도 관련 의료 체계를 정비한다고 했지만 전혀 안됐다"며 "투석환자는 병상 배정이 생명과 직결된다. 언제 감염병이 또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문제를 다시 겪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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