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2-04-04 04:59수정 :2022-04-04 09:25
오는 7일 <100분 토론>에서 성사될 가능성
“지금까지 정치권 장애인 문제 회피해와”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지하철 시위를 진행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이를 공격해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조만간 얼굴을 맞대고 토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장연이 이 대표에게 ‘조건없는’ 100분 토론을 제안하고, 이 대표가 ‘전장연이 상당 기간 시위를 중단하면 만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현재 문화방송(MBC)이 <100분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토론을 하자고 전장연과 이 대표 쪽에게 제안한 상태다. 양쪽의 의견이 모이면 7일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
20년 넘게 거리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쳐온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에게 주요 정당 대표와 장애인 의제를 가지고 공개적인 토론회를 가지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 21년간 장애인 문제를 회피해온 정치권에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토론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ㅡ이준석 대표의 전장연 비판 이후 더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온라인으로 ‘세상의 모든 저주는 장애인에서 비롯됐다’, ‘저주 받아야 할 장애인이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다. 요즘엔 평소 이동할 때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를 알아보고 욕하시는 시민분들이 많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고. 전화는 모르는 번호는 안 받고 있다. 하도 욕하는 전화가 많이 와서 하나하나 대응하기가 힘들다.”
ㅡ공개적인 토론은 왜 필요한가
“이준석 대표는 정치인으로 토론의 경험도 많고 말하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론 인터뷰는 해본 적은 있어도 방송에서 토론을 해본 적이 없다. 토론하고 나서 (장애인 단체가) ‘또 공격받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에 응하겠다고 한 건 우리가 지하철 시위를 멈추고 삭발 투쟁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승리했다’는 표현을 쓰더라. 사과 요구에도 이 대표는 ‘사과 안 한다. 사과 할 일 없다. 사과해야 할 근거를 이야기해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전장연이 성명서를 쓰는 것보다 (이 대표와) 직접 만나서 ‘왜 이 대표가 사과해야 하는지’ 이유를 국민들 보는 앞에서 하나씩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한 장애인권리 문제 등에서 보여지는 이 대표의 태도를 보면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국민들의 신뢰를 쌓고, 국민통합을 생각해야할 차기 집권 여당의 책임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ㅡ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①이준석은 장애인을 혐오하는가 ②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토론 ③서울지하철 출근길 투쟁은 적절했는가 토론 주제를 제안했다.
“이준석 대표가 제기한 주제는 큰 틀 속에서 3가지 주제다. 혐오의 문제, 정책의 문제, 방식의 문제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다. 지하철 시위에서 우리는 이동권 문제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장애인권리 예산을 확실하게 반영하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이동권을 포함한 노동과 교육, 탈시설 문제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 이것도 토론했으면 한다. 장애인의 삶의 문제는 이동권뿐만 아니라 교육과 노동 다 연관이 되어 있는데 왜 (이 대표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만 이야기 하는가
.”(※이준석 대표는 지난 1일 탈시설을 반대하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와 간담회를 열어 탈시설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전장연을 에둘러 비판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지역사회 지원체계 없는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에 반대하며 탈시설정책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간담회 뒤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논평을 내어 “이준석 대표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이다. 발달장애인 지원의 부재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죽고, 죽음을 선택하는 비문명적인 상황에서 탈시설 정책을 재고할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으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가 더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며 탈시설 문제를 장애인단체 갈라치기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ㅡ앞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장연과 만나 이 대표의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겠다고 약속한 것을 두고 지난 2일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권위가 이준석이 장애인 혐오를 했다고는 말 못 하니 무슨 사회적 영향을 밝히겠다고 하는지 기대합니다만 신속하게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상대방을 때리면서, 갈라치기하는 정치 행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동권과 관련해서 장애인단체와 이야기하면 되는데, 다른 이들을 쭉쭉 끌어당기면서 갈라치는 방식이다. 그게 이번엔 인권위이기도 하고.”
ㅡ이번 토론으로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많이 논의됐으면 좋겠는지
“이번 토론에서 이준석 대표뿐만 아니라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을 향해 강하게 비판하고 싶다. 정치권과 국가는 지난 21년 동안 장애인 문제를 철저하게 회피해왔다. 이 토론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건 정치와 국가의 책임 아래서 장애인 정책들이 우선적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장애인 정책을)‘특혜다’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이동의 문제를 특혜라고 이야기하는 사회라면 반대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지금까지 장애인들을 권리 속에서 배제시킨 사람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지하철 타다가 떨어져 죽었던 사람이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안전하게 타고 이동했던 사람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런 것들조차도 정치권이 책임 있게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잘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만 말해왔다. 이번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관련 기사 스스로 만든 아름다운 ‘노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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