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지원 호소한 부모들 눈물의 삭발식…"국가가 보호막 되어달라"
박정연 기자 | 기사입력 2022.04.19. 18:43:35
"국가에 우리 아들의 책임을 떠 맡기기 위해 삭발을 하는게 아니다. 내 소원은 아들을 천국 보내는 날까지 함께하는 것이지만, 혹시나 내가 끝까지 아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들을 위한 안전한 보호막이 국가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555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을 진행했다. 이날 삭발식에 참여한 중년의 엄마들은 민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2018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발달장애를 자녀를 둔 209명의 부모가 삭발을 한 이후 4년 만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9일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발달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가족 구성원이 모두가 참여하기도 했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부가 함께 삭발을 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 삭발을 하기로 한 모자, 부자도 있었다. 발달장애인 지원을 돕는 이들과 시민들도 삭발에 함께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도 현장에서 삭발에 동참 했다. 장 의원은 "발달장애인을 24시간 함께 살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만드는 것이 국회에 들어온 가장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한 지 2년이 흘렀지만 여러분이 다시 이 자리에 나와야 할 정도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며 삭발에 동참한 배경을 설명했다.
장 의원은 "동료 의원들이 (나의) 삭발한 머리를 보면서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무엇인지를 상기했으면 좋겠다"며 "반드시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누군가의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삭발식에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김예지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참여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상을 통해 연대발언을 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를 누가 돌볼까'하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렇기에 동반자살은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놀랍지 않은 사건이다. 지난해에만 3명의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했고, 노년의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2일에는 20대의 중증 발달장애인 딸의 엄마인 54세의 A씨가 딸을 질식해 숨지게 했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딸을 죽였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집 안에서는 '다음 생에는 꼭 좋은 부모를 만나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A씨는 갑상선암 말기 환자로 과거 남편과 이혼하고 중증 발달장애인 딸을 돌보며 기초생활수급비와 딸의 장애인수당이 수입의 전부 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당장 우리(부모)가 없어지면 자녀 혼자 이 세상에 지원 없이 내동그라지는데, 부모와 형제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냐"며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국정과제에 포함할 것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요구했다.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삭발한 진유순 씨는 "나는 아들이 안전한 삶을 위해 내 자존심, 내 꿈, 내 이름을 다 버리고 이 아이의 보호막으로 사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 싸움이 너무 어렵다"며 "국가에 우리 아들의 책임을 떠 맡기기 위해 삭발을 하는게 아니다. 혹시라도 내가 끝까지 아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들을 위한 안전한 보호막이 국가가 되어주었으면 하기에 아들과 함께 삭발을 했다"고 밝혔다.
"내가 없어도 아들이 똑같은 아침을 맞기를"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백주현 씨는 자신이 삭발한 이유를 두고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사랑스러운 아들이 똑같은 아침을 맞고, 매일 하던 생활을 그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며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평범한 일상이, 발달장애인인 내 아들에게는 부모가 없는 그날부터 불가능하다. 누구나 누리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아들에게 주기 위해, 우리는 평생 상상도 못 했던 삭발을 해야 하고, 또 몇 달 원치 않는 시선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소경숙 씨는 "올해 62세가 되었고, 아들은 34세가 되었다"며 "언제까지 내가 아들을 돌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 전 큰 언니가 66세에 떠나는 것을 보니 저도 언제 떠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사회에 24시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이 된다면, 아들의 독립생활도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어 동참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하상의 씨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 국가는 잘난 자식만 편애하는 그릇된 부모와 같다"며 "장애인 부모들의 투쟁은 내 자식의 나은 삶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공평이라는 이름의 새역사"라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정연주 씨는 "엄마가 엄마죽고 없을때 동생을 시설로 보낼테니 한 달에 한, 두 번만 찾아가 보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탈시설지원법을 알게된 엄마는 동생이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의 자립과 독립을 응원한다"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가 구축되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는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날을 위해 삭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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