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최대한 덜 만들고 자연에 최대한 부담을 덜 주는 환경친화적 삶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로 매끈하게 정돈된 편리를 거부했으니, 그 대신 따라오는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사는 데 필요한 정확한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고, 생활에 필요한 제품엔 불필요한 쓰레기가 1+1, 어떨 땐 1+2, 1+3처럼 딸려오고, 재활용 쓰레기라고 해서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안 된단다. 언제까지 ‘뜻있는 개인’만 이렇게 발을 동동 굴러야 할까. 이런 구조를 만든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 사진은 지난 3월16일 오전 제주시 회천동 제주시환경시설관리소에 모인 재활용 쓰레기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제주/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결정적 한 방은 소프넛이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세제 대신 소프넛을 선택했지만 나에게 닥친 현실은 인터넷 속 후기와 달랐다. 하지만, 진짜로 소프넛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 사용 방법이 잘못됐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확신하게 됐다. 음료를 마시면 페트병을 세척해 말리느라 하루이틀을 보내고, 비닐이나 라벨지를 뜯어내느라 낑낑대다 결국 본드가 많이 묻은 부분은 깨끗하게 못 떼어내 이를 어쩌나 마음 졸이다 ‘에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고생 안 하게 만들면 되잖아!’ 화내며 병을 발로 꾹꾹 밟는 걸로 분풀이하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잘못은 다른 데 있었다.
지난해 봄, 세탁세제가 다 떨어져 새 제품을 사야 해 검색을 거듭하던 어느 날이었다. 물에 잘 안 녹는 가루세제보다 더 좋다는 광고에 혹해 오래전부터 액체세제를 써왔는데, 언제부턴가 “왜 돈 주고 물을 사냐”는 말이 귀에 박히던 참이었다. 액체여서 무겁고 부피가 커 쓸 때도 보관할 때도 불편할뿐더러, 세탁 성분이 응축된 가루보다 비싸다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인터넷 블로그엔 얇은 종이처럼 눌러 만든 종이세제를 추천하는 글도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꽤 비싸 선뜻 사야겠단 마음이 안 생겼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소프넛’이었다.
소프넛은 무환자나무의 열매 껍질로, ‘소프베리’(soapberry)라고도 부른다. 재앙이나 근심·걱정을 막아준다, 자식에게 화가 미치지 않는다 등의 의미로 무환자(無患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 때문인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수행의 도구로 염주를 만들 때 사용한 게 이 나무 열매에 든 씨앗이었다고 한다. 열매 껍질엔 천연 계면활성제인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물에 적시면 거품이 나는 덕에 소프넛(soapnut)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비누처럼 사용됐다.소프넛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친환경 생활을 추구하는 블로거들의 설명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세탁세제는 물론 섬유유연제, 주방세제, 청소용으로도 쓸 수 있고 목욕이나 세안, 머리 감을 때도 쓸 수 있는 ‘만능 세정제’였다. 자연에서 온 열매이니, 합성세제처럼 화학 성분이 인체나 환경에 유해하거나, 빨래·식기에 잔여물이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헹구는 데 물과 시간이 덜 들고, 여러번 재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했다. 다 쓴 소프넛은 퇴비로 활용하거나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된다고 하니, 합성세제를 사용하고 난 뒤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버리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내돈내산’으로 몇달씩 썼다는 후기까지 읽은 마당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작업 공정을 거쳐 제품화했다는 인도산 유기농 소프넛 한 꾸러미를 주문했다. 이틀 뒤, 소프넛을 실물로 영접한 날, 유리병 안에 물과 소프넛을 넣고 흔들어 거품을 낸 뒤 설거지를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기름기가 잘 지워졌고, 미끄러움이 덜해서인지 헹굼도 재빠르게 뽀드득하게 잘 됐다. 그 주 주말, 만족스러운 설거지의 기억을 품고 빨래를 했다. 빨랫감과 함께 면 주머니로 싸서 묶은 소프넛을 세탁기에 넣었다. 평소엔 세제 잔여물이 걱정돼 헹굼을 다섯번이나 했는데, 소프넛은 그런 부담이 없으니 그냥 표준 코스가 정해주는 대로 두번만 헹궜다. 혹시라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그날 빨랫감이 크게 더럽진 않아서 세척력이 좋은지 나쁜지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건 합성세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으니, 전기 덜 쓰고 물 아끼는 소프넛의 점수는 당연히 합격점. 그렇게 나는 새롭고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세계에 정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한달여쯤 지났을까, 수납장에서 새로 꺼낸 수건이 그날따라 유난히 칙칙해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피부에 많이 닿는 부분이 손때가 탄 것처럼 약간 얼룩덜룩했다. 다른 수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다시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소프넛의 진실을 찾아
무환자나무의 열매 껍질인 소프넛은 친환경 만능 세제로 주목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소프넛을 써보니, 다른 건 몰라도 빨래할 땐 때가 잘 안 진다는 여러 경험담이 그제야 보였다. 아니, 도대체 이 극과 극의 실사용 후기는 뭐지? 그래서 소프넛이 세탁용으로 적합한 건가, 아닌 건가? ‘팩트’를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객관적인 국내 자료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을 알리고 있는 ‘리유저블 네이션’(Reusable Nation)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단체 누리집에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근거로 소프넛 사용 찬성과 반대 의견을 소개한 글을 보게 됐다.이 글을 보면, 우선 세탁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는 2018년 미국 앨버타대학 등 연구진, 2011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대학 연구진 등의 실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연구는 옷을 만들기 전 옷감(편직물)의 불순물을 제거해 표백이나 염색 등의 후속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처리하는 “정련제로서 합성세제보다 지속가능하고 값싼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일반적인 세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크로아티아 연구에선 세탁에 사용한 물의 온도가 섭씨 90도로 보통 빨래하는 온도는 아니었다.반대로 오스트레일리아 소비자단체인 초이스가 2020년 2월 공개한 실험 결과에선, 맹물로만 빨래를 할 때보다 소프넛을 사용할 때가 더 효과가 없었다. 그보다 2년 앞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영국 기반의 천 기저귀 사용 장려 단체인 ‘클린 클로스 내피스’(Clean Cloth Nappies)는 기저귀 세탁에 소프넛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3년 독일 본대학 연구진은 물의 온도를 섭씨 30도와 60도 두가지로 설정해 실험한 결과, 어떤 온도에서도 소프넛의 세척력은 맹물과 다를 바 없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부정적인 결과 역시 한계가 있었다. 초이스의 실험은 소프넛 지지자들한테서 ‘찬물로, 통돌이보다 뒤섞임이 적어 사포닌 성분이 충분히 우러나오기 힘든 드럼세탁기에서, 품종이나 원산지를 밝히지 않은 소프넛으로’ 진행돼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초이스는 물론 다른 실험이 일반적인 세탁이 아니라 얼룩 제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 결과로 소프넛의 세척력을 평가할 순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세제 대용이라는 소프넛 써보니 인터넷 후기와 달리 ‘기대 이하’ 정확한 정보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찾기 힘들어
리유저블 네이션의 이 글에 소프넛이 빨래에 적합한지 아닌지 결론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논문 또는 발표자료 링크까지 일일이 첨부해 소개한 찬반 양쪽의 풍부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똑같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빨래를 하려 해도, 누군가는 빨래가 좀 안되는 걸 감수하고 그냥 소프넛을 쓸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세탁을 깨끗하게 하는 게 중요해 또 다른 환경친화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선택이든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소프넛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늘어놓은 핵심은 소프넛의 세척력 자체가 아니라 이와 관련한 어떠한 객관적인 자료도 한국에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최근 몇년 사이 친환경적인 삶은 개인의 윤리나 도덕, 어떨 땐 세련된 유행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삶을 뒷받침할 정확한 정보는 많지 않다. 오히려, 마치 민간요법처럼 개인적인 경험이나 입소문을 통해 ‘이런 게 좋더라’고 알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물건을 두고 정반대의 주장이 공존하지만, 사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긴 쉽지 않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국민 삶을 뒷받침하는 정부 어느 쪽도 ‘고작 이런 것’의 정보를 제공하는 덴 관심이 없다.진통·해열제로 개발된 아스피린이 뜻밖에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는 사실이 개발된 지 약 100년 뒤에 확인된 것처럼, 어떤 물건은 원래 알려진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한다. 친환경 생활 쪽에선 아크릴 수세미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아크릴 수세미는 세제를 쓰지 않아도 가벼운 기름기 정도는 제거할 수 있어, 안 쓰는 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5년 전, 나는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걸 ‘친환경 수세미’로 소개했다. 그 기사를 쓴 뒤 나는 색색의 아크릴 실을 사다 직접 수세미를 떠 사용한 것은 물론 가족, 친구, 친한 회사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몇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글에서 아크릴 수세미가 미세플라스틱의 원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아크릴 자체가 석유 등에서 뽑아내 가공한 합성수지 즉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쓸수록 여기서 작은 실 조각이 떨어져 나가 쪼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된다는 것이다. 아, 10년 넘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현타’가 왔다. 누구를 탓하기도 멋쩍은 일이지만, 애초부터 원재료인 아크릴 실을 이렇게 사용해도 괜찮은 것인지 과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이나 집단이 있었다면 아크릴 수세미가 이렇게까지 널리 사용될 수 있었을까?
“빨대는 반납합니다”
다행인 건, 나 같은 수동적인 소비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이 지난해부터 펼치고 있는 반납 운동은 ‘우리 이런 거 필요 없으니 팔지 말라’고 기업에 보내는 제안 또는 경고다. 시작은 지난해 2월 빨대 반납 운동이었다. 새활용 디자이너이기도 한 이 모임 대표 클라블라우(활동명·본명 허지현)는 오랫동안 두유를 즐겨 마셨는데, 포장에 붙어 있는 빨대가 늘 마음에 걸렸다. 쓸 수도 없고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냥 모아뒀는데, 몇년이 지나니 “끔찍하게 양이 많아졌다”. 도무지 이 쓸데없는 게 왜 있어야 하냐는 고민을 주변에 말했더니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유제품 빨대, 스팸 뚜껑 등의 반납 운동을 했던 클라블라우가 조각천으로 손수 만든 수저집. 조혜정 기자
디자이너의 특기를 살려 ‘빨대는 반납합니다’라는 문구로 카드뉴스를 만들어,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렸다. 음료에 달린 빨대와 함께, 이런 빨대 없는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편지를 이면지처럼 버려지는 종이에 써서 해당 음료 생산업체나 매일유업에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매일유업이 서울우유, 남양유업과 함께 3대 유업 중 하나인데다 이 회사 제품군이 제일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반향은 작지 않았다. 한 참가자가 매일유업 고객최고책임자(CCO)한테 받은 두장짜리 손편지 답장을 트위터에 공개했는데, 거기엔 “저희 또한 하나하나 변화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한 요구르트 제품에서 빨대를 뺐고, 올해는 빨대 없는 멸균우유 한 종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쓰담쓰담이 남양유업을 상대로 벌인 2차 빨대 반납 운동, 지난해 9월 씨제이(CJ)제일제당을 상대로 벌인 스팸 뚜껑(스팸의 플라스틱 뚜껑은 밀폐력이 없어 남은 스팸 보관용으로 쓸 수 없다. 이 뚜껑은 유통 과정에서 캔이 받을 수 있는 충격 완화용이다) 반납 운동, 올해 1월 진행한 요구르트 이중 플라스틱 뚜껑(쓰담쓰담은 줄여서 ‘요굴껑’이라 부른다) 반납 운동도 기업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남양유업은 이 모임과 지속적인 협업을 시작한 가운데, 서울새활용플라자의 도움을 받아 빨대 반납함 27개를 아파트, 도서관, 학교 등 전국 19곳에 설치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 2종에 노란 뚜껑을 씌우지 않은 스팸을 넣었고, 점차 플라스틱 뚜껑 없는 스팸을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이런 일을 진행하고 겪으면서 클라블라우는 “대기업이 설마 그러겠어? 하고 무조건 믿고 넘어갈 게 아니라, 따져보고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달라고 얘기해 바로잡는 게 소비자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뭘 살 거냐’는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연관된다.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일 거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거냐가 곧 기업이 파는 대로 살 거냐, 필요한 걸 요구하면서 주체적으로 소비할 거냐와 일맥상통한다. 빨대 없는 제품을 요구하고 그 제품이 나오면 열심히 사 먹어야 지구를 지키는 소비자로서 다 같이 공존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나?”
공존을 요구하는 이들
‘공존을 요구하는 주체적인 소비자’의 움직임은 최근 꽤 활발하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인 서울 망원동 알맹상점을 중심으로 꾸려진 ‘브리타 필터 재활용 캠페인에 함께하는 사람들’(브함사)은 지난해 8월 정수기 회사 브리타코리아에 필터 회수와 재활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브리타는 전기 없이 필터만 끼우면 되는 정수기로, 이 회사는 생수를 사 먹을 때처럼 플라스틱 쓰레기가 안 생긴다는 점을 매력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사인 독일 등 유럽과 미국 등에선 다 쓴 필터를 회사가 회수해 재활용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간혹 개인적으로 필터를 회수하지 않느냐고 문의하는 소비자에겐 “(플라스틱 통 안에 활성탄 등이 들어 있으니) 일반 쓰레기로 버리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브함사가 진행한 ‘브리타 어택’에 1만5천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하고 사용한 필터도 1500개나 수거되자 결국 브리타코리아는 올해 안에 수거·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이 민간요법인가’ 좌절하다 “두유 빨대·스팸 뚜껑 없애달라” “화장품·배달 용기 재활용 책임지라” 당당히 요구하는 소비자들 알게 돼
화장품 제조업체와 음식 배달 플랫폼업체를 상대로 ‘플라스틱을 사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녹색연합 등은 소비자들한테서 빈 용기를 수거해 화장품 제조업체에 전달하는 ‘화장품 어택’을 2월과 3월 두차례, 음식 배달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수거해 배달의민족 본사에 전달하는 ‘배달 어택’을 지난 20일 벌였다. 각 업체와 환경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서명도 함께 전달했다.화장품 어택의 계기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표시제’였다. 2018년 12월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음식료품·세제·화장품 등을 제조·수입하거나 판매하는 업체한테 포장재가 얼마나 잘 재활용되는 소재인지 평가하고(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의 4단계) 그 결과를 제품 겉면에 표시하도록 한 제도로, 3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제품 생산업체 스스로 쓰레기를 덜 만들고 재활용의 효율도 높이려는 시도인데,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지난해 화장품 업계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면서 사달이 났다. ‘2025년까지 생산된 제품 포장재의 10% 이상을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내용의 ‘자율협약’에 참여하면 포장재 재질이 ‘재활용 어려움’이어도 등급 표시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행정예고를 한 것이다.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2019년 국내에 출고·수입된 화장품 7806종 가운데 ‘재활용 어려움’은 64.2%(5011종)나 된다. 심지어 녹색연합 등에선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 비중이 그보다 더 많은 90%가량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런데도 화장품 업계에 재활용 등급 표시 ‘면제 혜택’을 주겠다는 환경부의 방침에 화장품 어택이 시작됐다. 결국 환경부는 ‘포장재 회수율이 2023년까지 15%, 2025년까지 30%, 2030년까지 70%를 충족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능동적인 소비자들의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바로잡힌 것이다.
녹색연합 등은 시민들한테서 수거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을 배달의민족에 전달하는 ‘배달 어택’을 진행했다. 사진은 4월20일 행사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행위극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배달 어택은 코로나19로 더욱 크게 성장한 음식 배달 플랫폼업체에,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하게 늘어난 일회용 용기를 줄이도록 책임을 지우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배달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17조3828억원으로 한해 전(9조7328억원)보다 78.6% 폭증했다. 월별로 보면, 코로나19 2차 유행 때인 지난해 8월 거래액이 전달보다 23.8%, 3차 유행으로 음식점 영업시간마저 단축됐던 12월엔 34.2%가 늘어나는 등 ‘집콕’으로 배달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다, 원래도 배달원을 직접 고용해 음식 배달과 그릇 수거를 하는 식당은 일부 중국집 말고는 별로 없는데, 코로나19로 위생 문제에 민감해지다 보니 일회용 용기 선호까지 늘었다. 그 덕에 버려지는 일회용 배달 용기는 하루 최소 830만개에 이른다.만약 배달 앱이 일회용기와 다회용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나아가 배달 앱이 다회용기 사용 식당의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검색 시 상위에 노출해주는 혜택을 주거나, 포장 고객이 개인 용기를 갖고 와 음식을 담아갈 경우 할인을 해 준다면 어떨까? 적어도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게다가 음식 배달 플랫폼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또 다른 쇼핑 플랫폼을 통해 배달에 필요한 일회용품도 판매하는데,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이 정도의 지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배달 어택은 바로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구현한 행사였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따지고 보면, 쓰담쓰담의 반납 운동이나 시민들의 여러 어택은 ‘왜 제품이나 포장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과 맥락이 닿는다. 맞다. 더 큰 책임은 이런 환경을 조성한 정부에 물어야 한다. 애초부터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그리고 재활용하기 좋게 만들었다면 소비자의 불편을 덜고 생산비도 줄일 수 있을뿐더러, 환경에 부담도 덜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애초부터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제품을 ‘잘’ 만들게 하기는커녕 재활용 안 되는 재활용품 표시처럼 허술하고 구멍난 제도만 곳곳에
한가지 원인은 허술한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는 생산자에게 제품 생산·판매뿐만 아니라 다 쓴 제품의 수거·재활용 의무를 함께 지우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활용에 드는 비용 이상의 부과금을 물리는 제도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적용 대상이 연매출 10억원 이상 제조·수입 업체, 종이팩·금속캔·유리병·합성수지 등의 4개 포장재군, 윤활유·전지류·타이어 등 7개 제품군에 불과하다. 또 생산한 제품 전부가 아니라 품목별로 다르게 정해진 비율만 재활용 의무가 있고, 그마저도 업체가 직접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분담금을 내 재활용업체에 지원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이 재활용 분담금이 우리가 구입하는 제품의 가격에 포함돼 있다).이런 구조에선 음식 배달 용기 재활용엔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식당이나 일회용기 생산업체는 연매출 기준에 미달하기 십상이고, 수천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배달 플랫폼업체는 제조·수입 업체가 아니어서 재활용 의무 대상에서 빠진다. 독일이 2019년부터 ‘신 포장재법’을 시행하면서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유통업체, 온라인 유통업체로까지 재활용 의무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에 견주면 할 말이 없어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 법은 독일 정부에 설치된 ‘중앙 포장재 등재 재단’에 생산자가 포장재 재질과 수량,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 이행을 위해 계약을 맺은 재활용업체 이름과 계약 내용 등까지 등록하고, 미등록된 포장재의 상품은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쪽짜리 ‘에너지 회수’도 문제다. 합성수지의 재활용 방법은 원래의 기능을 살려 쓰는 물질 재활용, 연료로 만들어 쓰는 에너지 회수, 화학적으로 분해해 다시 원료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 세가지다. 에너지 회수는 주로 쓰레기 분리배출 표시가 ‘기타’(OTHER)로 돼 있는 것들로 고형연료(SRF)를 만들어 이뤄진다. 기타는 두가지 이상의 재질이 섞여 있거나 신소재라는 뜻인데, 같은 기타여도 비닐은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그렇지 않다. 화장품 용기가 ‘예쁜 쓰레기’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대부분 플라스틱 기타여서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닐, 플라스틱을 분리배출 하도록 한 것은 이 제도를 통해 재활용을 늘리려는 취지였다. 그런데 고형연료는 비닐로만 만든다. 재활용 지원금은 기타 플라스틱과 기타 비닐 양쪽 모두에서 걷는데, 분리배출되는 비닐이 지원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으니 플라스틱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이걸 충당한다. 정부에선 비닐이든 플라스틱이든 따지지 않고 재활용 의무 실적을 평가하니, 생산자도 신경을 안 쓴다. 시·군·구에서 돈을 더 내 비닐 재활용을 책임지고, 기타 플라스틱도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회수, 중장기적으로는 열분해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통업체에도 재활용 의무 부과하고 등록된 포장재만 쓰게 하는 독일 ‘재활용 페트’ 활용 권고하는 EU처럼 정부도 개인의 노력에 응답해야 할 때
분명 재활용품으로 표시돼 있는데도 실질적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건 정부 스스로 제도의 신뢰를 흔드는 일이다. 홍 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분리배출 표시는 운전할 때의 표지판과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의심 없이 따를 수 있게 해야 혼란이 없다. 그런데, 기타의 경우 표시는 분리배출인데 정부는 분리배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건 이미 재활용 비용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다. 세척 등 의무를 다했다면 소비자는 분리배출을 하고, 이후 책임지고 재활용하는 것은 생산자의 몫, 생산자가 그런 역할을 하도록 관리하는 게 정부의 몫이다.사실 기타라는 표시 자체도 무성의하다. 요즘 재활용품으로 버려야 되냐 아니냐 논란이 되고 있는 즉석밥 용기는 재활용이 잘되는 피피(PP·폴리프로필렌)가 95%다. 피피에서 다른 재질(EVOH·에틸렌비닐알코올)을 떨어지게 하는 기술도 이미 개발돼 있다. 그러면 피피로 분류하되 재활용 분담금을 올리든지 해야지, 1%라도 다른 재질이 섞여 있다고 기타로 분류해 재활용이 어렵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포장재에 재활용 페트를 30% 사용했다는 표시가 있는 스위스의 생수병. 국회입법조사처 ‘1회용 포장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보증금 제도 도입 방안’ 갈무리.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1회용 포장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보증금 제도 도입 방안’(김경민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 보고서를 보면, 유럽에선 일회용 포장재에까지 빈 용기 보증금을 내게 한다. 한국은 소주병 등 재사용이 가능한 유리 용기 일부에만 이를 적용하고 있고, 내년 6월10일부터는 자원순환보증금으로 이름을 바꿔 일회용 컵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유럽에선 포장재를 만들 때 재활용 페트(R-PET)를 현재 30%, 2025년 65%, 2030년 70%까지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포장재에 표시하고 있지만, 한국엔 그런 제도가 없다. 이 차이는 무엇을 뜻할까?“생수병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질에 재활용 페트 할당률을 정해주면, 생수를 파는 업체는 다 쓴 생수병을 찾고 모아 재활용하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환경 보호에 동참하지 않는 업체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무역장벽도 될 수 있다. 아무리 우리 생수가 품질이 좋아도 생수병의 재활용 페트 할당을 지키지 못하면 수출을 못 하거나, 일본에서 폐페트를 사와야 한다. 환경부를 비롯해 정부가 환경을 환경만이 아니라 경제로도 이해하고 지금까지 해온 정책 대응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 쪽의 설명이다.나는 꽤 고된 혼자만의 ‘정보전’ 끝에 소프넛으로 빨래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베이킹소다 등 천연 분해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친환경 세제를 선택했다. 나처럼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들은 오늘도 플라스틱 튜브 치약과 기타 칫솔 대신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로 양치를 하고, 미세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오는 샤워타월 대신 삼베 타월을 쓴다. 선별이 어려워 재활용도 어렵다는 병뚜껑 같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모아 ‘플라스틱 방앗간’에 갖다주고, 스티커 대신 레이저로 과일·채소 껍질에 글씨를 새겨 ‘라벨링 프리’를 실천하는 기업이 한국에도 생기길 소망한다. 자, 이제 ‘트렌드’에 촉각을 세우는 기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이 답할 차례다.
스티커를 붙이는 대신, 채소나 과일의 표면에 레이저로 상표 등을 새기는 ‘라벨링 프리’ 고구마를 네덜란드 식품 기업 ‘네이처 앤드 모어’ 직원이 들어 보이고 있다. 네이처 앤드 모어 누리집 갈무리
박완규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 “수제화 브랜드 본사에 공장이 없어요. 이름만 갖고 있어요”
권종술 기자epoque@vop.co.kr
발행2021-05-01 07:52:38수정2021-05-01 07: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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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 인터뷰를 위해 그와 마주했다. 그의 시선은 나의 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발을 먼저 주목한 뒤에 내 얼굴로 향하는 그의 시선.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발부터 봐요. 발에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먼저 보고 얼굴을 보는 게 버릇이에요.” 그는 이렇게 항상 발부터 쳐다보는 버릇을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다. 그는 35년 동안 신발을 만들어온 제화노동자 박완규다. 35년은 박완규의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게 얼굴보다 발로 향하게 할 정도로 반복된 시간이었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곧바로 뛰어든 제화의 세계에서 힘들게 싸우며 버텨낸 시간이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10대 시절 배운 제화 노동 “너무 힘들었나 봐요. 아침마다 세수하면 코피가 나서 세숫대야 물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수업료를 제때 내본 적이 없어요. 당시만 해도 학생 인권이 존중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료를 안 내면 서무과에서 수업 중에 불러냈어요. 반 친구들도 서무과에서 나를 왜 부르는지 다들 알았거든요. 그게 너무 창피했고, 쪽팔렸어요. 그래서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전북 완주군 출신 박완규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난 1985년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뒤 고향을 떠났다. 처음 구한 일자리는 식당 배달일이었다. 성남에 있는 먼 사돈댁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1년쯤 일하다 고향에 부친 편지에 쓰여있던 주소를 보고, 이모부가 그를 찾아왔다. 제화노동자였던 이모부는 그에게 제화 기술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했고, 박완규는 1986년 그렇게 제화노동자로 명동에서 일을 시작했다.
1980년대 명동은 수제화 산업을 선도하던 곳이었다. 유명 수제화매장이 밀집해 있었고, 높은 임대료와 재개발로 성수동 등으로 수제화 공장이 옮겨가기 전까진 많은 업체가 명동에 모여 신발을 만들었다. 신발 제작은 신발 제작을 위한 패턴을 만들고, 이에 맞춰 가죽 등을 재단하고, 가죽 등으로 신발의 윗부분을 만드는 갑피 작업을 하고, 신발의 밑부분을 제작해 붙이는 저부 작업으로 이뤄져 있다. 제화노동자는 크게 패턴, 갑피, 저부로 나뉘는데, 이 모든 제화 작업을 다 할 수 있는 제화노동자는 사실 얼마 되지 않고, 각자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 박완규가 맡은 일은 신발의 밑부분을 만들어 붙이는 저부 작업이다. 박완규는 명동의 수제화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을 꼬박 저부 일만 했다. 열일곱 살을 갓 넘은 그가 견디기엔 너무나도 고된 노동이었다.
“너무 힘들었나 봐요. 아침마다 세수하면 코피가 나서 세숫대야 물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당시에 서울 수유리에서 명동으로 출퇴근을 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수유리에서 첫 전철을 타고, 명동역에 내려 공장에 오면 오전 6시 정도였어요. 그 시간엔 공장 문이 안 열려 있어요. 그래서 담을 넘어 일하는 사람들만 아는 창문 쪽 쪽문으로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어요. 퇴근은 당시 명동에서 수유리 가는 20-2번 버스 막차가 11시 40분에 있었는데, 그걸 타고 들어갔어요. 첫차로 나가서 막차로 들어오다 보니 힘들어서 수유리 정류장에 제때 못 내리고,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한 시간 걸어서 다시 집에 오기도 했어요. 그런 장시간 노동을 이겨내기에 열일곱 살은 너무 어리다는 걸 오랜 시간 지난 후에야 알았어요.”
“제화 기술을 배우면서 나중에 결혼해도 집안을 이끌어 가는데 이 기술만 있으면 문제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일해 그가 받은 월급은 17만 원이었다. 당시 700원 하던 짜장면 다섯 그릇 가격도 안 되는 한 달 용돈 3천 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부모님과 세 동생이 있는 고향으로 부쳤다. 아침마다 흐르던 코피는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멈췄다. 첫차와 막차를 타고 오가는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지만, 그런 혹사가 몸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생각에 혹사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그때는 못살던 시절이어서 기술을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화 기술을 배우면서 나중에 결혼해도 집안을 이끌어 가는데 이 기술만 있으면 문제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제화 기술자로 대접받기까지 8년이나 걸렸다. 제화 기술은 오랜 견습 기간을 통해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도제식 교육으로 전수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최고 기술자 밑에 상견습, 중견습, 하견습이 함께 일한다.
“처음엔 단순 작업부터 시작해요. 잔심부름하면서 조금씩 기술을 배워요. 그런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작업이 반복돼요. 가장 중요한 마무리 공정은 안 가르쳐 주는 거죠. 작업 공임을 서로 나눠서 가져야 하는데, 기술에 차이가 있어야 선생님과 견습이 가져가는 금액이 차이가 날 거 아니에요. 그렇게 견습을 6년 정도 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맨땅에 해딩하는 심정으로 연장을 챙겨서 독립했어요. 그렇게 2년 정도를 부딪치고 나서 제대로 된 선생님 대접을 받을 수 있었어요.”
1980년대 중반 공무원 월급이 30만 원 정도 되던 당시에 한 달 수입이 120만~130만 원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던 제화노동자들의 호시절
선생님이 된 뒤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수입도 짭짤했기 때문에 보람도 컸다. 1980년대 중반 공무원 월급이 30만 원 정도 되던 당시에 한 달 수입이 120만~130만 원에 이르렀다. 이런 호황은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때문에, 그는 노동조합에 큰 관심이 없었다.
“1987년 한창 민주화 투쟁이 격렬할 때 만리동 고개 밑에서 견습으로 일했다. 그 시절만 해도 최루탄 때문에 투쟁하는 학생 때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여서 함께 싸우진 않고, 괜히 우리만 일도 못 하게 됐다고 욕만 했던 기억이 나요.”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지나며 제화노동자들도 서울 등 각 지역에서 제화공노조를 만들었다. 제화노동자로 일하던 이갑동, 이해곤(지금은 고인이 된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의 가명. 당시 이해삼은 성수동 수제화 공장에 위장취업해 활동하고 있었다.) 등이 주축이 돼 노조를 결성했고, 스무 살이 된 박완규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조에 가입하게 된 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영향이 컸어요. 당시 거의 모든 업종에서 쌓여있던 감정, 축적됐던 분노들이 터져 나왔고,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 우리나라 신발브랜드라고 하면 크게 금강, 앨칸토 에스콰이어 3사였어요. 그리고 당시에 미스미스터, 해피워크, 레스모아, 브랑누아 등 저 단가 브랜드들이 막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하청업체들이 활성화됐고, 노조는 현장이 많아지니깐 조직하기 쉬웠어요. 당시 활동했던 분들한테 들으면 조합원이 1천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에 저는 제가 속했던 사업장에서 조직차장 정도 맡고 있었던 거여서 전체적인 상황은 솔직히 잘 몰랐어요.”
1997년 외환 위기와 값싼 중국산 신발이 대거 수입되면서 찾아온 위기··· 특수고용직이 된 제화노동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노동환경도 조금씩 나아지고, 제화업계의 호황이 이어지면서 제화노동자들은 호시절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와 값싼 중국산 신발이 대거 수입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직접 공장을 세우고 제화노동자들을 직고용했던 유명 브랜드들은 신발 생산을 하청업체에 넘겼다. 하청업체들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화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 또는 프리랜서 노동자로 만들었다. 4대보험은 물론 퇴직금도 사라졌고, 제화노동자들끼리 일감 경쟁을 하며 낮은 공임을 받는 특수고용직, 불안정한 노동자로 전락했다.
“수입의 3.3%를 세금으로 내는 일종의 프리랜서 제화노동자가 전체의 70~80% 정도예요. 나머지 20~30%는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사업자들이구요. 우리가 과거부터 이렇게 일했던 건 아니에요. 외환위기 이전엔 이런 일이 없었어요. 매년 현장의 재화노동자들과 단위 사업장 사장들의 협상을 통해 공임이 100원이든 200원이든 올랐고, 4대보험, 퇴직금도 보장됐어요. 심지어 노동자를 서로 모셔가려고, 선금도 있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200~300만 원을 미리 준거에요. 그런데 수입 신발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제화노조는 약화되고, 시장상황은 악화되면서 제화노동자들의 임금은 10년 넘게 제자리 걸음
상황이 나빠지게 된 데엔 수입 신발 때문에 시장 상황이 나빠진 것도 있지만, 제화노동조합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컸다고 박완규는 말한다. 막상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조합원들은 돈이 잘 벌리는 상황이다 보니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화노동자들의 신분이 직고용에서 특수고용직으로 바뀐 것은 노동조합에 결정적인 타격이 됐다.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전 지부장은 “제화노동자들이 특수고용 노동자가 되면서 노조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노조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면서 많은 이들이 빠져나갔다. 세월이 가면서 임금은 10년 이상 동결이 되고, 개선 기미도 없다 보니 아무도 노동조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고정 임금을 받는 게 아니라, 일한 신발 개수만큼 임금을 받는 상황은 제화노동자들이 서로 단결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힘은 모이지 못했다.
“제화노동자끼리 경쟁하다 보니 관리자들이 노동자 사이를 갈라치기 좋은 구조였어요. 서로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았지요. 이런 현실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됐고,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노조가 사라지면서 제화노동자들에게 닥친 위기를 막아낼 힘이 없었어요.”
2018년 탠디 본사 점거와 성수동 제화거리에서의 투쟁으로 얻어낸 10여 년 만의 임금 인상
제화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박완규는 “한해 한해 조건이 나빠졌고, 성수동에선 공임이 지난 2018년 인상 전까지 18년 동안 제자리 걸음이었다”고 말했다. 물가는 올랐지만, 공임은 그대로고, 일거리는 줄어들면서 제화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제화노동자들이 만든 신발은 백화점에서 수십만 원이 넘는 금액에 팔려도 이익 대부분은 백화점과 본사에 넘어가고, 제화노동자들에게 떨어지는 공임은 6천5백 원에서 7천 원에 불과했다. 2018년 당시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결국 2018년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제화회사인 탠디 본사를 상대로 제화 공임 인상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등 행동에 나섰다.
2018년 4월 4일부터 탠디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해온 제화노동자들이 6500원~7000원 수준인 공임을 2천 원 인상할 것과 퇴직금 지급,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탠디는 약 7천억 원대에 이르는 수제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상징성도 컸다. 26일엔 제화노동자 100여 명이 서울 관악 탠디 본사 3층을 점거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사실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오랫동안 스무 명 남짓한 조합원으로 조직만 유지해온 상태였다. 그러다 2014년 탠디 소속 하청 제화 노동자들의 퇴직금 소송에서 이기면서 조합원이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정기만 전 지부장은 “변호사를 비롯해 모두가 진다고 했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노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8년 탠디투쟁이 시작되면서 조합원은 순식간에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탠디 하청공장에서 일하던 박완규도 이때 다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고, 선배 제화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농성은 16일 동안 이어졌다.
“점거 투쟁은 저도 처음이지만, 연세 많은 선배들은 압박이 더욱 컸을 거예요. 바깥에서 20일 넘게 싸우다 방법이 도저히 방법이 없고, 점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정기만 지부장님을 믿고 들어갔어요. 들어갔는데 회사 건물이다 보니 바닥이 타일로 돼 있어서 한기가 심했어요. 대비하지 못한 채 들어가서 2~3일은 엄청 춥고, 고생이 심했어요. 그래도 내가 힘들어하면 연세 많은 분들은 어떨까 싶어서 티도 못 냈어요. 당뇨 등 아픈 분들이 많았고, 농성하다 세분 정도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는데, 선배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심히 싸워주셨어요. 한 선배는 자기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선거 때 보수정당 후보만 찍었는데. 이런 일을 겪게 되니깐 자기가 지금까지 한 투표가 잘못됐구나, 내 삶을 들여다 봐주는 이들에게 투표하는 게 맞는구나 깨달았다고 하셨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이런 게 현장 투쟁이구나. 이렇게 현장 투쟁이 사람을 바꾼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어요.”
제화노동자 가족들의 절절했던 호소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 제일 늦게 잠드신다. 주말이 되어서야 잠을 몰아 자는 눈에 띄게 살이 빠진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당시 한 달 넘게 이어진 투쟁 끝에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탠디본사와 제화노동자들의 공임을 갑피, 저부 각각 1천3백 원씩 인상하고, 소사장제 폐지 등을 논의하는 노사협의회를 상하반기 1회씩 열기로 합의했다. 곧이어 수제화 공장이 밀집해 있는 성수 제화거리에서도 그해 5월 임금 인상 투쟁이 벌어졌다. 성수 제화거리는 탠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탠디는 그나마 8년 전인 2010년 공임이 인상됐지만, 성수 제화거리는 18년 동안 공임이 5천5백 원에 머물러 있었다.
“탠디는 본사 한 곳을 대상으로 싸우면 됐지만, 성수동은 업체가 좀 많았어요, 성수동에 있는 업체 가운데 90%가 하청이에요. 미소페, 세라, 소다 등 브랜드 신발부터 시장 신발까지 별의별 업체들이 여기 다 있어요. 그런데 하청업체는 많아도 결국 싸울 대상은 본사뿐이기 때문에 각 본사에 공문을 보내고 찾아갔어요. 그렇게 본사를 찾아가서 임금 협약을 했어요. 그리고, 공임을 1천5백 원 올렸어요.”
2018년 탠디와 성수동에서 이어졌던 임금 인상 투쟁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나섰던 제화노동자들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지만, 이들과 함께 연대한 진보정당을 비롯한 여러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연대도 큰 힘이 됐다. 관악과 성수동 지역의 노동, 시민,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열성적으로 제화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했다. 점거농성이 진행되던 도중 노동자들은 매일 창밖에 매달려 누가 오는 지, 얼마나 오는 지 지켜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부인과 자녀들, 자녀들의 애인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도 힘이 됐다. 탠디 점거 투쟁 당시 농성 중인 제화노동자의 자녀는 ‘민중의소리’에 보내온 ‘우리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탠디 노동자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아버지는 새벽 5시 반에 나가서 밤 11시 반에 들어오셨다. 점심, 저녁밥도 못 드시고 일하셨다. 밤 11시 반에 집에 돌아와 겨우 끼니를 때우신다. 5시간도 못 주무시고 다시 출근을 하신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 제일 늦게 잠드신다. 주말이 되어서야 잠을 몰아 자는 눈에 띄게 살이 빠진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 힘겨운 노동에도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올해로 머리 좋은 나쁜 제화 기업들이 소사장제도를 이용한 지 18년째다. 소사장제를 폐지해야 한다. 아버지는 탠디에 직접 고용되는 노동자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런 호소는 여론을 움직였고, 언론이 제화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루면서 승리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투쟁으로 다시 살아난 제화지부 다시 노조에 가입한 박완규, 부지부장을 거쳐 지부장에 나서다
아울러 탠디와 성수동에서의 승리는 제화노동자 박완규의 삶을 바꾼 계기이기도 했다. 제화노동자들 가운데 막내로 투쟁에 참여했던 박완규는 제화지부 부지부장으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정기만 전 지부장은 “열성도 많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친구”라며 믿음을 나타냈다.
“탠디 투쟁이 끝나고 일을 못 했어요. 다섯 개 탠디 하청 현장에서 저를 쓰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상황에서 정기만 지부장께서 부지부장으로 활동해달라고 요청해서 조직을 믿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2년 8개월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부장으로 출마해 올해부터 제화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4대보험 도입 등 산적한 제화노동자 문제는 결국. 본사가 개입해야 가능한데, 본사가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진 않을 거다. 노동부를 비롯해 서울시, 정부 등 공공기관이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제화노동자들이 뭉쳐 공임을 올렸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1천여 개에 이르는 제화업체 중에 4대보험과 퇴직금이 있는 곳은 3곳에 불과하다. 더구나 제화공장 가운데 대부분은 하청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결정해 4대보험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최근엔 신발 본사들이 자체 공장 없이 100% 외주 하청으로만 회사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제화지부장을 맡은 박완규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그는 “브랜드 본사가 개입하지 않으면 절대 하청업체에 4대보험을 도입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결국 본사가 개입해야 가능한데, 본사가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진 않을 거다. 노동부를 비롯해 서울시, 정부 등 공공기관이 나서야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다. 박완규는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정부는 1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 100% 다 수입 신발만 신고 다니게 할 것도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무관심 속에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심지어 하청도 국내가 아닌 중국 등 싼 인건비의 해외공장으로 넘기는 경우도 많다. 최근엔 본사에 제작 공장없이 100% 하청 제작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유명 브랜드를 달고 팔리는 신발도 그 회사가 직접 만든 신발이 아니고, 백화점에서 비싸게 팔리는 국내 유명 브랜드 신발이 실제론 중국에서 만들어진 신발인 경우도 흔하게 된 것이다.
“브랜드 본사 대부분이 비슷해요. 브랜드 본사에 공장이 없어요. 이름만 갖고 있어요. 백화점에 있는 브랜드 가운데 탠디만 본사 공장을 운영해요. 탠디도 원래는 본사 공장에 4개 현장이 있었는데 다 하청으로 돌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2018년에 다섯 개 하청 현장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파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본사 라인을 유지한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땐 브랜드를 가지고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브랜드 현장 공장을 운영하고, 공장 확장이 어려운 경우 하청라인을 가동해야 정상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름만 가지고 장사 하는 건 이해가 안 돼요. 현장을 직접 운영해야 신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해요. 그냥 하청에 언제까지 이렇게 만들어오라고, 주문서만 내려요.”
해외 신발은 날이 갈수록 시장을 잠식하고, 내수 규모는 축소 또는 정체되는 등 위기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선 신발이 사양산업이라고 인식해서 그런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제화노동자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제화노동자들의 삶도 더욱 힘들어졌지만, 지난 2019년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를 통해 ‘성수동 수제화 거리, 민노총 개입 1년 만에 170여 곳 문 닫았다’(조선일보 2019년 4월 17일)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2018년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투쟁해 18년 동안 동결돼 있던 제화 공임을 1천3백 원 인상해 많은 제화공장이 문을 닫게 됐다는 것이다. 박완규는 “공장 임대료 부담, 신발 시장 상황 등 여러 원인이 있는데, 민주노총이 개입해 공임을 올려서 일거리가 줄어든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엔 코로나19를 핑계로 기껏 올린 공임을 500~600원 정도 깎은 하청공장도 있다고 한다.
“청소, 경비 업무 하시는 노동자들에겐 죄송하지만, 사회적으로 힘들고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고, 그분들도 열악하다고 싸우고 있는 현장이 많은데, 우린 그런 환경조차 처우가 좋다고 느낄 정도로 상황이 힘들다고 생각하니 서러웠어요.”
그에게 “제화노동자를 선택한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 기술만 있으면 문제없겠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쏟아지는 코피를 참아내고, 첫차로 출근해 막차로 퇴근하는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제화노동자로 30년 넘게 살아왔고, 지금은 제화노동자들을 대표해 지부장까지 맡은 박완규의 입에서 나온 “후회한다”는 말엔 수많은 회한과 아픔이 묻어났다.
“진짜 후회하죠.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고, 필요해서 선택한 거 였어요. 일하는 환경이 힘들긴 해도 열심히 하면 그만큼 대접은 받으니깐 괜찮았던 거다. 이런 환경이 영원할 줄 알았던 건데 상황이 달라졌어요.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면서 수량이 늘어나고, 기술적 값어치는 떨어졌어요. 그 일이 무엇이든 고정급여를 받는 직군을 선택해야 하는 게 나았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미소페 6공장이 폐업하면서 일을 못 하게 된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예순이 다 된 분들인데 청소, 경비 등 일을 하고 계셨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힘들지 않냐고 여쭤봤는데, 제화에서 일하는 거보다 좋다고 하세요. 고정으로 임금을 받아서 좋다구요. 청소, 경비 업무 하시는 노동자들에겐 죄송하지만, 사회적으로 힘들고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고, 그분들도 열악하다고 싸우고 있는 현장이 많은데, 우린 그런 환경조차 처우가 좋다고 느낄 정도로 상황이 힘들다고 생각하니 서러웠어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로서의 보람이나,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은 어느새 꿈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젠 제화 기술을 배우려 하는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보니 일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른 업종으로 말하면 퇴직이 가까워진다고 느낄 나이인 쉰세 살의 박완규는 제화지부에서 여전히 막내다. 박완규는 “35년 제화노동자 생활 동안 저보다 어린 사람을 단 세 명 밖에 못 만나 봤다”고 했다.
제화지부 지부장을 맡은 박완규는 이런 현실을 자신이 나서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장의 제화노동자들은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비합리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최소한 제가 나서서 지부장으로 일하는 2년 임기 동안 어느 정도까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우리나라에선 기술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저평가해서 너무 속상해요. 반도체, 전기차 뭐 이런 것만 소중한 기술이 아니잖아요. 신발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인데, 이렇게 제화노동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나중에 누가 남겠어요.”
지난 3월 16일 2021 서울도심제조노동자 매니페스토 대행진 공동준비위원회 소속 노조원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 도심제조노동자에게 4대 보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화섬식품노조의 서울봉제인지회, 금속노조의 주얼리분회와 인쇄업종분과(준), 그리고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나선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은 4대 보험 전면실시와 코로나19 긴급 대책 마련, 그리고 도심 제조산업 노정교섭 실시와 업종협의체의 구성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완규는 “제화노동자들은 요즘 출근하면 일감이 없어 오전 안에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한다. 주변 동료들에게 들어봤더니 지난달과 이번 달엔 한 달 동안 110~120만원 밖에 못 벌었다고 한다”며 제화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렸다. 그는 이어 “서울시가 사측으로 구성된 협회들을 통해 제화업종에 1년에 억 단위의 금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성수동 제화거리에 조형물을 놓는 식으로 지원금이 쓰인다”면서 “그런 재정이 있으면 제화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복지를 적용하는 등 실제로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노동자라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4대보험과 퇴직금, 매달 나오는 고정급여가 2천 5백여 명에 이르는 제화노동자들에겐 절박한 꿈이 되어버린 것이 어쩌면 제화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면서도 절박한 이런 박완규의 호소에 정부와 서울시, 노동부는 과연 필요한 해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박완규는 끝으로 절실한 마음을 전했다.
“유럽은 기술을 존중해요. 그에 맞는 보상도 해주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기술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저평가해서 너무 속상해요. 반도체, 전기차 뭐 이런 것만 소중한 기술이 아니잖아요. 신발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인데, 이렇게 제화노동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나중에 누가 남겠어요. 신발을 100% 수입해서만 신을 순 없잖아요. 그렇게 되면 지금은 싼 수입 신발도 가격이 올라갈 텐데 말이에요. 이런 부분을 정부와 노동부 등 공공기관에서 꼭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5월 1일 131주년 세계 노동절대회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LG트윈 타워 해고 청소노동자들의 곁으로 간다.
노동조합을 통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자 했던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에게 LG자본은 집단해고(계약해지)로 응했다. 교섭에서 60원 인상안을 내밀던 회사가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의 해고를 수용하면 2천만 원을 주겠다고 개별적으로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다. LG 청소노동자들은 어떤 회유와 협박에 굴함 없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지키고 투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가고 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넣은 이빨을 자랑질하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만큼 넘쳐나는 부를 누리는 자본가들에 반해 하루 12~16시간을 일해서 주급 7~8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월 10~15달러 판잣집 방세를 감당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억압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드디어 노예노동의 사슬을 끊고자 스스로 조직하고 떨쳐나섰던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한 날이었다. 이로부터 세계 노동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갖은 멸시와 저임금, 비정규직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당당
▲2018년 5월 10일 자 기사 형태로 올린 글. 법원은 허위사실이라며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천막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자원봉사자가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법원이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4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민사부(재판장 이관용)는 2018년 5월 <뉴스플러스>에서 기사 형식으로 보도된 ‘세월호 광장 옆에서 유족과 자원봉사녀 성행위, 대책 대신 쉬쉬’와 ‘세월호광장에서 일어난 세 남녀의 추문의 진실과 416연대’라는 제목의 글이 허위사실을 적시한 글에 해당한다며 기사에서 언급된 당사자들에 대한 뉴스플러스와 발행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뉴스플러스.>는 기사에서 ‘2015년 7월 어느 날 밤 세월호 천막에서 세월호 유가족 남성 2명과 자원봉사자 여성 1명 등 3명이 함께 부적절한 성행위를 가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자 이름 없이 <뉴스플러스>라는 언론사 명의로 작성된 기사에서는 직접 목격한 자원봉사자와 인터뷰를 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법원은 “① 기사에서 목격자라고 적시된 자원봉사자는 뉴스플러스와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고 남녀 3명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목격한 사실이 없으며, ② 위 사안과 관련하여 당시 사실관계를 확인하였던 416연대 구성원에 의하더라도 사실과 다르고 해당 구성원은 뉴스플러스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사실이 없으며, ③ 뉴스플러스가 주장한 취재 내용에 의하더라도 보도의 진실성을 수긍하도록 할만한 아무런 증거나 자료가 없다”며 “기사가 허위사실을 적시하였음을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뉴스플러스>는 29일 “발행인과 본지에 각각 1500만원씩 지급하고 정정보도를 하라는 1심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겠다”며 항소하겠다는 입장문을 기사 형태로 보도했습니다.
2020년 선거 토론 방송에서 언급해 확산된 ‘가짜뉴스’
▲2020년 4월 6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토론회 방송 ⓒMBN 유튜브 화면 캡처
법원이 허위사실이라고 인정한 <뉴스플러스>의 2018년 기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차명진 전 의원 때문입니다.
차 전 의원은 2020년 4월 6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김상희 민주당 후보가 세월호 참사 페이스북 막말에 대해 질문하자 “혹시 XXX 사건이라고 아세요?”라며 “XXX 사건. 저는 2018년 5월에 <뉴스플러스>라는 매체에서 나온 ‘세월호 침몰 사고 자원봉사자, 세월호 유가족이 세월호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벌였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차 전 의원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극우 유튜브와 보수 신문, 종편에서는 일제히 관련 소식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뉴스플러스>의 기사를 차 전 의원이 언급하면서 온라인 등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 넘쳐 났고,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언론사 기사라는 이유로 재생산된 ‘가짜뉴스’
▲ 2020년 4월 6일 유튜브 채널 에 출연한 차명진 후보는 <뉴스플러스. 기사를 언급했다. ⓒMBN 유튜브 화면 캡처
차 전 의원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해 진행자들과 웃으며 “뉴스플러스에 나온 XXX 기사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극우 유튜브 채널들은 <뉴스플러스>라는 인터넷 매체의 글이 언론사의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진실인양 주장하며 앞다퉈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을 보면 <뉴스플러스>는 목격자라고 지목했던 자원봉사자가 목격한 적도 없었고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뉴스플러스>는 활동가가 다른 매체와 했던 인터뷰 내용을 “세 사람의 불미스러운 행태를 언론에 내보낼 순 없었기에 김씨는 에둘러 말했다”며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가짜뉴스를 유포한 사람의 책임은 없나?
“오늘날 뉴스는 여전히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 청취자, 시청자들이 뉴스가 어떻게 생산되며, 어디서 정보가 왔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뉴스의 발생은 뉴스 자체를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BBC 글로벌뉴스 리처드 샘브룩
‘가짜뉴스’를 가리켜 언론사의 기사가 아닌데도 뉴스 형식으로 퍼트리는 것을 말한다며 언론사의 ‘허위정보’와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소셜미디어에 나도는 가짜뉴스나 언론사의 허위정보 모두 '가짜뉴스'로 보고 있습니다.
요새는 ‘가짜뉴스’나 ‘허위정보’ 등을 구분하거나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분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재선 출신의 총선 출마 후보가 언론사의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언급해 확산시킨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유네스코 총회는 저널리스트 윤리를 실천해야 하는 대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상당한 양의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저널리스트, 미디어 종사자, 그리고 소셜 미디어 생산자”라고 규정했습니다.
유튜버 또한 저널리스트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저널리스트 윤리를 실천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개인 채널이지만 거짓 정보와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행위를 했다면 저널리스트 윤리를 위반했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합니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되고, 국민들이 찬성하는 이유는 언론의 허위정보와 왜곡 보도는 당사자들에게 심각한 고통과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번 판결은 ‘기사’라는 형식으로 자극적인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더 이상 위 기사의 내용을 토대로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