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용마 MBC 기자 빈소 풍경
빈소가 차려질 무렵,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양 옆에 부축을 받으며 빈소로 들어갔다. 침통한 표정의 유족들이 뒤를 이었다. 이윽고 안경을 쓴 쌍둥이 남자아이들이 도착했다. 초등학생 쯤 됐을까, 입고 온 청바지와 흰 셔츠는 곧 검은 상복으로 바뀌었다. 가슴 한켠에는 검은 리본이 달렸다.
2019년 8월 21일,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잘난 동생, 사랑하는 남편이자 소중한 아빠이기도 했었을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 곤조 강했던 친구, 물러서지 않던 후배, 앞서 나간 선배... 한국 사회는 그를 '언론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에 저항하며 MBC 파업을 주도했던 고 이용마 기자다. 지난 2016년 복막암 투병 사실을 알렸던 고인은 이날 오전 6시 44분 5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는 침통하고 허탈했다. '부산 MBC', '기자협회', '방송기자협회' 등등. 빈소의 입구부터 복도 전체를 겹겹이 메운 화환이 고인이 차지하던 무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인의 후배인 양윤경 MBC 기자협회장은 고인에 대해 "시대의 짐을 짊어진 운명적인 사람"이라며 "올 봄까지만 해도 차도가 있어 현장에 복귀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과 박성제 보도국장 등이 고인의 빈소를 지켰다. MBC 노조 집행부 시절부터 파업 투쟁, 해직과 소송, 복직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 이들이다. 정 부장은 당시 노조 위원장이었다.
고인은 2016년 8월에 복막암 판정과 함께 1년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는 처음 자신을 덮친 불행을 쉬쉬했다. 그해 9월 19일 한겨레 김종구 논설위원(현 한겨레 편집인)이 '암에 걸린 후배 해직 기자를 바라보며'라는 칼럼을 통해 그의 투병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해고된 지 4년 6개월 째, 공영방송을 망가뜨릴대로 망가뜨린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2017년 12월 복직하던 날 그는 "단 한번도 오늘이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암울하던 시절이었다.
이용마 기자의 고등학교 선배인 김종구 논설위원도 그의 투병 사실을 알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칼럼에도 밝혔듯 "암 투병 소식을 알리겠다고 했을 때 그가 우려한 것은 자신의 개인 문제가 너무 부각되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다. 복막암은 복강을 감싸 장기를 보호하는 막이다. 수술도 어려운 희귀 병이다. 그 절망적인 시점에도 그는 '대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 논설위원의 칼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투병 소식이 2017년 MBC 노조의 장장 170일 파업을 촉발했고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을 닦는데 일조했다는 걸 부인할 이는 없다.
그가 본격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한 17년 12월에도 '잘 해야 한두 달 더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영하 부장은 "그런데도 20개월이나 더 살았다"며 "의지가 참 강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타협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지. 자기도 알아요 '모난 돌'이라고 스스로 말했으니까. 안 간 부처가 없었어요. 좋게 말하면 능력이 있었던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사 입장에서 껄끄러운 후배였죠. 상사 입장, 보도국 입장 고려 안하고 '이거다' 싶으면 그대로 밀어 붙이니까"
정 부장은 또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을 방송에서 처음 쓴 게 고인이 처음일 것"이라며 "아무도 삼성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뭐든 정공법이었어요. '분양 원가 공개'를 90년 대부터 주장했어요. 지금도 안 하고 있는 걸. '문제는 꺼내 놓고 해결하자', '시기상조란건 없다'는게 고인의 지론이였어요. 직구만 던지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끔은 변화구도 던져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정 부장은 2012년 당시 파업에 대해서도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투쟁이 아니었다"며 "'지금 우리가 피하면 후배들이 더 세게 맞는다, 우리 그러진 말자'는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MBC의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다는 것을 떠나 정상화하겠다는 의지, 원동력은 그 때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며 "고인이 뿌린 씨앗이자 남긴 과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조문 온 천정배 의원은 고인에 "언론자유가 짓밟히던 시절 앞장서서 언론자유를 수호하던 분"이라며 "모든 언론인이 고인의 뜻을 계속 발전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은 1996년 MBC에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다. 2012년 한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에서 홍보국장을 역임하며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에 맞서 MBC 파업을 이끌다 해고당했다. 이후 국민라디오에서 <이용마의 한국정치>를 진행했고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하던 중 2017년 최승호 MBC 사장이 취임하면서 해직된 동료들과 함께 복직했다. 저서로는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창비 펴냄)이 있다.
고 이용마 기자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다. 고인의 장례식은 23일 시민사회장으로 오전 9시 MBC 상암동 광장에서 열린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