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내민 손을 일본이 무시하니까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양국이 협상으로 풀어야 할 때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한-일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경제 갈등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일본 조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한국 조처) 등 안보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은 2명의 학자 인터뷰(
남기정, 양기호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강창일 민주당 의원에게 한-일 관계 해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강창일(67·제주갑) 의원은 국회에서 몇 안 되는 일본통이다. 일본 우익의 뿌리에 대한 연구로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17년부터 한일의원연맹 한국 쪽 회장을 맡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정부 쪽과 함께 오랫동안 고민해왔으며 일본 쪽과도 대화해왔다.
강 의원은 한-일 간 외교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봤다.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관건인데, 일본 경제나 정치적 역학관계 등으로 볼 때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지금 미국이 나 몰라라 할 때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일본 고도의 정치전략 사용 중”
―한-일 관계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에 이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배제 실행,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종료 결정 등 경제와 안보 분야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그렇다. 지금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그동안 한-일 간에 독도나 역사 교과서, 군위안부 문제 등등으로 조용한 적은 한번도 없긴 했지만, 그때는 한 테마로 싸움하고 옥신각신했다. 그래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투트랙이니 스리트랙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사 문제에서 시작해 경제 영역과 안보 문제 등 모든 분야로 전선이 확대됐다. 국교 단절 이외에는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일부터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예정대로 실행했다.
“수순대로 움직이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해놓고, 당분간은 지금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시행 자체가 가장 센 것이니까 더 구체적으로 자극하는 조처를 취해서 일본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는 빌미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일본이 고도의 정치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이 나온 뒤부터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할 때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부터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정부는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기 위해 애썼고, 저 역시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사들과 만나서 (강제 매각을) 미루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매각 결정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수출 규제 조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한 말과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기습 도발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 국내 정치용이 아니라 거대한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심하게 말하면,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합리화하면서 군국주의적인 일본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 아닌가 싶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강 의원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아시아주의-우익 낭인의 행동과 사상을 중심으로’, 2003년)에서 ‘일본의 조선 강점은 군부와 함께 일본 낭인집단이 앞장을 섰으며, 이 민간단체들이 후일 일본 우익세력의 뿌리가 됐다’는 점을 사료를 통해 증명한 바 있다.
―일본이 그렇게 큰 그림에 따라 움직인다면 우리도 장단기 목표를 정해서 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쪽 대응은 어떤가?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한데 우리의 대외관계에서 큰 전략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하는 좌표가 잘 안 보인다. 물론 일단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것 아니냐. 아베 총리가 일체 응하지 않으니까 지소미아 종료 등의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쪽에서는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 같은 분위기가 다소 있었다. 8·15 대통령 경축사에서도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
“그랬다. 청와대 등 정부 분위기도 당일 낮까지 그런 게 있었다. 아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토론 과정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 같긴 한데 지소미아 종료는 다른 나라들엔 우리가 새로운 문제를 꺼내든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저도 지소미아 결정 전에는 일본이 지소미아와 관련해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한국을 안보 비우호국 내지는 적대국 취급을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안보의 최고 가치인 정보 특히 군사정보를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자기모순을 일본이 해소해줘야만 한국도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일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런 일본의 태도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영향을 준 건가?
“그동안 우리는 나름 성의를 다했다.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 등의 정보를 다 제공해주고, 8·15 경축사도 일본에 사전에 알려줬다. 문 대통령께서 그렇게 엄청 자제하면서 손을 내밀었지 않았나. 8·15 경축사에 대해 일본에서는 우리가 마치 형님이나 대인처럼 군다면서 기분 나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우리의 본심은 아베 정권과 손잡고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 우리의 호의를 무시했다. 우리가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최종 종료까지는 3개월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일본통인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나 몰라라 방관자로 있을 때가 아니다.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소미아 종료는 대일 협상카드”
―지소미아 종료가 협상카드의 하나라는 건가?
“저는 그렇게 본다. 일본통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 뒤에 한일의원연맹 일본 쪽 누카가 후쿠시로 회장한테 전화를 해서 이 조처에 대해 설명하는 등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나.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하겠다는 이 총리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제안이 아니겠느냐. 거기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이 이 총리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썼던데 그것은 아니다. 일본은 한국이 먼저 안을 내놔 봐라, 그리고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27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지소미아 종료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지소미아의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두 사안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이 “강한 유감과 실망”이라는 등 우리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아주 무책임하다. 지소미아를 누가 만들었나. 미국이 앞장서서 만들었다. 3년 전 당시 야당인 우리가 매국적이고 망국적인 협정이라면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낼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미국이 정권에 압력을 넣어서 시작했던 것 아니냐. 그래놓고, 그것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한 일본에 대해서는 비겁하게 책임을 묻지 않고 한국 정부만 비난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공조체제를 중시한다면 미국이 지금 나 몰라라 할 때가 아니다. 지금 동북아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가면 가장 좋은 게 누구냐.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아니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미국은 빨리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한 지소미아는 애초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부터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6월에는 최종 서명 직전까지 갔으나,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한 국내 여론의 강한 반발에 밀려 막판에 취소됐다. 국정농단과 관련한 촛불집회가 일어나던 2016년 10월 말 박근혜 정부는 느닷없이 지소미아 논의 재개를 선언한 뒤 한달도 채 안 된 11월23일 일본과 지소미아에 서명했다. 당시에도 여론은 60%가 반대(리얼미터 조사)였다. ―일본이 외교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일본이 외교 협상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도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일본 경제도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이대로는 상처만 남는 치킨게임이 되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결국 협상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더구나 앞으로 도쿄 올림픽과 북핵 문제 등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 부분이 많이 있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하게 되면 일본이 다시 추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까. 그러면 더 나빠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있더라도 큰 틀은 아니고 자그마한 자극을 더 주는 정도일 거다. 그렇게 되기 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배상·보상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우리 정부는 오픈돼 있다. 그런 것을 협상테이블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지난 5월에 낸 ‘1+1 해법’(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출연)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얘기했다. 일본이 딱 잘라서 이것이라고 하면 우리는 해결책을 줄 수가 있는데 지금은 일본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다.”
―이낙연 총리는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식(10월22일)을 계기로 삼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일왕 즉위식에 대통령은 못 가더라도 총리는 가서 축하를 해야 한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8·15 때도 과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 분이다. 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니까 축하해야 한다. 대화는 그 전에라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먼저 하면 다른 쪽이 뒤따라 조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양쪽이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4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위해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과 강창일(왼쪽 둘째) 한국 쪽 회장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과 만나 얘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징용 피해 배·보상에 우리 정부도 나서야”
강 의원은 지난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청와대 및 정부 쪽 고위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왔다. 그가 줄곧 제시한 안은 일본 기업이 책임질 부분과 우리 정부가 해결할 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즉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은 판결대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되, 현실적으로 재판을 걸기 힘든 피해자들은 국민 보호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서 해결하자는 거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서 일본 쪽 부담이 적을 것으로 본다. 그마저 일본이 반발하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같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1+1 해법)도 가능하다는 견해다. 소송이 불가능한 대다수의 피해자는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득을 본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 의원은 “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현실적인 해법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일본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답답하다. 일본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도 사태 해결을 위해 냉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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