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영 /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민주노총은 일제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지난 8월 22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오사카 지역을 다녀왔다.선배 노동자들의 역사, 그 아픔을 배우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으로부터의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결심으로 2016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단바망간광산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고 매년 8월이면 일제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추모행사에 참가한 변희영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추모행사 참가기를 보내왔다. /민주노총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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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일제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8월 22~24일 일본 오사카 지역을 다녀왔다. 사진 왼쪽이 필자.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우리는 누구나 그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것들이 간직한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감히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로소 내 자신이 죄스럽고 겸손해지며, 삶을 사는 동안 반드시 전파해야만 하는 이야기들과 이런 삶의 무게를 어깨에 걸고 당당히 싸워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리라.
반인권의 늪, 우토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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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우토로마을을 둘러보며 일본의 조선인 탄압의 역사를 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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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우토로마을에서 타가와 아키꼬 '우토로마을을 지키는 모임'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우토로마을이 이미 철거되기 시작한 지 수년, 어쩌면 이곳은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가 적어도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싸우는 그 처절함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곳이 아닌가 싶었다.
우토로마을을 지키는 모임의 대표 ‘타가와 아키꼬’로부터 들은 전언의 일부 중 일본의 가장 큰 차별은 전기와 하수시설이다. 360가구나 되는 곳을 강제징용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문명으로부터도 배척하고 고립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마을 지우기에 앞장선 아베정권의 잔인함에 마음이 한없이 무너진다.
‘에루화’ 김수환 위원장으로부터 들었던 미군부대의 주둔을 시작으로 세월이 지나 자위대가 이 마을에 진을 치고 민간인을 협박하는 형국이나 조선인을 향한 반인권의 극대치를 일삼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사과는커녕 여전히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뻔뻔함에 도저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코리아 NGO센터’ 곽진웅 대표의 재일동포의 삶과 인권이라는 강연에서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재일동포의 회환과 아픔, 여전한 분단 조국으로 말미암은 설움이 묻어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로써 분단 조국을 노래하는 조선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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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우키시마호 추도식에서 추모노래를 부르는 조선학교학생들. 조선학교를 방문해 들은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노래 가사가 귓전에 맴돌았다.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교토의 재일동포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방문하였다. 이미 수년간 민주노총과 일정부분의 교류와 후원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국가지원을 받는 무상교육이 보편화 되어있지만, 유독 우리 동포들이 다니는 조선학교만은 제외되어 있음에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도대체, 일본 정부는 어떤 생각일까?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같음을 인정하지 않는, 더 나아가 조선인의 권리를 일방으로 박탈하고 있는 이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 중에 울리는 아이들의 합창, 허리가 반으로 잘린 어머니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노래는 아직까지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마지막 구절을 부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분단의 아픔을 끊고 동포들의 눈물을 닦아 줄 무엇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그것을 실천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현 정세로 인해 일본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을 때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단호함 또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 시련도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산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합니다.”
강제징용의 명백한 증언지, 단바망간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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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단바망간 광산에서 강제동원노동자 추모식을 가졌다. 이 강제동원노동자상은 민주노총이 2016년 8월에 세웠다.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망간을 캐내어 총신과 포신을 만들어야 하는 일본, 결국 일본은 엄청난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하고, 강제 노동을 강요했다. 높이 60cm, 폭 30cm의 공간에서의 강제 노역, 그리고 폭행과 굶주림.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 내가 서있음을 느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 그 당시를 잊지 말자며 강제징용 당사자인 고 이정호님과 그의 아들 이용석(현 기념관 소장)님이 수년에 걸쳐 자비로 복구하고 이것을 기념관으로 남겼지만, 현재 재정이 어려워 폐관을 고민하고 있다고 힘들게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우리 민주노총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운 곳이기도 하기에 이후, 우리는 이곳을 어떤 곳으로 남길 것인가 하는 숙제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8,000개 정도의 박물관 또는 기념관 중에 단바망간광산 기념관이 일본의 강제동원역사를 기록한 곳이기 때문에 일본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간사이방송>에서 취재를 하고 난 이후 끊임없는 일본우익들의 협박에도 이용식 소장은 굴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라는 단호한 입장으로 어려운 조건에서도 단바망간 기념관을 운영하고 계셨다.
양대노총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더 일제강점기 선배 노동자들의 삶과 역사를 기억하고 일본으로부터의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수천의 조선인이 죽어간 참사 현장, 우키시마호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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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우키시마호 추모비를 찾았다.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제 징용 노동자들과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많은 이를 태운 부산으로 향하던 화물선이 항로를 바꾼다. 그리고는 의문의 폭발로 5천 이상의 조선인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일본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참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요에 가쓰히꼬 우키시마호 추모모임 대표의 추도사에서 이 참사는 일본의 전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러므로 일본이 사죄하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민단과 총련이 추도식만은 함께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 동포들의 비통함과 한이 서려 있게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74년 전의 비극을 상기하며, 더 이상은 힘없이 죽임을 당한 선배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에 이에 마땅한 작은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고 각오한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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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일제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는 민중과 노동자들의 고통의 세월을 깨닫게 해줬고,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사진은 24일 우키시마호 추도식 모습. [사진 - 통일뉴스 변희영 통신원] |
더 이상은 아픔이 없어야 한다. 더 이상은 비극이 없어야 한다. 과거 열강과 제국주의로부터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 많은 이들, 심지어 친일을 한 이들로 인해 민중과 노동자는 고통의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 민중의 자주성을 가지고 통일된 국가가 되고, 또한 산적해 있는 동포들의 아픔을 함께 안아줄 우리로 거듭나자. 현장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고 좀 더 많은 노동자가 관심을 가지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도 추도식장에 울리던 <해당화 필 언덕에>라는 동포들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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