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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1일 수요일

한국은 과연 ‘한일군사정보협정’ 덕을 보고 있을까

‘연장’ 또는 ‘폐기’, 그리고 ‘제3의길’…이르면 22일 결론 나올 듯
신종훈 기자 sjh@vop.co.kr
발행 2019-08-21 20:52:00
수정 2019-08-21 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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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뉴시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기한 만료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체결 이후 두 번에 걸쳐 협정을 연장한 문재인 정부에 다시 선택의 순간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거센 만큼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목이 쏠린다.

정부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내용을 검토한 뒤 오는 22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를 거쳐 연장 여부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연장'과 '폐기' 외에 정보공유를 제한하는 방식의 '절충점'까지 선택지에 올려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기류다.
이와 관련, 지소미아의 군사적 효용성에 비춰 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허점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군사대국화' 일본 야망에 부역하는 지소미아
당초 정부의 기본 방침은 협정 연장을 긍정 검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사실상 '안보우려국'으로 취급하면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우대국) 배제를 밀어붙였고, 결국 정부는 막판까지 최종 결론을 유보하면서 지소미아를 대응카드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소미아가 태생부터 미국의 이해가 강하게 반영된 산물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의식한 결정을 내리지 않겠냐는 관측은 일찌감치 나왔다. 마크 에스퍼 신임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9일 첫 방한 때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역시 전날 국내 대기업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소미아 유지를 위한 역할을 당부했다.
미국이 한일 경제분쟁에는 짐짓 뒷짐을 지다가 지소미아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데는 그만한 맥락이 있다. 지소미아를 활용한 일본의 조기경보체계는 미국 주도의 통합 MD(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 6월 24일 미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해 상·하원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 적시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보고서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너무 가까워 미사일이 수분 내에 저궤도로 날아오기 때문에 한미일 3국 미사일방어 공조로 별다른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그 산물인 지소미아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통한 미사일 정보 공유의 전략적 수혜국에 포함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소미아는 미국과 그 핵심 동맹국인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국의 국익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장치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군사대국화를 통한 '보통국가' 건설을 꿈꾸는 일본 우익들의 오랜 야망에 한국이 적극 부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당시 주한일본대사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고 있다.
2016년 11월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당시 주한일본대사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고 있다.ⓒ국방부 제공
태생부터 '졸속'
이미 2015년 안보법제를 개정해 집단적자위권 행사의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지소미아로 날개를 달았다. 이는 대중국 견제를 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이를 적극 이용하려는 아베 총리 등 일본 우익의 속셈이 절묘하게 결합된 산물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동맹 의존적 군부는 미일동맹을 구성하는 이런 핵심적 요소에 참여해야 강력한 '한미일 안보협력'이 완성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 탄핵' 촛불이 타오를 당시 여론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는 틈을 타 졸속으로 지소미아를 체결한 배경이 됐다. 또한 2012년 6월 이명박 정부가 몰래 협정을 추진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쫓겨나기 직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함께 밀실에서 비공개로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그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고, 협정 주체가 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 졸속이었다.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국방부는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이달 초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소미아 체결 이후 4년 동안 한일 간에 이뤄진 군사정보 공유 실적은 30건 미만이다.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2017년에 집중적으로 정보가 공유됐으며, 주로 미사일 발사 등 군사행동 초기단계의 탐지정보가 일본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보는 일본의 대비태세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심 정보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압도적인 정찰위성과 이지스체계, 공중조기경보기, 해상초계기 등 첨단 정보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상 일본의 정보자산은 사후 분석 자료에 활용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2012년 4월 13일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3호를 탑재한 로켓 은하3호를 쏘아 올렸을 때 한국의 세종대왕함은 발사 54초 만에 이를 탐지한 반면, 일본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16년 8월 3일 북한의 노동미사일이 일본 아오모리현 인근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 2016년 10월 28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016년 10월 28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김철수 기자
"실제론 한미일 협력에 큰 비중 차지 안 해"
일본은 '지소미아 폐기' 가능성이 거론되자 "협정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강도 높게 밀어붙이던 일부 수출규제 품목을 최근 부분적으로 다시 허가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소미아가 일본에 대한 협상카드로 효용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측면도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외교협상력을 높이려는 정부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최종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단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달아오른 국내 여론과 미국의 압력 사이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분위기다. 이 사안이 한일 양국의 문제를 넘어 동북아 정세에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지소미아가 한미일 안보협력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애당초 지소미아가 한미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결정적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소미아를 폐기하면 미국의 불만을 살 수 있다는 우려는 한국에서만 나오는 얘기"라며 "지소미아 카드는 수많은 외교적 선택 사항 중 하나로 보도 오히려 융통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소미아 폐기에 대해 스스로 공포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건 자승자박"이라며 "폐기든, 절충이든 필요하면 외교적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와 군사정보의 양적·질적 평가 등 여러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판단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판단의 기준을 일본의 태도 변화에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패를 내보이지 않으면서 상대의 반응을 최대한 이끌어내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지소미아 연장 여부와 관련해 "여러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며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나라와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류하는 게 맞느냐는 측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자료사진)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자료사진)ⓒAP/뉴시스 제공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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