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의 씨가 마르기 시작하자 해양수산부는 올해 ‘주꾸미 금어기’를 신설했다. 어쩌다 주꾸미마저 못 잡게 되었을까.
어민과 낚시꾼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8년 05월 03일 목요일 제554호
충남 보령 출신 소설가 이문구의 작품에는 주꾸미가 자주 나온다. 1977~1981년 발표한 연작소설 <우리 동네>에서 어느 여인은 질박한 사투리로 이렇게 신세타령한다. “접때 장부텀 봄 것은 읎는 게 읎이 죄 새로 나와 만전했던디 그 흔해터진 쭈꾸미 한 코 못 만져보고 사네.”
그랬다. 주꾸미는 원래 흔해터진 ‘바닷것’이었다. 봄가을이면 서해와 남해 연안에서 무시로 잡혔다. 봄철 보릿고개 때면 바닷가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구황식품 노릇을 했다. 특히 주꾸미를 ‘쭈깨미’라 부르는 충남 지역이 전국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충남 사람들에게 주꾸미는 흔한 바다 생물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주꾸미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주꾸미에게 위기가 닥치자, 아우성은 인간이 질렀다. 봄철 알배기 주꾸미가 나올 때만 되면 주꾸미 값이 폭등해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998년 7999t이었던 주꾸미 어획량은 2012년 3415t으로 반타작 났고, 2016년엔 2281t으로 줄었다.
그랬다. 주꾸미는 원래 흔해터진 ‘바닷것’이었다. 봄가을이면 서해와 남해 연안에서 무시로 잡혔다. 봄철 보릿고개 때면 바닷가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구황식품 노릇을 했다. 특히 주꾸미를 ‘쭈깨미’라 부르는 충남 지역이 전국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충남 사람들에게 주꾸미는 흔한 바다 생물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주꾸미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주꾸미에게 위기가 닥치자, 아우성은 인간이 질렀다. 봄철 알배기 주꾸미가 나올 때만 되면 주꾸미 값이 폭등해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998년 7999t이었던 주꾸미 어획량은 2012년 3415t으로 반타작 났고, 2016년엔 2281t으로 줄었다.
ⓒ시사IN 이명익
4월12일 충남 보령시 인근 바다에서 화랑호 선주 김동주씨가 소라 껍데기에서 주꾸미를 빼내고 있다. |
올해는 주꾸미에게 의미심장한 해다. 사상 초유의 ‘주꾸미 금어기’가 실시된다. 5월11일부터 8월31일까지 주꾸미를 잡는 행위가 완전히 금지되며,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어쩌다 주꾸미마저 못 잡게 되었을까. 단순히 어민들의 남획으로 인한 자원 고갈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걸까.
4월12일 아침 6시. 동이 터오는 충남 보령시 오천항 풍경은 뜻밖이었다. 평일인데도 항구에는 형형색색의 낚시복을 갖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착장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배만 10여 척. 어림잡아 100명이 차례차례 낚싯배에 올랐다. 전날 밤 적막하던 항구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새벽부터 차로 달려 이곳에 도착한 낚시꾼들이었다.
오천항은 천혜의 어장인 천수만에서 홍성군 광천읍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다. 어족 자원이 풍부해 예부터 ‘자연양식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낚싯배가 성행하는 곳이다. 특히 주꾸미 낚시로 유명하다.
그런데 봄철인 지금은 낚시로 주꾸미를 잡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3~5월 산란기를 맞은 주꾸미가 바다 밑바닥으로 몸을 숨기기 때문이다. 봄철에는 어민들이 설치한 주꾸미 그물을 통해서나 어획이 가능하다. 가을이 되어서야 알에서 부화한 주꾸미가 바닷속을 헤엄치는데, 그때가 주꾸미 낚시 성수기다. 지금 낚시꾼들은 우럭, 도다리 등을 잡으러 온다.
비수기에 이 정도니 주꾸미 낚시 성수기인 9~10월이 되면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많을 때는 하루 5000명씩 주꾸미 낚시꾼이 몰려든다. 항구에는 차 댈 곳이 없어서 매일 주차전쟁이 벌어진다. 1인당 7만~10만원 정도를 내고 낚싯배를 타는데, 주꾸미가 잘 잡힌다고 소문난 배는 6월부터 예약해야 낚시가 가능할 정도다.
문제는 가을철 낚시꾼이 잡는 주꾸미가 ‘치어’라는 점이다. 봄철 산란기를 지나고 알에서 부화한 어린 주꾸미가 막 활동을 시작할 무렵 주꾸미 낚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낚시꾼들은 이때 잡은 주꾸미를 ‘100원짜리’ ‘500원짜리’라 부른다. 그만큼 작다는 뜻이다. 주꾸미가 거미처럼 작다 해서 ‘거미 낚시’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4월12일 아침 6시. 동이 터오는 충남 보령시 오천항 풍경은 뜻밖이었다. 평일인데도 항구에는 형형색색의 낚시복을 갖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착장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배만 10여 척. 어림잡아 100명이 차례차례 낚싯배에 올랐다. 전날 밤 적막하던 항구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새벽부터 차로 달려 이곳에 도착한 낚시꾼들이었다.
오천항은 천혜의 어장인 천수만에서 홍성군 광천읍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다. 어족 자원이 풍부해 예부터 ‘자연양식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낚싯배가 성행하는 곳이다. 특히 주꾸미 낚시로 유명하다.
그런데 봄철인 지금은 낚시로 주꾸미를 잡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3~5월 산란기를 맞은 주꾸미가 바다 밑바닥으로 몸을 숨기기 때문이다. 봄철에는 어민들이 설치한 주꾸미 그물을 통해서나 어획이 가능하다. 가을이 되어서야 알에서 부화한 주꾸미가 바닷속을 헤엄치는데, 그때가 주꾸미 낚시 성수기다. 지금 낚시꾼들은 우럭, 도다리 등을 잡으러 온다.
비수기에 이 정도니 주꾸미 낚시 성수기인 9~10월이 되면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많을 때는 하루 5000명씩 주꾸미 낚시꾼이 몰려든다. 항구에는 차 댈 곳이 없어서 매일 주차전쟁이 벌어진다. 1인당 7만~10만원 정도를 내고 낚싯배를 타는데, 주꾸미가 잘 잡힌다고 소문난 배는 6월부터 예약해야 낚시가 가능할 정도다.
문제는 가을철 낚시꾼이 잡는 주꾸미가 ‘치어’라는 점이다. 봄철 산란기를 지나고 알에서 부화한 어린 주꾸미가 막 활동을 시작할 무렵 주꾸미 낚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낚시꾼들은 이때 잡은 주꾸미를 ‘100원짜리’ ‘500원짜리’라 부른다. 그만큼 작다는 뜻이다. 주꾸미가 거미처럼 작다 해서 ‘거미 낚시’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주꾸미 낚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잡기 쉬워서다. ‘주꾸미 구슬’이라는 도구가 있다. 흰색 구슬에 갈고리를 단 도구인데, 밝은 색을 좋아하는 주꾸미가 구슬에 접근했다가 갈고리에 걸려 올라온다. 초보자도 하루에 수십 마리는 거뜬하다. 경력이 되는 ‘꾼’들은 하루 수백 마리씩 잡는다. 10명 정도 탄 주꾸미 낚싯배 한 척의 하루 어획량이 작은 어선보다 훨씬 많다.
이날 아침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선착장에 낚싯배만 가득할 뿐 어선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선들은 뱃길로 1㎞ 떨어진 보령방조제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방조제 근처에서 출항을 준비 중인 화랑호 선주 김동주씨는 “낚싯배 때문에 항구에 배를 댈 수 없어 이리로 옮겼다. 사실상 밀려난 셈이다”라고 말했다.
주꾸미 어민의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기
허락을 구해 화랑호에 올라탔다. 배는 20분을 달린 뒤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 앞에 멈췄다. ‘주꾸미 그물(밧줄에 소라 껍데기를 매단 것)’을 설치한 곳이다. 김동주씨 부부가 힘차게 밧줄을 끌어당기자 소라 껍데기가 도르래를 타고 올라왔다. 시인이 노래했던 주꾸미 잡이 풍경과 똑같았다. ‘빈 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 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 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 알 깔 집으로 유인한/ 주꾸미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함민복, <주꾸미>).’
그러나 주꾸미가 ‘줄줄이 딸려’ 오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언뜻 봐서는 소라 껍데기 수십 개꼴로 1마리씩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김씨는 “20년 전에 비해 주꾸미가 든 소라 껍데기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출렁이는 배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물을 당기고 주꾸미를 꺼내고, 다시 그물을 치는 작업이 되풀이됐다. 그 와중에 주꾸미가 ‘청소’한 해양 쓰레기도 수거했다. 주꾸미는 바다 밑바닥에 깔린 비닐조각, 낚싯바늘 등을 빨판에 붙인 채 잡히는 경우가 많아 ‘바다의 청소부’라 불린다. 과거 충남 태안에서 고려청자 조각이 주꾸미 빨판에 붙어 나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날 4시간가량 작업한 끝에 화랑호가 얻은 수확량은 40㎏. ‘만선’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전날은 이보다 훨씬 못했다. 이날 수협 경매가가 1㎏당 1만7500원이었다. 수협 직원이 김씨에게 “오늘은 돈 좀 만졌네”라며 웃었다.
이날 아침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선착장에 낚싯배만 가득할 뿐 어선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선들은 뱃길로 1㎞ 떨어진 보령방조제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방조제 근처에서 출항을 준비 중인 화랑호 선주 김동주씨는 “낚싯배 때문에 항구에 배를 댈 수 없어 이리로 옮겼다. 사실상 밀려난 셈이다”라고 말했다.
주꾸미 어민의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기
허락을 구해 화랑호에 올라탔다. 배는 20분을 달린 뒤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 앞에 멈췄다. ‘주꾸미 그물(밧줄에 소라 껍데기를 매단 것)’을 설치한 곳이다. 김동주씨 부부가 힘차게 밧줄을 끌어당기자 소라 껍데기가 도르래를 타고 올라왔다. 시인이 노래했던 주꾸미 잡이 풍경과 똑같았다. ‘빈 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 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 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 알 깔 집으로 유인한/ 주꾸미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함민복, <주꾸미>).’
그러나 주꾸미가 ‘줄줄이 딸려’ 오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언뜻 봐서는 소라 껍데기 수십 개꼴로 1마리씩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김씨는 “20년 전에 비해 주꾸미가 든 소라 껍데기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출렁이는 배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물을 당기고 주꾸미를 꺼내고, 다시 그물을 치는 작업이 되풀이됐다. 그 와중에 주꾸미가 ‘청소’한 해양 쓰레기도 수거했다. 주꾸미는 바다 밑바닥에 깔린 비닐조각, 낚싯바늘 등을 빨판에 붙인 채 잡히는 경우가 많아 ‘바다의 청소부’라 불린다. 과거 충남 태안에서 고려청자 조각이 주꾸미 빨판에 붙어 나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날 4시간가량 작업한 끝에 화랑호가 얻은 수확량은 40㎏. ‘만선’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전날은 이보다 훨씬 못했다. 이날 수협 경매가가 1㎏당 1만7500원이었다. 수협 직원이 김씨에게 “오늘은 돈 좀 만졌네”라며 웃었다.
ⓒ시사IN 조남진
충남 보령시 오천항에 낚싯배가 정박해 있다. 가을철이면 이곳은 주꾸미 낚시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그럼에도 요즘 김씨를 비롯한 주꾸미 어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우선 금어기의 형평성 문제다. 사실상 봄 한 철 벌어 먹고사는 현실에 금어기를 5월 초순부터 지정한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주꾸미 알이 여물려면 5월 말은 되어야 하는데, 값어치가 올라갈 때쯤 금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어기가 풀리는 9월부터는 낚시 시즌이다. 낚시업계가 이번 금어기 조치로 입는 타격은 어민들에 비해 훨씬 적다.
더 큰 불만은 낚시꾼의 행태다. 앞서 말했듯 가을철에 마구잡이로 어린 주꾸미를 잡는 바람에 이듬해 알을 밸 주꾸미의 씨가 마른다는 것이다. 끊어진 낚싯줄, 낚시 추, 바늘 따위는 바다를 오염시킨다. 낚싯배와 어선의 충돌 사고, 쓰레기 투기 문제도 갈등 요소다.
문제는 이것이 주꾸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자원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어민과 낚시인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어촌에서는 토박이인 어민과 주로 외지 출신인 낚싯배 운영자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가면서 언젠가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현재 바다낚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언젠가부터 ‘낚시 인구 700만 시대’라는 말이 퍼졌지만 추정치다. 비교적 정확한 통계가 있다. 해양경찰청이 낚시 어선 이용객의 승선 신고를 집계한 자료다(55쪽 표 참조).
1997년 47만명이었던 낚시 어선 이용객 수는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최근 통계다. 2015년 295만명, 2016년 342만명, 2017년 414만명으로 2년 만에 100만명 넘게 증가했다. 중복 신고하는 경우를 감안해도 엄청난 증가세다. 민물낚시까지 더하면 낚시 인구 700만이 과장된 수치는 아니다.
새로운 취미를 찾던 사람들이 낚시에 눈을 떴다. 특히 최근 <도시어부> <성난 물고기> 등 본격 낚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낚시의 역동성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어가 인구(판매를 목적으로 1개월 이상 어선, 맨손, 양식 어업 등에 나선 가구)는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19만2300명이던 인구는, 2016년에 12만5700명까지 줄었다(55쪽 표 참조). 대개 농어촌이 그렇듯 이 수치는 앞으로 더욱 내리막길일 것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존 여론은 어족 자원 고갈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어민의 무분별한 남획을 지적해왔다. 이제 거꾸로 바다에서 ‘다수파’가 된 낚시꾼의 몰지각한 남획과 환경 파괴 문제를 비판하면 되는 걸까.
낚시면허제 도입이 정답 될까
해양수산부는 낚시업계에 칼을 빼들었다가 머쓱했던 적이 많다. 돈을 내고 이용권을 구매한 사람만 낚시를 할 수 있는 ‘낚시 이용권’ 제도 및 주꾸미· 문어·갈치 등을 대상으로 1인당 포획량 제한을 실시하려다 낚시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곤 했다. 올해도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불투명하다. 지난 2월 ‘낚시 부담금 말이 안 되는 이유’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1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다. 반면 낚시면허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어민 측의 청원도 여러 건 올라왔다.
상생의 길은 없는 걸까. 다행히 희망의 끈은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어민과 낚시꾼 모두 어족 자원 고갈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민들 중에도 옛날처럼 바다가 무한정 인간에게 먹을 걸 내줄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랑호 선주 김동주씨는 “낚시면허제가 도입되는 등 진전이 있다면 어민들도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천항의 한 낚싯배 사무국장 역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낚시면허제 도입에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이러다 다 죽는다”라는 말이었다.
남은 문제는 더 있다. 이른바 ‘형망 어업’ 등으로 바다를 초토화하는 일부 어민 문제다. 형망 어업은 자루 모양의 그물 끝에 쇠틀을 달아 해저를 긁으면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바다 밑바닥을 긁어버리기 때문에 조개는 물론 주꾸미도 쓸어 담는다. 최근에는 고압 분사기 등 불법 어구까지 이용해 어패류를 초토화하는 바다의 무법자다. 무허가 조업에도 벌금밖에 제재 조치가 없어 일부 지역에서는 어민들이 돌아가며 벌금을 물고 조업에 나선다. 바다 자원을 싹쓸이하는 대형 저인망 어선에 대한 규제도 관련 업계의 반발 탓에 지지부진하다. 주꾸미 어민들이 구멍가게라면, 이들은 대형마트다.
더 큰 불만은 낚시꾼의 행태다. 앞서 말했듯 가을철에 마구잡이로 어린 주꾸미를 잡는 바람에 이듬해 알을 밸 주꾸미의 씨가 마른다는 것이다. 끊어진 낚싯줄, 낚시 추, 바늘 따위는 바다를 오염시킨다. 낚싯배와 어선의 충돌 사고, 쓰레기 투기 문제도 갈등 요소다.
문제는 이것이 주꾸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자원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어민과 낚시인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어촌에서는 토박이인 어민과 주로 외지 출신인 낚싯배 운영자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가면서 언젠가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현재 바다낚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언젠가부터 ‘낚시 인구 700만 시대’라는 말이 퍼졌지만 추정치다. 비교적 정확한 통계가 있다. 해양경찰청이 낚시 어선 이용객의 승선 신고를 집계한 자료다(55쪽 표 참조).
1997년 47만명이었던 낚시 어선 이용객 수는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최근 통계다. 2015년 295만명, 2016년 342만명, 2017년 414만명으로 2년 만에 100만명 넘게 증가했다. 중복 신고하는 경우를 감안해도 엄청난 증가세다. 민물낚시까지 더하면 낚시 인구 700만이 과장된 수치는 아니다.
새로운 취미를 찾던 사람들이 낚시에 눈을 떴다. 특히 최근 <도시어부> <성난 물고기> 등 본격 낚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낚시의 역동성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어가 인구(판매를 목적으로 1개월 이상 어선, 맨손, 양식 어업 등에 나선 가구)는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19만2300명이던 인구는, 2016년에 12만5700명까지 줄었다(55쪽 표 참조). 대개 농어촌이 그렇듯 이 수치는 앞으로 더욱 내리막길일 것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존 여론은 어족 자원 고갈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어민의 무분별한 남획을 지적해왔다. 이제 거꾸로 바다에서 ‘다수파’가 된 낚시꾼의 몰지각한 남획과 환경 파괴 문제를 비판하면 되는 걸까.
낚시면허제 도입이 정답 될까
해양수산부는 낚시업계에 칼을 빼들었다가 머쓱했던 적이 많다. 돈을 내고 이용권을 구매한 사람만 낚시를 할 수 있는 ‘낚시 이용권’ 제도 및 주꾸미· 문어·갈치 등을 대상으로 1인당 포획량 제한을 실시하려다 낚시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곤 했다. 올해도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불투명하다. 지난 2월 ‘낚시 부담금 말이 안 되는 이유’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1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다. 반면 낚시면허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어민 측의 청원도 여러 건 올라왔다.
상생의 길은 없는 걸까. 다행히 희망의 끈은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어민과 낚시꾼 모두 어족 자원 고갈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민들 중에도 옛날처럼 바다가 무한정 인간에게 먹을 걸 내줄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랑호 선주 김동주씨는 “낚시면허제가 도입되는 등 진전이 있다면 어민들도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천항의 한 낚싯배 사무국장 역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낚시면허제 도입에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이러다 다 죽는다”라는 말이었다.
남은 문제는 더 있다. 이른바 ‘형망 어업’ 등으로 바다를 초토화하는 일부 어민 문제다. 형망 어업은 자루 모양의 그물 끝에 쇠틀을 달아 해저를 긁으면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바다 밑바닥을 긁어버리기 때문에 조개는 물론 주꾸미도 쓸어 담는다. 최근에는 고압 분사기 등 불법 어구까지 이용해 어패류를 초토화하는 바다의 무법자다. 무허가 조업에도 벌금밖에 제재 조치가 없어 일부 지역에서는 어민들이 돌아가며 벌금을 물고 조업에 나선다. 바다 자원을 싹쓸이하는 대형 저인망 어선에 대한 규제도 관련 업계의 반발 탓에 지지부진하다. 주꾸미 어민들이 구멍가게라면, 이들은 대형마트다.
바다 생태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방조제 문제는 아예 이슈로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서산 A·B방조제, 보령·홍성방조제 등 천수만 일대에만 네 개 방조제가 우뚝 서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때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방조제 철거를 시사한 바 있지만 이 또한 물 건너갔다. 어쩌면 공유지를 망친 주범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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