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추진, 국제사회 대북제제 해제 되면…러시아 PNG가 석탄 대체 할 수 있을까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이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미세먼지를 걷어낼 수 있다”
다소 황당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자연재해’ 수준의 위협이 된 미세먼지 완화에 ‘판문점 선언’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화해 분위기와 북미회담, 국제사회의 제재 해소 국면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단된 러시아-북한-한국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 연결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가스관을 통해 들어온 천연가스가 발전 원료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소를 ‘셧다운’ 시킬 수 있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지시는 했는데...
높아지는 발전 단가 부담, 결국 국민몫?
높아지는 발전 단가 부담, 결국 국민몫?
“30년 넘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는 한 달간 가동을 중지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5일 내린 지시다. 전국 미세먼지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멈춰 ‘오염원’을 차단하자는 취지였다. 전국의 석탄발전소는 모두 59개가 있는데 이 중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 8곳이 한 달간 가동 중지됐다.
가동 중단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보령의 석탄발전소에서 3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해 봤더니 일 평균 미세먼지 8.6%가 개선됐고, 시간당 최고 14.1%의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으로 측정됐다. 전국적으로도 노후 석탄발전소 10기 가동이 중단되면 매년 미세먼지 때문에 발생하는 ‘조기 사망자’ 23명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효과를 본다. 여기에 연간 3천569억원의 환경 편익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노후 석탄발전소 10곳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신규 건설되는 석탄발전소는 ‘천연가스’로 대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제는 ‘돈’이다.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전력 생산을 천연가스발전소로 대체할 경우 발전단가가 높아진다. 2015년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석탄발전소의 킬로와트(kWh)당 발전 단가는 석탄이 60.1원인데 반해 천연가스는 147.4원이다. 천연가스로 전력을 생산하려면 석탄보다 2배 넘는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발전 단가가 올라가면 국민들의 전기료 부담도 높아진다. 당장은 노후 석탄발전소 10기 가동 중단으로 발생하는 일부 전기 수요를 가스발전으로 돌릴 뿐이지만 장기적으로 59곳에 달하는 석탄발전을 모두 대체할 경우 부담은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단가 격차 축소를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석탄과 가스발전단가는 10%이상 차이가 난다.
‘경제급전’ 원칙상 연료가 상대적으로 싼 발전소부터 가동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전력이 필요할 경우 연료가 싼 석탄발전소를 먼저 가동하고 전기가 더 필요할 경우 가스발전, 유류발전 순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석탄발전 비중이 전체 전력 소비의 70%에 달하고 가스발전이 16.9%로 20%를 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지난해 가스발전소 평균 가동률은 30% 수준을 넘지 못했고 그만큼 수익성도 낮았다.
미세먼지 절감이라는 목표에 비해 국민 부담은 너무 높고 발전 산업 자체에도 큰 유인이 없었 것이다.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한-러-북 모두 이익
관건은 가스발전 단가를 낮추는 일이다. 가스발전 원료인 액화천연가스는 100% 수입이다. 절반은 카타르와 오만 등 중동에서, 나머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호주에서 들여온다. 액화천연가스(LPG, Liquefied Natural Gas)는 생산국에서 채취한 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시켜 액화 상태로 만든 후 저장해 화물선으로 운송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육상으로 이송할 방법이 없는 나라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정제와 냉각, 운반비용이 추가되는 만큼 가격이 비싸다.
반면 유럽과 북미 등 대부분의 국가는 PNG(Pipeline Natural Gas), 즉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는다. 생산지에서 곧장 파이프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LNG 해상 수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PNG 최대 수출국 중 하나가 러시아다. 우리 정부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 천연가스를 직접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러시아-북한-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연결해 천연가스를 육상으로 수입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에서 PNG를 수입하면 중동에서 LNG를 수입하는 비용의 1/4정도만 들이면 된다고 보고 있다. 수입처가 다변화 되면서 기존 수입처들과 가격 협상력도 올라간다. 이는 가스발전 생산단가 하락으로 이어져 석탄발전소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천연가스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는데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과 북미회담, 이어지는 국제사회 제재 완화 국면이 오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전망이다.
러시아 PNG 수입 사업은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처음 합의됐다. 이후 2006년 한러 담당 장관 사이에 ‘가스산업 협력 협정’이 체결됐고 2011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로드맵까지 합의됐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연이어 핵심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실시하며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며 사업은 중단됐다.
러시아는 적극적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주 수입원인 러시아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공급을 위한 가스관 공사도 상당히 진척됐다.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가스관은 지난 2011년 이미 완공됐다. 푸틴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한국과 일본으로 천연가스를 수출 사업에 공을 들여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러시아 특사로 파견해 푸틴 대통령과 천연가스관 건설 사업을 논의하도록 했다. 문 대통령은 송 특사가 돌아온 4개월 뒤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9개의 다리(9브릿지_Bridges)’로 불리는 ‘신북방정책’을 발표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력과 물류, 농업 등 ‘9개의 다리’를 놓아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신북방정책의 핵심이 바로 러시아 가스관 연결 사업이라고 봤다.
북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은 자국을 통과하는 가스관에 통과세 개념의 이용료를 붙여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이용해 발전 등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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