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합의를 먼저 깬 쪽은 미국이다[특별기획] 북미 핵공방 30년사, 교훈과 과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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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이 다음달 12일 열린다. ‘리비아식’이다, ‘트럼프식’이다, 예측이 난무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합의도 이행하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1989년 9월 미국 첩보위성이 촬영한 사진 판독에서 북한(조선) 영변에 핵재처리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촉발된 북미핵공방은 6자회담을 포함해 4차례(▲1994년 제네바합의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합의에 이른다.
제네바합의, 미국은 애초 이행할 의사가 없었다
북한(조선)은 제네바합의 이후 NPT에 복귀하고 핵발전 시설을 동결했다. 당시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동안 북한(조선)의 핵 발전 시설을 가동 중단할 수 있었던 제네바합의는 성공적인 국제 합의였다”고 회상한데서 북한(조선)의 제네바합의 이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미국 의회는 북한(조선)과의 국제적 합의는 공산국가인 북한(조선)에 대한 회유책이라는 이유로 북한(조선) 경수로 발전소 개발 자금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건설기간 10년이 소요되는 경수로 발전소는 2001년까지 7년 이상 지연됐다. 이후 한·미·일이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해 경수로 원자로를 짓기 시작했지만 약속한 2003년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또한 미국은 매년 50만톤을 약속한 중유 공급도 4차례나 빠트렸고, 그나마 2001년부터는 완전히 중단해 버렸다.
북한(조선)은 약속한 2003년까지 경수로 건설이 완료되지 않자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한편 1997년과 1998년 작성된 미 국무부의 한반도 배경자료 문건엔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조선)의 경제난이 위험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미국의 접근법은 북한(조선)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의미있는 개혁에서부터 북한(조선) 정권붕괴까지 폭넓은 옵션을 충분히 아우를 정도로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94년 여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극심한 자연재해를 이유로 “이르면 3주나 3개월, 늦어도 3년 내에 북한(조선)이 망한다”는 이른바 ‘3·3·3 붕괴론’이 횡행했다. 결국 북한(조선) 붕괴를 예상한 미국으로선 10년을 기한으로 한 제네바합의를 애초에 이행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북미 공동코뮤니케,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깨지다
이른바 ‘금창리 핵개발 의혹’으로 시작된 1998년 북미 대결은 99년 ‘페리 보고서’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해 10월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북미 공동코뮤니케 발표를 이끌어내면서 북미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잠시 조성됐던 북미간 평화국면은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산산이 조각났다. 2000년 말 대북 강경노선을 내세우며 등장한 부시 대통령은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더니 2001년에는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2002년 연두교서에선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전면적인 대북 적대정책으로 전환했다. 그해 3월 발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에선 북을 핵 선제공격 대상국으로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2002년 10월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이 대북 강경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우리는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강조한 발언을 “북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왜곡하곤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따라 북에 제공하기로 한 12월분 중유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북은 12월12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중유 제공은 원자력발전소들을 동결하는데 따르는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의무사항인데 미국이 이를 포기해 당장 전력생산에 공백이 생겼으니 동결했던 핵시설을 재가동한다는 것이었다.
9.19공동성명을 위조지폐와 마약으로 희석한 미국
2005년 9월19일 제4차 2단계 6자회담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의 내용이 담긴 9.19공동성명을 만들어냈지만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 재무부는 북이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달러 위조지폐를 유통하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대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다며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하고 북 계좌에 있는 24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2006년 1월 북과 미국,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베이징에서 회동했으나 ‘선(先)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북과 북의 ‘아픈 곳’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3월7일 북미 양국은 뉴욕에서 금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적 접촉’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북은 위폐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교류와 합동 협의기구 설치를 제안했지만, 미국은 ‘불법행위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며 북의 제안을 일축했다.
북한(조선)의 BDA 동결자금은 2007년 2.13합의 이후 미국이 슬그머니 계좌 송금을 허용해 BDA 문제가 최종 해결될 때까지 약 2년 동안 북미간 최대 경제현안이었다.
2.13합의, 그 이후
2007년 2월13일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에서 2.13합의가 채택되고 그 이행을 위한 10.3합의가 이뤄졌다. 그 골자는, 북한(조선)이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프로그램 신고 등에 합의하면, 이에 상응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중유로 환산해 100만톤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적성국무역법 제재 해제,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회의 개최 등 ‘동시행동 원칙’에 따른 약속 이행이었다.
2.13합의가 있은 지 11년이 지났다. 그러나 미국은 2007년 이후 중유 지원을 1톤도 하지 않았으며, 북한(조선)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았다. 적성국무역법 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역사상 최강의 경제 제재와 핵 전략자산을 동원한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조선)은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아무런 행동이 없었으므로 핵 개발을 계속했고,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다음달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2000년 공동코뮤니케를 능가하는 ‘평화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북미간 주요 합의들을 번번이 먼저 깨버린 미국을 상대로 이번엔 어떻게 협상에 임할지 북한(조선)의 협상전략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특히 북미정상회담 날짜를 확정하기 직전 이란과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남은 회담 성사나 합의 내용보다 이행여부가 더 불투명해 보인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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