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 달 필요 있나
도로변 학교 등 위험 큰 학교부터…측정기 정확도 유지 등 후속 조처 마련 앞서야
측정기 수만~수백만원 다양…가격 대비 성능 공개하고 석면 등 다른 위해 규명도 필요
» 정부의 공식 대기오염 측정소는 생활 공간의 오염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5월 14~15일 진행된 ‘미세먼지! 미세요!’ 프로젝트에 참가한 시민이 가로등에 총부유먼지와 이산화질소를 측정할 수 있는 측정 키트를 설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머지않아 미세먼지 사태가 닥칠 것이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야외 운동을 해도 되는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더구나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의 걱정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 아이가 고농도 미세먼지에 노출된 채 방치되면 어떻게 하나,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을 하면 어떻게 하나?
대도시 지역에는 대기오염 측정망이 설치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대기오염 주의보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측정소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학교가 많아 측정소 농도만으로는 주변 지역의 대기오염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바로 그곳의 대기질을 알고 싶어 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민감 계층의 대기오염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새 정부의 정책은 옳고 필요하다. 그러나 관련 사업으로 발표되었던 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달아주는 사업은 취지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까?
» 대기오염 피해에 민감한 계츧의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정책이다. 미세먼지 해법 찾는 집단지성 서울시민 3천여명이 5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탁자 250개에 앉아 미세먼지 해법을 집단지성으로 찾는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초기에 발표했던 대로 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간이 미세먼지 측정치의 자료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현재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의 대부분은 측정법이 환경기준 농도 방식과 다르며 측정기 기기 사이에도 차이가 크다. 당연히 측정치가 정확하냐의 문제가 제기 될 것이며, 이 측정치를 환경기준과 비교할 수 있냐 하는 문제가 나올 것이다.
둘째, 미세먼지 측정치가 높게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후속 조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 설치한 측정기의 측정치가 어느 정도로 높을 때 어떤 조처를 누가 취하느냐이다. 후속 조처에 대한 지침이 없으면 측정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는 비난이 나올 것이다.
셋째, 대기오염 측정치는 매 순간 변하므로 측정치는 온라인으로 저장되어 1시간, 24시간 평균치로 통계처리가 가능하여야 한다. 또한 측정기의 센서는 수명이 있어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측정기의 성능이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수개월이 지나고 나면 제대로 자료 관리와 성능을 유지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측정기가 나올 것이고, 이를 두고 예산 낭비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 다양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가 팔리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일대 대기 상태가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 화면에 표시돼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최근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면서 직접 오염도를 알고 싶어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많은 간이 측정기 가 쏟아지고 있다.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는 약 5만원에서 50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고 있다. 관련 업체에서는 기존의 엄격한 형식승인 기준을 좀 완화하고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여 어렵게 형성된 시장기회를 살리고 싶어 한다. 정부는 기존의 형식승인 기준과 절차가 있는데도 이을 맞추지 못하는 업체의 새로운 인증 절차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와 어느 측정기를 사용해야 하느냐는 시민단체의 요구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다. 결국 문제의 발단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쉽게 발표하고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부 책임이 크다.
미세먼지 측정기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은 측정기의 형식승인 여부보다는 어쩌면 내가 사는 측정기의 가격 대비 성능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일 수 있다. 시민들이 어떤 성능인지도 모르면서 수만 원에서 수 백만원의 측정기를 무작위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고, 관리 당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시간에 쫓기는 정부 인증에 앞서 시중에 나와 있는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들의 가격 대비 성능에 대한 정보를 우선 공개하면 시민들과 관련 업체에 모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미세먼지 퇴치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5일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에서 열린 '미세먼지 바로 알기 교실' 행사에 참석하며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일보 고영권기자
이러한 논란에도 민간의 대기오염 피해 최소화라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를 모든 초등학교에 달아주겠다는 미숙한 대응부터 시작한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풀어야 할까?
첫째, 모든 초등학교에 측정기를 설치할 필요는 없다.
우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시설(초등학교, 영유아원 등)을 걸러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기오염도가 높은 예상지역을 등급별로 나누고, 이 중 특정 배출시설 또한 교통밀집 주변 지역과 같이 피해 노출 가능성이 있는 시설에 대해 예비 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시설에는 다수의 측정기를 제대로 운영하여 실태조사와 저감 조처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세먼지 이외에 다른 위해 요소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
초등학교와 같은 시설이 노출될 수 있는 대기오염 위해 요소는 미세먼지 이외에도 석면 노출, 신축 교실에서 겪게 되는 새 교실 증후군과 같은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이는 미세먼지 측정기를 학교에 달아주는 접근이 아니라 민감 계층의 유해물질 노출 개선 프로그램으로 문제 시설에 대해 실내와 실외 공기질 점검과 개선대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 미세먼지 측정기 설치는 결국 민감 계츧의 건강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김도현 어린이가 8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주최로 열린 중국발 미세먼지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셋째, 민감 계층의 위해 노출 가능성이 큰 공간을 찾아야 한다.
대기오염 측정기는 다양한 기술 발달로 저렴한 비용으로 상당 수준의 신뢰도를 보이는 측정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제도와 규정이 열려 있을 필요성이 있다. 측정기의 신뢰성 문제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측정치의 사용 용도와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융통성 있게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새로운 측정기술들이 고농도 대기오염 노출에 대한 시공간 해상도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면 초등학교보다 시급한 민감 계층과 위험 노출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악 상황을 최소화하는 일이 국민건강 피해 최소화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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