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사가 일시중단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정책결정을 정부에 권고한다"
20일 신고기 5·6호기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최종 권고안이 발표된 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민참여단 최종조사에서 건설재개는 59.5%, 건설중단은 40.5%로 19%포인트 차이가 났다. 예상보다 큰 차이에 원전중단 측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탈원전의 시작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던 밀양 송전탑할머니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하지만 탈원전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신고리 5·6호기가 마지막 원전”이라며 "신고리 5·6호기 이후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없어야 한다"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시민참여단 471명의 선택 존중한다"며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4대강 사업의 주역들인 유수의 대기업들과 공기업 한수원, 원자력학회에 정부출연기관까지 가세한 상태에서 활동가들 몇 명이서 민간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지원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면서도 "원전축소 53.2%에서 시민들이 현명한 결정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론화위는 이날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 결정과 함께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정책결정을 정부에 권고했다. 환경시민사회단체들은 가능성을 봤고, 끝이 아닌 시작에 서서 다시 탈원전을 말하고 있다. 약 3개월 동안 건설재개 측과 치열하게 논쟁을 해온 환경시민사회단체들은 끝이 아닌 시작에 서서 다시 달리기 위해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있다.
15일 오후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에서 열리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시민참여 종합토론회 폐회식이 열리고 있다. 2017.10.15ⓒ뉴시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건설중단 측은 공론화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만났지만 치열하게 논쟁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전 국민이 핵발전은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것을 학교애서 배우고 와서 이것을 끊어내기가 많이 어려웠다"며 "공론화 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공론화 기간 동안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기존의 안전성과 환경성 등의 전통적인 탈원전의 접근법 대신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대안으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탈원전을 할 경우, 전기요금이 올라가냐, 안 올라가냐의 논쟁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원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력수력원자력에 비해 정보의 불균형이 심했고, 대대적인 홍보와 공공기관인 한수원이 재개 측의 선수로 뛰었다. 환경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중단 측은 물적·인적 부분에서 열세에 놓였다. 자료집 작성, 토론회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원전이 지어질 지역 주민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고, 원전은 미래세대에게도 물어봐야하지만 청소년들은 공론화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3개월 중 토론하는 시간은 짧았고, 제대로 된 검증은 사실상 없었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검증까지 사회가 확인을 해 과정이 필요하다"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자기의 발언에 책임져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공론화위 결과 발표 후, 원전의 안전 기준 강화, 신재생에너지 확대, 사용후 핵 연료 해결방안 등이 정부의 보완조치 과제로 남았다. 이헌석 대표 "국민들이 잘 판단하고, 탈원전 이슈를 잘 짚어냈다"며 "신고리 5·6호기 건설과정에서 기존 핵발전소에서 안전을 강화시킬 것인가 적극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언제 국민들한테 물어봤어요?"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언제 원전 지을까 말까 국민한테 물어봤냐. 처음 물어봤다"며 "시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민주적으로 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첫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정부는 원전 건설에 대해 국민들에게 묻지 않았다. 2014년 삼척, 2015년 영덕에서 원전건설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했을 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부쳤다. '전기 없이는 살수 없다'는 믿음과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 앞에서 원전 반대의 움직임은 지역에서 시끄러운 문제 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원전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먼 나라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탈원전을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부터다. 원전이 폭발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본 국민들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원전 주변인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면서 불안은 더욱 커졌다.
김익중 교수는 "원전사고는 지역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오염된 걸 보면 일본 땅의 70%가 오염됐다"며 "이 사건을 통해 전 국민의 문제라고 깨닫게 됐고, 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사람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과 지난해 대선에서 '탈원전'공약을 들고 나온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여부를 국민들에게 물었다. 탈원전 공약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사회적 갈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공론화를 선택했다. 건설재개에 탈원전에 시민참여단이 제동을 걸었다는 주장과 함께 원전 축소라는 방향을 설정하면서 정부가 변함없이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에 힘을 실어줬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유진 위원은 "앞으로 정부가 독단적으로 핵발전을 마음대로 펼치기는 어렵다"며 "시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공론화 결과로 원전에 대한 지역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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