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일아침 '나뭇잎편지'를 배달하는 이철수 목판화가. 그의 작품은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이 특징이다. ⓒ 정대희
"욕을 입에 달고 삽니다."
첫 마디부터 뜻밖이었다.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 이철수 판화 속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촌에서 퍼 올린 고즈넉한 삶의 모습과 경구 같은 시적 표현을 판화에 담아왔기에 더욱 그랬다. 나무판 앞에서 탐욕을 끊는 칼을 들 때는 경건한 수도자 같기도 했다. 여백을 단 한 줄로 채운 촌철살인 문구는 우리 등짝을 세게 후려치는 선승의 죽비소리였다. 그런 그가...
목판화가 이철수 씨(63. 제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만난 건 작년 12월 22일, 10차 촛불집회를 앞둔 때였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2시간 30여 분만에 제천 백운면 평동삼거리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주변 가게에서 음료수라도 사려고 두리번거렸는데, 자동차 창문을 연 그가 활짝 웃었다. 그냥 타란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데,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왔다.
이철수의 '욕'
- ▲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에 대한 목판답시 ⓒ 이철수
"여보! 우리 왔어요."
이철수씨가 마당에서 큰소리로 소식을 알리자 주방에서 부인 이여경씨가 "우리, 좀 이따가 봐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기분 좋은 만남, 두 분과의 인연은 항상 이랬다. 1천여 평 논 앞에 선 그의 집 낮은 담장을 보고 걸을 때부터 작은 설렘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철수, 이여경이 사는 집'이라는 문패를 지나면 사뭇 농부 예술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는 작업대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칼을 들고 나무를 팠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무슨 작품이냐고 물으니 "오래전에 스케치했는데,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 대한 답시 성격"이란다. 나무판에 거꾸로 새긴 글씨가 익숙하지 않아 낭송을 부탁했다.
"누가 부르는지/누가 길을 일러주는지/담쟁이 어린잎이/앞서 걷는다/제일 작은 잎이/늘 앞에 선다/앞서 걷다/뒤서게 되는 날 /뒤 선 거기서 조용히/제 잎을 키워/크고 짙은/푸르름이 된다/어느 바람 부는 날/앞서 걷는 담쟁이들/어서 가라고/서둘러 가라고/손 흔든다/어린잎들 앞서가는/벽에서"
'담쟁이 어린잎이 앞서 걷는다'라는 문구가 그의 최근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담배를 피워 문 그에게 '요즘 마음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너무 화가 치밀었어요.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 애를 태우는데, 저 짓을 하느라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갈고 닦은 인문학적, 미학적 감수성을 총동원해 보면 욕이 합당합니다.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구하지만,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어요. 존재에 대한 이해나 통찰도 필요하지만 싸울 때, 분노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성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000만 촛불이 광장을 밝히는 지금이 분노하고 싸워야 할 때라는 뜻이다. 그는 최근 작업 노트에 구체적으로 분노한 흔적도 남겼다. "제가 할 수 있는 현란한 욕을 적기 시작했다"면서 작품 밑그림을 보여줬다.
"개떡, X발, X새끼..."
꼭두각시와 악마들... 그리고 뒷산 무덤
- ▲ 장탄식을 금할 수... ⓒ 이철수
그의 말처럼 현란하지 않아 실망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불편한 마음자리가 보였다. 그가 매일같이 이메일로 보내는 '나뭇잎 편지'에도 요즘 거친 형용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추악한, 사악한, 뻔뻔한, 비굴한, 교활한...'
"과거 독재와 단순 비교하기도 어려운 정권입니다. 정신병자 집단에 가까운 기형 권력이죠. 마약 중독자라고 거칠게 퍼붓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흔치 않은 권력자를 보고 있어요. 이에 기생해 온 하수인 방조자들의 권력 속성도 보았습니다. 꼭두각시를 앉혀놓고 주인 없는 집안처럼 마구 주워 먹었습니다. 악마들이죠."
분노의 크기만큼, 촛불을 든 시민들에 대한 경외심도 컸다. 그에게 새해 신년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해주실 덕담을 부탁하니, 손사래부터 쳤다.
"아호를 뒷산 무덤으로 바꿀까 해요. 하는 일 없이 엎드려있는 사람입니다. 촛불을 보면서 이제 저의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길을 너무 잘 찾고 있어요. 특히 대안 언론과 청년세대의 약진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짐작도 못 했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 때보다 국민적 분노가 크고, 지혜로워졌습니다.
무당 같은 어쭙잖은 여성에 농락당한 대통령, 우리가 위임한 권력의 부도덕성과 무능력에 대한 표피적 분노를 넘어 사회 권력 구조라든지, 그 아래 기생하는 권력의 존재방식까지 두루 인식하고 있어요. 이미 미래의 과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87년 군중들과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군중이 촛불을 들고 있어요. 통찰력 있는 대중을 보게 된 거지요."
박근혜가 밉지 않은 단 한 가지 이유
그가 말한 '다른 차원'은 자기 일상 속에서 성찰하는 촛불에 맞닿아 있다.
"일상 속에서 갑질을 경험하고 자기가 갑의 자리에 설 때도 있을 겁니다.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상 속에서 왜 이리 무력했는지, 또는 내가 왜 이렇게 함부로 했는지를 통찰하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 우리 일상 속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그 관계를 한꺼번에 통찰하는 계기였고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박근혜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면, 그 하나가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그는 작년 12월 16일에 배달한 나뭇잎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시린 주말입니다. 우리들의 촛불군중은 순한 초식동물입니다. 뻔뻔하고 교활한 권력과 하수인들은 파충류·포식자를 닮았습니다. 그래봐야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난 초식의 민심이 이깁니다. 꼭!"
- ▲ 성난 초식의 민심이... ⓒ 이철수
- 촛불 시민을 초식동물에 비유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처음에 촛불 든 시민들을 보면서 이렇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상투적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촛불이 매주 고조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이 또렷해졌어요.
민심은 자기의 거대한 잠재력을 알고 있어요. 몸이 대형차급이어서 누구를 작심하고 때리지 않아도, 자칫 살인에 이를 수 있어서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폭력 촛불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n/1로 사는 초식동물들의 지혜
- ▲ 때 되면 다시 켜 지지요 ⓒ 이철수
매 주말 광장의 촛불을 세던 일부 언론들은 김진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한 뒤에 더 조바심을 냈다. 날이 추워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촛불이 줄어들지 않을까? 매 주말 감격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작년 12월 10일 전국에서 100만 촛불이 타오른 뒤에도 그랬다. 그는 12일에 보낸 나뭇잎 편지를 이렇게 맺는다.
"촛불 숫자를 세고 계시는지요? 촛불 가꾸고 거두려 들 것 없습니다. 때 되면 다시 켜지지요."
- 왜 그런 말을 새겼나요?
"선한 초식동물들은 쉬지 않고 풀을 뜯어야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민중의 삶도 그렇습니다. 앞만 보라고, 일만 하라고 하면서 존재를 분열, 파편화시키는 사회에서 그 알량한 주말을 반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초식동물은 연약하지만 생태적으로 군집할 때를 압니다. 필요하면 모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150만분의 1이 되려고 나왔다'는 한 시민의 말에 감동을 받았죠. 이제 잘난 사람도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n분의 1'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혜가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시대입니다. 리더를 자처하거나 짐짓 가르치고 이끌겠다는 낡은 사고도 이참에 청산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이어 "지금의 혁명적인 상황을 이끈 것은 지식인이나 운동가가 아니라 다중지성"이라면서 "역사 변화의 순간은 도둑처럼 오기도 하는데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거저먹으려 하거나 운동권의 조급증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우린 이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2002년부터 쓰기 시작한 나뭇잎 편지는 3000여 통에 육박한다. 최근 두 달 어간에 쓴 나뭇잎 편지의 소재는 오롯이 '촛불'이었다. 기승전 '탄핵', 기승전 '하야'였다. 그는 작년 11월 11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촛불로 차고 어두운 밤을 밝히고 시린 마음을 덥히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은 따로 또 함께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입니다."
촛불 개벽
- ▲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 ⓒ 이철수
-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인가요?
"돈만 생각하는 신자유적인 시장경제를 살고 있어요. 나남 없이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 뿔뿔이 흩어져 나 하나를 지키는 데에도 허덕거리며 살도록 강요받는 사회입니다. 또 판에 박힌 고집불통의 언어들이 내면화된 사회입니다. 청문회에 나온 완고한 법률가, 국민을 통치대상으로 보고 그 틀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려는 사람들. 대중들은 이들이 던져주는 말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걸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세상에서라도 나를 돌아보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경책을 전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시민들이 이미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대 한 공동체를 함께 살면서 저 만의 생각도 가꾸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는 "요즘 한 대선 후보가 혁명이라는 말을 썼다고 쏘아보는 사람들이 있던데, 우리가 버린 언어 중에 개벽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질적으로 변화하면서 시대를 건너고 있는 촛불 혁명을 촛불 개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법
- ▲ 질기고 집요한... ⓒ 이철수
작년 12월 13일에 쓴 나뭇잎 편지의 주제는 '시민의 연대'였다.
"검사장의 120억 무죄! 도 개탄스럽고, 삼성을 위시한 재벌가의 2세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편법상속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현실, 박근혜만 치운다고 될 문제가 아닌 건 잘 아시지요? 서두를 것 없습니다. 질기고 집요한 시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대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2016년 겨울을 밝힌 촛불은 기대 이상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주권자들의 권력이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게 존재를 드러낸 적이 있나요? 광우병 촛불이 있었고 그 뒤에 크고 작은 시민 결집을 보아왔는데, 얻어야 할 것 충분히 얻지 못한 채 흘러버렸어요. 허탈했죠. 밑천 없는 삶들 때문입니다. 현실의 변화나 구조적 개혁을 강제할 저력이 부족했던 거지요.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삶의 일상에서 변화를 만드는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를 향하는 손가락질을 나에게도 해야겠죠.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고쳐야 합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근원은 성찰과 반성입니다. 자신을 태우면서 밝히는 촛불의 미덕처럼 말입니다."
그는 "자기 안의 모순을 고치려는 일상적인 노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촛불을 내려놓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촛불 현장에서 모금통이 오면 돈을 넣듯이 우리들의 변화의 열망을 대신해줄 시민단체 회원이 되어 후원금이라도 내야 하고 바른 언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앞에 함부로 군림하고 살던 자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우리 곁으로 어김없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촛불은 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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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 ▲ 촛불은 "우리"입니다. ⓒ 이철수
- 그동안 수많은 촛불을 새겨 나뭇잎 편지에 담아 보내셨습니다. 촛불은 000이다. 한 마디로, 또는 한 개의 그림 형상으로 정리해주실 수 없나요?
"음... 그런 것은 미리 질문을 줬어야지요. 하-하-하."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는 웃음으로 넘겼다. 대신 다음 날 아침, 8만여 명에게 배달한 나뭇잎 편지로 답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수만 개의 촛불 속에 7개의 붓 자국(깃발)을 남긴 그림과 함께...
"촛불은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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