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목소리다]①연대에서 고립으로…광장서 열린 입, 일상서 닫히다
김지원·정대연·허남설·송윤경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ㆍ민주화 30년…한국 민주주의 항로
ㆍ1부 ①고립된 삶, 고립된 언어
ㆍ1부 ①고립된 삶, 고립된 언어
촛불을 끄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불의한 권력을 응징했다는 자부심이 가슴에 일렁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전쟁 같은 삶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소득보다 빨리 느는 빚, 월급 16년 치를 꼬박 모아야 장만할 수 있는 아파트, 140만원에 불과한 비정규직 평균 월급….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지적처럼 지금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사회학자 엄기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경향신문은 시민 100명을 만나 광장 민주주의와 삶, 그리고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물었다. 답변 속 단어 하나하나보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폈다. 광장에 대한 답변의 열쇳말은 ‘함께’ ‘다 같이’ ‘확인했다’ ‘용기’ 등이었다. 지난겨울 크고 따뜻했던 ‘광장’이 만든 ‘지진’이 감지됐다.
각자 삶으로 돌아가면 달랐다. “답이 없다” “이직·퇴직·이민” “운이 좋아야 한다”.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위해 긴 줄을 서던 시민들이 일상에서는 “바른말 않고 사는 게 편하다”고 고백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은 그랬다.
‘연대하는 광장’에서 트인 말문은 고립과 경쟁의 개인으로 돌아가자 닫혔다. 삶의 요구를 함께 분출하고 해법을 모색할 ‘작은 광장’이 일상에는 없었다. 배설과 냉소, 뒷담화, 독백만 남았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2)는 “(정권은 무너뜨릴 수 있어도) 아버지·상사가 비민주·반민주라면 무너뜨릴 수가 없다”고 했다.
2017년은 1987년 ‘6월항쟁’이 30주년을 맞는 해다. 6월항쟁은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한국에 정착시켰다.
이제는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신문은 시민의 ‘목소리’에, ‘말’에 주목한다. “우리의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토론해야 한다”(42세 운송업자)는 한 시민의 말처럼 그것이 민주화 30년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민주주의 30년의 미래를 밝힐 ‘등대’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확인한 ‘함께 말하기’의 승리는 삶 속으로 들어가 진화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광장이 수백, 수천개의 ‘작은 광장’으로 번져가야 한다.
시민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목소리다.” 광장의 목소리들은 이제 ‘일상’으로 향한다.
‘1000만 촛불’을 밝힌 겨울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였다. 한목소리로 외쳤고, 그리고 승리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광장의 벅찬 경험을 한꺼풀 들어내면 그곳엔 무거운 삶이 자리한다. 잔업에 야근의 연속이지만 통장 잔액은 노동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반토막 임금을 받는데 여전히 고용불안에 떤다. ‘영재교육’이란 단어는 엄마들의 심란한 마음을 파고든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 위엔 “이것이 잘못됐다고 쉽사리 말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 자리한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박모씨(34)는 “집회에선 ‘박근혜 나가라’고 외치고 왔어도 정작 직장에선 아무 말 못하고 다들 뒷담화로 풀어버리고 만다. 결국 각자 답답해하다가 (직장을) 하나둘씩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100명의 시민들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언어 속 ‘광장’과 ‘일상’의 간극은 넓었다. 광장에서의 경험과 일상의 실천은 좀처럼 이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서 느낀 희망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자취를 감췄다. ‘광장의 우리’와 ‘일상의 나’를 가르는 벽은 무너질 수 있을까.
■ ‘하나’에서 ‘우리’가 된 광장
광장에서의 경험은 시민들이 ‘우리’의 힘을 느낀 계기였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한 단어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망’이란 단어는 ‘국민, 주권자, 대중’ 등 집단을 가리키는 말들과 함께 이어졌다. 광장의 승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나’에서 ‘우리’로 진화하는 과정은 분노가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박모씨(63·무직)는 “나라가 엉망이 된 것이 분해 국민 한 사람으로서 집회에 나갔다”며 “광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감격했고, 우리나라도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모씨(33·전문직)는 “촛불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표시였다”며 “그래도 우리나라에 아직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많으니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광장에서 함께 느낀 벅찬 감정은 ‘승리’의 경험과 합쳐져 한층 공고해졌다.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등 촛불이 일궈낸 성과들을 톺아보며 ‘가능성’ ‘자신감’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연장선상에서 ‘머릿수’란 단어의 빈번한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모이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기꺼이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전체의 일부’가 되길”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김모씨(29·시민단체 근무)는 “매주 촛불집회 인원이 늘어난 것은 일종의 즉각적인 ‘효능감’이 작용한 결과”라며 “집회가 열릴 때마다 대통령이 담화를 하고 국회가 신경을 쓰는 등 꾸준히 결과가 나오니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소연씨(22·대학생)는 “(그동안)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지치고 회의적으로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하지만 이번 집회를 통해 다시 희망, 가능성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다.
■ 다시 ‘혼자’가 되는 일상
광장을 뒤로하고 우리 앞에 놓인 일상으로 돌아오면 출구 없는 삶의 문제가 여전히 시민들을 짓누르고 있다.
남석종씨(28·음악인)는 친구들과 만나면 술 한잔 앞에 두고 으레 서로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풀어놓곤 한다. 남씨는 “‘개처럼 일하는데 왜 돈은 이것밖에 못 벌지’ 등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15초 정적이 오고 또 한잔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침묵 아래엔 “출구가 없다”는 막막한 심정이 자리한다.
인터뷰 결과 일상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억압, 고립, 답답’ 등이었다. 광장에서 느꼈던 ‘연대·희망’의 감정과는 정반대다.
신모씨(45·마트 계산원)는 “힘들지만 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 누워 있으면 가끔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대’가 끊어진 일상에선 문제의 진단도 해결책도 결국 개인의 차원에 갇힌다.
내가 ‘못사는’ 이유는 “수저를 잘못 잡고 태어나서”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수저론’을 거론했다. 김모씨(62·대리기사)는 “둘째 아들 교육때문에 노후자금을 다 썼는데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한동안 못했다”며 “흙수저는 대학원을 나와도 대기업 문턱 밟기도 힘들고 공무원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모씨(47·직장인)는 “중1 아들이 ‘우리 집은 은수저는 못돼도 흙수저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과거 어려운 일이 해결된 경험과 관련해선 “운이 좋다”는 표현을 썼다. ‘운이 좋게’ 정부지원사업을 따내 얼마간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운 좋게’ 낮은 학벌임에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운 좋게 로또에 당첨되면 가게를 열고 마음껏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힘든 일상의 해결책으로 이직, 퇴직을 꿈꿨고 어떤 사람들은 실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읊으며 이들은 ‘해결’ 대신 ‘탈출’을 꿈꾼다.
■ 촛불 이후를 고민하다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의지, 말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꿈틀거렸다. 승리의 경험이 ‘정치 참여’와 삶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서로씨(27·대학생)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시민들이 직접 국회의원에게 전화·문자를 넣으며 압박한 행동들을 긍정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당은 철저히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며 “국민들의 감시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지지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현 정당정치의 모습이 많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광장에서의 경험은 일상 속 작은 변화의 물꼬를 틔웠다. 진성우씨(52·사립대 직원)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얼굴 맞대며 말하고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생소한 경험”이라며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지역이나 일터 등에서도 활발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직접 민주주의가 일상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프로할말러’(할 말은 하는 사람)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뭉쳐야 산다”는 말처럼, 많은 시민들은 홀로 마주한 답답한 일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으로 ‘함께’의 가치를 꼽았다.
박모씨(26·영화계 종사자)는 일상적으로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간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여성들이 ‘판을 떠나게 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SNS를 통해 여성 영화인들이 모였다”며 “같은 문제의식,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정승훈씨(48·운송업)는 “노동자는 (돈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처사에 혼자 대응하긴 힘들다”며 “노조 등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결사체들이 개인의 권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에 모인 200만 촛불이 ‘빽’이었잖아요. 우리가 직접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일상에도 아로새겨져야 해요.”(고광재씨·27·대학생)
■취재일지 - 연령·지역·직업 다양한 시민 100명 생애사 등 심층 인터뷰…원고지 4000여장 분량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8일부터 24일간 시민 100명을 만나 민주주의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촛불광장 경험은 물론 일상과 고민, 개인사까지 파고들어 가는 물음을 던졌다. ‘민주주의’가 각자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촛불시민’의 폭발적 에너지가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00명 가운데 51명은 생애사와 국가적 사건·사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아우르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 1인당 약 2시간이 소요됐다. 나머지 49명에게는 촛불 경험과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방향을 묻는 30분 안팎의 인터뷰를 실시했다.
연령별로는 10대 10명, 20대 20명, 30대 20명, 40대 20명, 50대 20명, 60대 10명이었다. 주로 수도권에서 인터뷰가 진행됐으나 강원·충남·충북·경북·경남·전북·전남에서도 24명을 인터뷰했다.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 대리기사, 자동차 공장 비정규직, 대학생과 대학원생, 아르바이트 노동자, 주부, 운송업자, 교수, 자영업자, 학원강사 등 다양한 직군이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4000여장에 이른다.
100명의 시민들은 인터뷰에서 삶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삶의 민주화’를 위한 출발은 ‘함께 목소리 내기’라는 사실 역시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결과다.
■특별취재팀
송윤경 김지원 정대연 허남설 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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