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고위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였던 예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조선의 최고영도자와 핵심지도성원들은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이 끝나게 될 2017년을 그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맞은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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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대북발언의 강도를 비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이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격적이며 극렬한 대북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분석하면, 한 가지 변화양상이 돋보인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험하게 들려오기는 했지만, 특히 2016년 6월 이후 대북발언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발언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하여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내었다. 2016년 6월 1일부터 이 글을 탈고한 10월 1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6월 6일 -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집할수록 고립과 자멸에 빠질 것이라는 발언 6월 13일 - 비핵화 없는 북의 대화제의는 기만일 뿐이라는 발언 7월 11일 북의 도발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 8월 15일 - 북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겠다는 발언 8월 23일 - 북측 체제가 균열조짐을 보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발언 8월 24일 - 북의 무력도발이 임박하였다는 발언 9월 6일 - 북의 무력도발은 북의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 9월 12일 - 북이 핵개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발언 10월 1일 - 공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의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1일 - 폭정에 신음하는 북에서 대량탈북이 있을 것을 예상해 대량탈북을 수용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발언 10월 13일 - 북의 가혹한 공포정치가 북측 주민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6일 - 북에서 사회지도층 탈북이 증가하는 것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지난 6월 이후 더욱 공격적이고 극렬하게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무관하게 그 두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2016년 5월 4일부터 1박2일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갔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1,750명 요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이끌면서, 16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정보기관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며,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극비정보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고위직이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거물’이 왜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서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협의한 것일까? 이 흥미진진한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부와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부에 각각 실린 보도기사들이다. 그 두 보도기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한민구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 청와대 고위당국자, 국가정보원 고위당국자를 줄줄이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지 않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핵심소식통”은 클래퍼 국장이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다. 만일 클래퍼 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고 명백히 답변하면 되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꺼내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의 비밀회동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 <사진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한 때로부터 12시간 뒤인 2017년 1월 1일 정오에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을 때, 조선은 격정으로 들끓었고, 세계는 시선을 집중하였다. 신년사 중에서 특히 국제사회가 주목한 것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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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퍼 국장의 이전 서울방문사례를 들춰보면, 그는 2011년 5월 30일 서울방문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2014년 5월 13일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회동사례를 보면, 그가 2016년 5월 4일 서울방문 중에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클래퍼 국장이 2011년 5월과 2014년 5월에 각각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당시 체류일정도 2박3일로 잡혔었는데, 2016년 5월 그가 서울을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며 체류일정도 1박2일로 짧아졌다. 이것은 2016년 5월 세 번째 서울방문이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서울방문과 달리, 뭔가 급하고, 더 중대한 임무를 갖고 방문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2016년 5월 4일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보낸 사람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비공개로 방문해서 그 나라 수뇌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급파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중대한 문제를 협의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악관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presidential envoy)를 파견하게 되면, 일정한 외교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져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외교절차를 생략하고 밀사(secret emissary)에게 특명을 주어 급히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그런 특별관례를 생각하면, 2016년 5월 4일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난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고위당국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인용문은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조미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그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청와대는 자기에게 몰아친 일파만파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사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과거사례들과 달리 청와대 비밀회동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분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영원무궁하다”고 외치는 미국의 선전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믿어온 열렬한 동맹예찬론자이며, 주한미국군과 핵우산이 한국과 자신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선전을 신봉하는 정통파 친미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꺼내놓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지름길이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의 폭발뇌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어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비밀회동 직후인 2016년 6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원인을 밝혀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대북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클래퍼 국장과 만난 비밀회동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수없이 보냈으나, 미국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실전급 대북공격연습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그처럼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자기 입으로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거론할 만큼 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만큼이라도 바뀐 것일까?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꿔놓을 극적인 전환계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적국이 힘을 집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확 떠밀어버릴 때, 바로 그럴 때 파멸공포에 전율하는 ‘거대한 공룡’은 황망히 꼬리를 내리며 적국에게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날강도 미제와는 반드시 피의 결산을 보아야 한다”며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춘 여세를 몰아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 백악관을 파멸공포로 전율하게 만들었을 때, 바로 그럴 때 미국은 이제껏 40여 년 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평화협정문제를 황망히 꺼내들며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화성-14 곁을 지나는 장면이다. 조선은 2016년 상반기에 네 차례 성능시험을 통해 화성-14의 성능을 질적으로 향상시켰고, 지금은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된 화성-14의 사거리는 11,000km이고, 뭉툭하게 생긴 탄두부에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5-6개가 들어가는데, 재진입체 1개마다 열핵탄두 1발씩 들어간다. 만일 화성-14가 4발만 떨어지면, 미국 본토 전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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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조미평화협정이라는 사상 최대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타나기 11일 전인 2016년 4월 23일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다. 그 날 조선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수단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수중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을 지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에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멸적의 비수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동해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 포물선 비행운을 하늘가에 수놓으며 날아간 ‘북극성’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자기 뒤통수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 밖에 전혀 꺼내지 않던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청와대로 가기 전 국방부에 들러 한민구 국방장관과 담화하면서 “북한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 KN-11)의 위협능력과 개발실태도 공동평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미국의 관심이 조선의 ‘북극성’ 수중시험발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청와대 비밀회동을 거론하면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평화협정을 먼저 간청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그 문제를 제의해오면 그에 응하겠다는 단서가 미국의 손에 들려있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당국자는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필요성을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다 북한도 당대회 이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퍼 국장이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국면에 대비하는 차원 같다”고 말했는데,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비밀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6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공식 제의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제의에 응답할 긴급준비가 요구되었기에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에 보이는 것은 미국의 피스키퍼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부에 들어가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W87이다. 열핵탄두 6개가 들어간다. 화성-14 탄두부에도 그런 각개발사식 재진입체가 들어간다. 타격목표를 향해 비행하는 화성-14 탄두부에서 각개발사식 재진입체들이 분리, 사출되면, 그 재진입체들은 위성항법으로 유도되는 극초음속 하강비행을 계속하면서 제각기 지정된 타격목표들을 향해 각개돌진하여 동시다발로 타격하게 된다. 이것은 화성-14가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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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섣부른 예측과 달리,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과거에는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수없이 제의했으나 요즈음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는 까닭은,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미핵압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난날 조미핵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국이 억지와 전횡을 부려 협상이 중단되면 조선은 핵시험이나 탄도미사일발사연습을 단행하는 핵압박으로 미국을 몰아세워 핵협상을 재개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지난날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이었다.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을 다시 재개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적 핵공격력을 가졌으므로,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에서 전략핵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강력한 핵압박으로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벼랑에서 떨어져 파멸하든지 하는 최후의 양자택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다.
2016년에 조선의 대미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은 조선이 전략핵압박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최후의 양자택일로 끌어가고 있으며, 조선의 연속적인 전략핵압박을 받는 미국은 양자택일의 아슬아슬한 벼랑끝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정치사를 새로 쓰게 만들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숨 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서 왕왕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올해 2016년에 들어와서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미는 전략핵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핵무기병기화 완성단계를 하나씩 세상에 공개해오고 있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전략핵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이 깨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군사적 움직임은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를 몇 초 앞두고 트럼프 당선인과 그 가족이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그의 호화휴양소 마러라고에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를 통해 새해 첫 시각을 알리는 생방송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웃고 있지만, 만일 조선이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하면,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버티기에는 너무 무거운 압박으로, 너무 혹심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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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핵협상궤도에서 이탈한 미국을 다시 끌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10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조선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고 있는 오늘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마지막 대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은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미국이 파멸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예견하건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지 않으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덤벼들면 조선은 최후결전으로 미국을 파멸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핵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겁쟁이’ 미국의 초라한 경력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면, 조선은 그 간청을 받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미평화협정은 급속히 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장기적인 평화회담을 진행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평화회담이 지난날 진행되었던 조미핵협상처럼 장기화되면, 안보위험에 빠진 한국이 자기의 생존방도로 핵무기개발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에게 모두 매우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은 평화회담을 신속하게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미평화협정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핵우산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길은 없다. 조선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미국이 아무 때나 휴지조각처럼 내던질 수 있는 평화협정문이나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핵우산을 철거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정세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날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최후의 날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다시 말해서,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의 대격변 속에서 벌어질 두 갈래의 사변들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전망과 예측에 따르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 전에 백악관 내부에서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추론은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동맹예찬론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의 믿음이 몽매하고 허망한 환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급격한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태도를 갑작스럽게 180도 바꿔버린 충격적인 경험은 세계정치사에서 흔하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이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분석기사를 내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일보> 2016년 9월 21일부에 실린, “미, 한국 떠나지 않는 생각은 착각, 중과 수교하면서 대만 ‘헌신짝’처럼 버려”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 시선이 멎는다. 그 기사에서 한국의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은 아무런 문제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우리는 미국이 지켜주기에 별 걱정할 것 없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떠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1월 2일 오후 6시 5분 트럼프 당선인이 트위터에 올려놓은 글이다. 이 짤막한 글은 또 한 차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트위터 문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예고하였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트위터에서 그런 시험발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 단정적인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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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기사에서는 지난날 미국과 대만의 관계변화를 거론하면서 “미국은 1972년(1979년을 착오함-옮긴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국인 대만을 버렸고, 대만은 유엔회원국 지위에서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처럼 한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대만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였으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지배권 안에 붙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중국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되레 미국의 계략에 끌려 다니며 수교회담을 오랫동안 지루하게 진행하였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날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 조선, 미국, 한국 3자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1954년 12월 2일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5년 3월 3일 그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로써 대만은 미국에게 안보를 내맡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미국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대만관계가 언제까지나 원상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계기는 중미관계정상화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대통령 밀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는데, 그로부터 6일 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방중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써 중국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중미수교회담이 시작된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핵무기와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기의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고, 1966년 10월 27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으며, 1967년 6월 17일에는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핵시험을 45차례나 진행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1970년 4월 24일 자기의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이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면서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은 깨져나갔는데, 그런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1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둘째,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라고 헐뜯으며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미제국주의보다 사회제국주의가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새로운 대소전략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중국이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소련의 적국인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1971년에 중국이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이 핵보유국, 인공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올라서자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를테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를 유엔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대표들이 유엔에서 불법적으로 차지하였던 자리에서 그들을 축출”한다고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를 채택하였다. 그로써 유엔은 대만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중국을 영입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유엔회원국 자격도 박탈하고 유엔 밖으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 이것은 중화민국이라고 참칭해온 대만이 하루아침에 국가지위를 잃어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1월 4일 션 스펜서 백악관 대변인 내정자가 시카고대학 정치연구소가 주최한 간담회에 발언자로 출연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션 스펜서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즉흥적으로 트위터를 한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지적하면서, "복잡한 문제를 처리할 때, 그는 매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펜서의 평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트위터 정치활동에는 그의 전략적 사고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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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대만방위사령부(Taiwan Defense Command)를 대만에 여전히 존치시키면서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켜놓았으며, 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하였고, 미국산 무기수출과 군사교류를 통해 대만군을 강화시켰고, 대만과 무역 및 투자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대만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안보위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한 미국이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종지(terminate)하겠다고 대만에게 통고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79년 4월 28일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전원 철수하였다.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 두 번째로 빠졌는데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철수하기 18일 전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채택하였다. 대만관계법에서 미국은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종지된 이후 미국군이 대만에 주둔할 수 없고, 미국군이 대만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지만, 미국군은 여전히 대만군과 고위급 군사회담을 계속 진행하였고, 대만군 고위지휘관들을 미국에 불러와 군사교육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산 무기들을 해외수출경로를 통해 대만군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 중미수교 이후 대만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중국의 대미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대만을 자기 지배권 안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각각 상대하는 노회한 책략을 펼쳤던 반면, 중국은 미국의 책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대만을 귀속시키는 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중미수교로 대만을 미국의 지배권에서 분리시켜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던 중국은 아메리카제국의 음험한 본성을 간과하였기에 전략핵압박으로 그 제국을 강박하지 못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오늘 조선의 대미전략이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1970년대 초 중국은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에 올라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렸으면서도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지 못한 채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 수교회담이 장기화되었고, 그런 틈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오늘 조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동방의 핵강국’, 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오른 조선은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리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버리고 있으며,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파멸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만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남과 북은 평화통일을 급속히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경우 급속히 실현될 통일씨나리오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 조선은 중국도 손대지 못한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는 중국에 비해 5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영토는 중국에 비해 8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선이 왜 스스로를 ‘천하제일강국’이라 하는지 이해할 만하다.
▲ <사진 8> 이 사진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이 2016년 11월 18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플린은 2016년 11월 하순 백악관 국가안보부문 관리들로부터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 설명에 나오지 않은 극비정보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조언하여,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직접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를 듣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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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9> 이 사진은 2016년 12월 21일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마러라고 휴양소 안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트럼프 당선인이고, 가운데 보이는 사람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이 레인스 프리버스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이다. 그 날 저 호화로운 휴양소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던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에 관한 대책을 숙의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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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0> 이 사진은 2016년 3월 15일 키 리졸브 조선침공전쟁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 해상작전구역으로 출동한 미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함재기들을 잔뜩 싣고 부산해군작전기지 부두에 접안하는 장면이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조선은 이미 예고한 대로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이 무력격돌을 벌이는 미증유의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중단시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에게 죽음의 선택으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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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1> 이 사진은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장면이다. 닉슨 대통령은 마오 국가주석을 만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할 때, 윌리엄 로저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가지 않고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과 키신저의 특별보좌관 윈스턴 로드만 대동하였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베이징에 급파하여 미중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며칠 뒤 공식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평양에 급파하여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이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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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2>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은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막강한 핵공격능력이 완성된 올해에 끝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전략전 선택에 직면하였다. 2017년은 23년 간의 조미핵대결을 끝낼 대격변을 향해 도도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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