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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일 수요일

오만한 트럼프 미국의 미래...100년 전에 이미 예견됐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20세기 영국과 21세기 미국의 평행이론

25.10.02 06:58최종 업데이트 25.10.02 06: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30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화이자와의 약가 협상 발표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역사는 종종 반복되듯이, 강대국이 정점에 오른 뒤 도전에 맞서는 순간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는 패권이 본질적으로 내부 압력과 외부 도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은 세계의 패권국이었지만, 후발 산업국들의 추격을 받으며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국은 보호무역 관세와 배타적인 특권으로 제국을 떠받치려 했으나, 그 같은 대응은 오히려 쇠퇴를 가속시켜 세계 패권을 내주게 만들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실패, 그대로 따라가는 트럼프

오늘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래에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치 아래 관세, 경제 민족주의, 다자주의 리더십 이탈을 강화하며, 스스로가 주도해 온 국제 질서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정책 궤적이 20세기 초 영국의 실패한 선택과 놀라울 만큼 평행하다는 점은, 단순한 역사적 유사성을 넘어 오늘의 미국이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트럼프는 제조업 일자리 상실과 무역적자를 명분으로 전면 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1기 임기에는 중국과의 관세전쟁과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시행됐고, 2기 들어서는 "해방의 날"까지 선포하며 관세의 범위와 강도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4월 5일, 미국은 전 품목에 10% 일괄 관세를 부과했고, 4월 9일부터는 대미 무역적자 규모에 따라 국가별 추가 관세를 얹는 이중 구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0월 초 현재, 관세는 생활·주거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조치들을 보면, 미국의 관세 압력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장비 트럭에 25%, 철강·알루미늄에 최대 50% 관세가 부과되며 제조업 가치사슬 전반에 직접 충격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브랜드·특허 의약품에는 100% 관세를 예고하면서 미국 내 공장 착공 시 면제를 부여해 사실상 기업 투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활과 직결된 품목들도 관세 대상에 포함되었다. 소프트우드 원목(10%)과 가구·주방 캐비닛(25%)이 대표적이며, 이는 주택 건설과 소비재 가격에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 이처럼 관세 확대는 수입 물가와 공급망 비용을 밀어 올리는 동시에,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유발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단기적 산업 보호 효과와 달리 장기적으로는 비용 상승과 동맹 갈등을 불러오며,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고, 그 결과는 패권 쇠퇴로 이어졌다.

영국은 19세기 내내 자유무역의 선구자로 군림했지만, 미국과 독일 같은 후발 산업국들이 높은 관세와 적극적인 산업 정책으로 추격하면서 점차 우위를 잃어갔다. 수출 둔화와 실업 문제로 국내 정치적 압력이 커지자 자유무역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1932년, 영국은 마침내 수입관세법을 제정해 대부분의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일부 원자재와 식량, 그리고 특정 제국 내 제품은 예외를 적용받았으며, 이후에는 수입관세자문위원회 권고에 따라 품목별로 추가 관세가 더해졌다.

같은 해 열린 오타와 회담에서는 제국 특혜 체제를 공식화하여, 영연방 내부에는 특혜를 주고 외부에는 장벽을 세우는 이중 구조를 제도화했다. 이는 영국이 스스로를 제국 블록에 가두는 선택이었으며, 기존의 개방적 무역 질서와 결별을 의미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산업 보호와 제국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곧 소비자 물가 상승과 해외 보복관세가 뒤따르면서 영국 경제는 새로운 제약에 직면했다.

더 큰 문제는 보호막 안에 있던 산업이 경쟁 압력을 잃고 점차 혁신 능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결국 영국은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섰고, 세계 경제 질서의 주도권도 미국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경고

영국 국기연합=OGQ

무역과 통화 질서에서 나타나는 평행은 단순한 표면적 유사성이 아니다. 미국이 WTO 무력화와 TPP 탈퇴로 다자 규범에서 이탈하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CPTPP와 RCEP 같은 '미국 없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1932년 영국이 오타와 회담을 통해 제국 특혜 블록으로 후퇴하며 세계 무역을 배타적 구획으로 쪼갠 것과 같은 구조다. 두 경우 모두 보편적 규칙을 버리고 자기 블록에 의존한 결과, 단기 협상력은 커졌지만 세계 질서의 신뢰와 개방성은 약화됐다.

통화 질서에서도 구조적 평행은 드러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중심 통화로 기능하지만, 관세·제재의 무기화와 누적되는 재정 불안은 점차 신뢰의 균열을 키우고 있다.

달러가 당장 무너질 일은 없지만, 신뢰의 소모가 누적되면 장기적 퇴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과거 영국의 파운드가 전간기(戰間期)에 겪은 운명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1925년 금본위 복귀는 과대평가된 파운드를 낳아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었고, 1931년 금 태환 포기는 국제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가 줄어서가 아니라, 기축통화의 핵심인 신뢰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파운드는 결국 달러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 점은 오늘날 달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경제 규모와 군사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해도, 관세·제재의 무기화와 재정 불안정이 누적되면 기축통화의 토대인 신뢰가 균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분명한 경고를 남기고 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채무국으로 전락하고, 산업 경쟁력은 미국과 독일에 밀리며, 실업과 무역적자가 쌓이는 구조적 압력에 직면했다.

자유무역을 유지할 힘이 약화되자, 단기적 돌파구로 보호관세와 제국 특혜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길은 곧 고립과 쇠퇴로 이어졌다. 산업의 혁신은 둔화됐고, 무역 질서는 블록으로 쪼개졌으며, 파운드의 권위마저 흔들린 끝에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현재의 미국 역시 비슷한 압력에 놓여 있다. 제조업 일자리 상실, 만성적 무역적자, 그리고 재정 불안이 결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제재·규범 이탈로 대응하고 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동맹 갈등, 혁신 둔화, 달러 신뢰의 균열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특권은 패권을 지켜주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18일 영국 에일즈베리 인근 총리 별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패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특권처럼 사용되는 패권은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고 즉흥적 결정을 부추긴다. 순간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관세를 높이고, 내부 지지를 얻기 위해 규칙을 깨뜨리는 태도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책임으로 이해되는 패권은 다르다. 그것은 긴 호흡으로 세계 질서를 바라보며, 동맹과 경쟁자 모두가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신뢰를 지켜내는 일이다. 단기적 유혹을 절제하고, 장기적 안정과 공공선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패권은 유지된다.

100년 전 영국은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패권국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역사적 혜안과 철학적 통찰을 갖추지 못한 채, 눈앞의 압력과 조급한 계산에 매달렸다. 그 결과 산업은 쇠퇴하고 무역 질서는 분열되었으며, 파운드의 위신은 무너졌다.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 불안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세계 패권을 특권처럼 휘두르는 순간, 책임의 긴 호흡은 사라지고 단기적 정치 계산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특권은 패권을 지켜주지 못한다.

현재의 미국은 100년 전의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초강대국이다. 군사력, 기술력, 금융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깊이에서 미국을 대체할 나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폭주하는 태도가 위험하다. 오늘날의 세계는 20세기 초와 달리 기술 혁신이 질주하고, 자본과 정보가 국경을 가로질러 실시간으로 이동하며, 신흥국들의 집단적 협력이 과거보다 훨씬 민첩하게 전개된다.

초강대국의 지위가 단단해 보일지라도, 신뢰를 소모하는 순간 균열은 예기치 않게 확대될 수 있다. 달러의 권위 역시 힘이 아니라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는다면, 미국은 스스로 만든 질서 속에서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무너진 제국들의 뒷모습은 흔히 비슷한 흔적을 남겼다. 그 공통점은 힘의 부족이 아니라, 힘을 잘못 쓴 오만이었다. 외부의 도전은 늘 있었지만, 패권은 내부의 오만이 그 도전을 오독할 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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