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무 기자 chm@vop.co.kr
- 발행 2023-01-27 18:40:01
지난해 1~3분기 1분위(소득 하위 20%) 직장인의 평균 월급은 189만원이었다. 세금과 연금 등 의무지출을 떼고 남는 가처분소득은 160만원이 채 안 된다. 2021년보다는 4만원가량 올랐지만, 소비지출이 10만원 이상 치솟았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생활비 인상 폭이 소득 증가분보다 커지면서 가계는 전에 없이 팍팍해졌다.
가스와 전기가 번갈아 가며 폭탄을 던졌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1.5배 정도 올랐는데, 국민들은 난방을 떼는 겨울이 돼서야 폭등을 실감하게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분위기를 보면, 대체로 가스요금이 지난달보다 2배가량 올랐다. 비명과 함께 쏟아지는 ‘고지서 인증 릴레이’에서 가스요금 10만원은 예삿일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세 차례에 이어 올해 1분기에 또 올랐다. 특히 올해 인상 폭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난여름에도 에어컨 켜기 무섭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올여름에는 더할 전망이다.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난방비 대책을 내놨지만,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취약계층에 발급하는 에너지바우처 금액을 올린다는 건데, 지원 대상은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 가운데 노인·영유아·장애인 등 조건이 맞는 117만 6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5% 수준에 불과하다.
“서민만 죽으라는 거지, 있는 사람은 티나 나겠어.”
난방비 폭탄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타격이 크다. 1분위 가처분소득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육박한다. 있는 사람(소득 상위 20%)은 이 수치가 2% 수준이다. 요금 걱정에 난방도 맘껏 못 트는 서민이어도 하위 5%에 들지 않으면, 정부 눈에는 지원이 필요한 수준은 아닌,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어디 가스·전기뿐이랴. 전반적으로 물가가 날뛰고 있다. 1분위 직장인의 식사비는 1년새 10% 이상 올랐다. 고기나 채소 할 것 없이 식재료도 줄줄이 뛰었다.
대출 이자는 또 다른 폭탄이다. 대출 금리 상단이 6~7%대에 달한다. 2년 전만 해도 3% 수준이던 것이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덩달아 치솟았다. 전세 대출 2억원 기준 월 이자만 100만원이다. 여윳돈이 없으니 미래를 위한 투자는 남 얘기가 됐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러시아발 원자재 인상 등 외부요인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1년간 서민 경제 악화는 정부의 엇박자 정책 탓이 크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고금리 통화정책 쓰는 와중에 정부는 공공요금을 올리는 등 물가 상승 요인을 만들어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민을 위한 안정망이 없다는 점이다. 시장논리만 부르짖고 있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 해소를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기업 적자를 요금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 기어코 요금을 올려야겠다면 폭넓게 적용되는 대국민 지원책이라도 내놔야 서민이 위기를 버틸 수 있다. 시중은행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할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횡재세를 걷자는 제안이 나온다. 고유가와 고금리 시기를 틈타 막대한 영업이익을 누린 정유사와 시중은행으로부터 초과이익에 대한 세금을 걷어, 전 국민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업종에만 추가 세금을 걷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라거나 ‘기업이 적자를 보면 메꿔줄 거냐’는 등 반발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정부는 “추경 불가”를 못 밖은 채 땜질 처방만 내놓을 때가 아니다. 서민 지원을 위한 확장 재정으로 기조를 전환하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꼭 횡재세일 필요야 있겠나. 기왕에 있는 법인세를 올리면 된다.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와 여당은 재벌 대기업에 관대하다. 지난 예산안 처리 국면에서 상위 0.01% 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1%포인트(P) 낮췄다. 인하 폭이 당초 목표한 3%P에 못 미치자, 우회 지원책을 꺼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디스플레이 분야 대기업의 최첨단 기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기존 8%에서 15%로 두 배 가까이 상향했다. 주요 대기업이 누리게 될 세제혜택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지원책 예산 마련을 세금 정책은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다.
정부의 전향적인 재정 확대와 지원 강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을 봐왔다. 시장주의와 낙수효과를 향한 맹신이 꺾일 것 같지 않다. 게다가 그는 정책 결정을 포함한 모든 언사에 있어 지지율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공정과 상식은 특정 계층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터널이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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