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운동가 5명 인터뷰, 한국언론의 기후위기 보도 진단 정쟁에 종속된 기후위기 보도… ‘핵발전’ 기사 쏟아내 ‘뉴스룸 인식 부족·수익구조 영향’ 등 원인 꼽아 |
한국 언론이 기후위기를 정치·경제 분야에 종속된 주제로 다루는 한편, 언론사 수익구조에 지배된 결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일관된 의제를 펴지는 못한다는 기후 운동가들의 평가가 나왔다.
김천수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이건혁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우열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역할과 책임’ 연구보고서에서 국내 기후 운동가들을 심층인터뷰한 내용을 이같이 밝혔다. 논문은 뉴스통신진흥회 연구보고서로 지난달 27일 온라인에 게재됐다.
논문은 5명의 기후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국내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국내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을 인터뷰했다. 논문은 크게 △연합뉴스의 기후위기 보도 분석 △국내외 언론의 기후변화 대응 사례 조사 △국내 기후변화 보도에 대한 환경단체 전문가 인식조사로 구성됐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후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그간 정치·경제 보도에 기후위기를 종속시켜왔다고 입을 모았다. 기후위기 의제 가운데 핵발전 관련 보도를 양산하는 현상이 일례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기후위기 대응의 한 축인 에너지 문제만 과도하게 집중해 보도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는 정쟁화 때문”이라고 했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간이 배출한 화석연료 때문인가를 둘러싸고는 정치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다. 핵발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주된 논쟁이 형성된다”며 “일부 언론은 탈원전 정책을 매우 진영논리로 접근하면서 핵발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뉴스룸 우선순위에서도 기후위기 의제는 정치와 경제 이슈에 밀린다. 환경 전문가들은 해외 주요 언론사들이 기후위기를 주요 섹션에 올려 보도하는 반면 한국에선 “기후위기 기사를 환경이나 과학 섹션의 하위 범주에 포함”하거나 “온라인판에만 싣고 지면이나 방송 뉴스에서는 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문제가 기후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기후위기는 간(間) 영역적, 횡단적 특성이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노동, 환경, 문화, 예술 등 전 영역과 관련 있는 문제”이며 “편집국 구성원 전체가 자기 영역에서 기후위기를 다뤄야 (한다)”며 “논조가 판이한 보도를 동시에 싣는, 기후위기에 대한 철학도 이해도 부재한 언론사(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지언 국장은 “아시아 지역 기후 피해가 심각하면 외신 등을 통해 사건사고로 보도하면서 기후위기를 들먹이다 한국 석탄발전의 아시아 수출 문제에 대해서는 국익, 외화, 소득 등 경제 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사가 많다”며 “이런 이슈들이 통합적이고 연계되어 있다는 언론사 철학과 관점이 부재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고 기후위기 대응이 언론의 중점 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사의 수익구조가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국내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가령 화석연료 기업들의 입김으로 화석연료 비판적인 기사나 칼럼에 대한 검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언론의 수익 모델과 관계들이 화석연료와 관련된 기관이나 기업과 밀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지언 국장도 “언론의 독립성 공정성 측면에서 기후위기 보도는 쉽지 않은 도전 과제”라며 “기업들, 특히 화석연료 체계와 얽히지 않은 기업이 드문 상황”이라고 했다.
기후위기를 직접 언급하더라도 탄소배출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단발성 보도에 머무는 경향이 많다. 논문은 “이는 한국 언론의 높은 보도자료 의존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정부의 정책 홍보나 기업의 이른바 ‘그린워싱’이 사실상 별다른 확인 과정 없이 기사화되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황인철 국장은 “긴 호흡으로 여러 사건을 하나로 엮어내려면 기자에게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걸 허락하는 데스크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언론사 차원의 의지와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단발성 흥미 위주 보도도 잦다. 특히 남반구의 기후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 보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지진·해일·태풍·가뭄·산불 등 대형재난은 전통적으로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들이긴 하나 그 재난의 여러 단계 중 특정 단계에 보도가 집중됨으로써, 뉴스이용자들의 그 사건과 기후위기를 유기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할 거리를 언론이 던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보도들이 시민을 ‘계몽 대상’이자 ‘소비자’로만 비춘다고도 지적했다. “소비자로서의 행동, 예컨대 일회용품 덜 쓰기나 텀블러 사용하기에 초점 맞추는 경향이 있고,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의 참여와 행동은 조명하지 않는다”(황인철 국장)는 것이다.
기후위기 보도에 적합한 뉴스룸 만들어야, 언론사간 협업도
이들 전문가는 한국 언론사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적합한 뉴스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경전문가들이 보았을 때 기성 언론의 ‘순환식 출입처 제도’는 기후위기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에 적합하지 않다.
논문은 “언론사 내 기후변화팀 신설과 확대는 바람직하긴 하나 기존 뉴스룸 시스템의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기후위기 취재를 해당 팀에서 전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각 언론사가 기후위기에 적합한 조직구조를 지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 지배적이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편집국 안에 기후 의제를 전담하는 데스크를 신설하거나, 경영진과 편집국 책임자가 기후위기 의제를 적극 다룰 것을 지시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언론사 간 협업도 강조했다. 가디언과 허프포스트, 리빌, 마더존스, 아틀란틱 등 언론사가 ‘프로젝트 클라이밋 데스크’를 구성한 것처럼 기후위기를 다루는 언론사들의 협력체를 꾸리라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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