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6 19:15최종 업데이트 21.01.26 19:44박정훈(twentyrock)
▲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사건으로 직위해제된 25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당 대표단회의를 마친 관계자들이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쥐고 흔들고 있는 '남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여성의 삶도, 한국의 미래도 맡길 수 없다."
지난 26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은 '남성 정치인의 자격을 묻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남성을 정치의 기본값으로 보는 정치 문화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세.연은 1999년부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여성 대표성 제고를 통한 '정치개혁'을 위해 연구와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단체다.
이들은 성명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임에도 여성 정치인이 성폭력 위험을 겪고 실제 경험한다는 사실은 어느 곳에서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며 "정치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 전체가 성평등한 사회로 진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강조했다.
26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한 권수현 여.세.연 대표는 "성폭력은 진보와 보수 한 쪽의 문제가 아닌, 모든 정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라며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남성 정치인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정치권 내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끊어내기 위한 대안으로, 현재 캐나다, EU, 멕시코, 볼리비아에서 법률 혹은 규약 등으로 존재하는 '정치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얼굴 내놓고 '성평등' 말하지 못하는 국회
▲ 국회의사당 전경. | |
ⓒ 김지현 |
-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정치권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만약 남성 정치인들이 성찰할 능력이 있다면, 긴장감을 갖고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시민들은 정치인을 '시민의 대표'로서 뽑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낫고 더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 정치인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게 행동을 하려고 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형식적이지 않은 '성평등 교육'이 강제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후보자를 공천할 때도 성평등에 관한 검증 기준을 만들어 엄격하게 평가를 해서 후보를 내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을 수용하고 젠더 관련 의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도 충분히 성평등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 왜 정치권에서는 여성을 동료로 보지 못했을까?
"사실 이 질문은 남성들에게 해야 하지 않을까? 왜 남성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남성들이 답했으면 한다."
- 정치권이 다른 집단보다 성차별이 더 심한 편이라고 보나?
"국회에서 일하는 페미니스트 모임 '국회페미'가 미투 이후에 등장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얼굴을 공개하고 활동하지 못한다. 이는 국회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했을 때 개인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곳에서 미투가 번져나갔지만, 국회에서는 확산됐다고 하기 어렵다. 이 공간이 굉장히 폐쇄적이라서 그렇다. 국회에서 일하는 분들 이야기로는 자잘한 내용의 성희롱, 성추행이 너무나 만연해서, 그게 왜 문제인지조차 인지하는 남성들이 없다고 하더라. 성폭력 문제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농담'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정치권이 사회의 변화를 빨리 흡수하고 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그 변화에서 국회가 가장 뒤처진 조직처럼 보인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성차별적인 구조에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 지난 25일 '박원순 성추행 의혹'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떻게 보나.
"일단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실이 인정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경찰, 검찰모두 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결과를 보면 구체적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권고 조치 역시 명확성이 떨어진다. 많은 분이 100점 만점에 50점이라고 한다. 충분히 권고 내용에 포함할 수 있는 것이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당 조치 모범적...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자성해야"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인권위는 전원위원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 최근 일어난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이 '진보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동의하는가?
"진보와 보수는 상관없다. 홍준표 의원의 여성비하 발언, 강용석 전 의원의 성희롱, 윤창중 전 대변인과 최연희 전 의원의 성추행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에서도 문제적인 인물들이 중요한 자리를 맡았고, 여전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양에서는 진보가 좀 더 성평등한 정책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 진영이 수용하는 성평등의 수준은 외국의 진보 정당과 비교하면 상당히 협소하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는 다를 게 없다."
- 김 대표 성추행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무관용 원칙을 취하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정의당을 비판하면서도 '민주당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평이 적절했다고 보나?
"성폭력은 모든 정당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정의당이 이번에 보여준 조치는 다른 정당과는 상당히 구분된다. 여성이 성폭력을 겪고 조직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지 모범사례를 제시한 것에 가깝다.
민주당은 인권위 조사 결과부터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박 전 시장 자체에 대한 조사는 어렵더라도, 박 전 시장 지지자와 비서실이 있는 '6층 사람들'을 통해 발생하는 2차 가해는 막아야 한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관련자들에 대해 엄격히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당에 뭐라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성찰이 필요한 정당 아닌가. 스토킹처벌법이나 성폭력 관련한 대안 입법을 제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이번 사건을 이용해 정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났다. 정책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정치하는 것은, '누가 누가 더 못하나'를 보여주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인다."
- 정치권의 성차별·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여.세.연이 내세우는 대안은 무엇인가?
"정치 영역에서는 남성이 기본값이 되고, 여성은 정치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처럼 전제된다. 여성은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기 어렵고,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폭력이나 공격에 노출되어 불안하게 정치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국 사회에선 정치권에서의 여성 폭력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내세웠다가 온라인상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수차례 포스터 훼손을 당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공격, 2020년 총선에 출마한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가 겪은 유사한 사례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여성 의원의 옷차림만이 문제가 되고, 성희롱적인 발언들이 제지 당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여진 것 역시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세.연은 '정치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법' 제정을 통해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폭력이나 억압에 노출이 되는 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혹은 성폭력 관련한 법에 포함시키거나, 따로 입법을 해서 적극적으로 다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꼭 법률이 아니더라도 의원 내규에서라도 이런 내용이 규정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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