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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 화요일

‘탄핵 논의’ 오른 판사들은 ‘박근혜’ 위해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유린했나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21-01-26 18:41:25
수정 2021-01-26 19: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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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4.16가족협의회, 4.16가족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진실 규명을 방해한 사법농단 임성근·이동근 법관탄핵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2.23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4.16가족협의회, 4.16가족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진실 규명을 방해한 사법농단 임성근·이동근 법관탄핵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2.23ⓒ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의원 107명이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 부당 관여한 판사들의 탄핵 논의를 시작한 데 이어 참여연대도 26일 해당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해달라고 국회에 촉구하고 나섰다.

문제의 판사들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두 판사들은 모두 올해 초 퇴임을 앞두고 있다. 최근 사표를 낸 이동근 부장판사의 사직서 수리 예정일은 오는 28일이며, 수리 후 퇴직일은 2월 중으로 예상된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2월 말 임기 말료로 퇴직 예정이다. 이들은 앞서 법관 징계 절차와 형사사법 절차에서 면죄부를 받았는데, 탄핵 절차에도 회부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퇴직해 아무 제약 없이 변호사 등 법조인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들이 퇴임 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버젓이 법조인 생활을 해나간다면 사법부, 나아가 헌정사에 어떤 역사로 남게 될까? 이들이 세월호 관련 사건을 두고 어떤 반헌법적 행위를 했는지는 대중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사법농단 문건들과 검찰 수사자료 등을 토대로 그들이 저지른 것으로 지목되는 반헌법적 행위의 전말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둘이 연루된 문제의 사건은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들끓던 그해 8월 3일 신문 인터넷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소재가 7시간 동안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정윤회 씨가 만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법농단을 수사한 검찰 기록에는 이 사건 재판장이던 이동근 부장판사가 선고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선고 요지 초안문을 이메일로 보냈고, 임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싫어할 것’이라는 취지의 이유로 초안의 특정 표현과 문장을 고쳐 답신했다고 나와 있다.

임 부장판사는 답신에서 “허위사실은 명백하지만, 비방 목적이 없으니 무죄”라는 취지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수정을 요구했고, 이 부장판사는 최종 선고문에 해당 부분을 그대로 반영했다.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제공: 뉴시스

이러한 과정은 이른바 청와대와 양승태 행정처의 긴밀한 교감에 따른 것이었다.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임 부장판사를 통해 2015년 3월 하순경 이 사건 재판장이던 이 부장판사에게 전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재판장이 증거조사를 진행하다가 기사라 허위라는 점이 확인되면,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위 허위성을 분명히 밝히도록 해달라. 법원행정처에서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보도가 허위라는 점이 재판 과정에서 이미 밝혀졌다고 홍보하겠다”

실제 임 전 차장은 같은 날 유력 일간지 사회부 차장 등을 접촉해 ‘청와대 출입 여부 등에 관한 진실게임은 종료됐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면서, 보도 분량 및 논조를 강화해 달라는 주문을 넣었다.

임 전 차장은 임 부장검사를 통해 담당 재판부로부터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수차례 보고받으면서, 이를 다시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판결에 개입했다.

임 전 차장이 재판부에 전달한 주문은 구체적으로 이렇다.

① 무죄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판결 이유에 반드시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보도가 허위라는 사실을 설시할 것
② 명예훼손이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어 법리상 부득이하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는 점을 밝힐 것
③ 판결 선고 말미에 가토 다쓰야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할 것
④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청와대 측에서 서운해 할 것

당초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 박근혜에 대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비방의 목적 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임성근 부장판사를 중간다리 삼은 양승태 행정처의 끊임없는 작업 끝에,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 박근혜에 대하여 명예훼손은 성립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어 무죄”라고 판결문에 썼다.

다음은 판결문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법리상 부득이하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것일 뿐이고, 가토 다쓰야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조롱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자체를 희화화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행동까지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명예훼손 여부만을 판단해 무죄 선고가 내려져야 했을 사건이지만, 유무죄 판단과 별개로 가토 전 지국장 행위에 대한 판사의 판단이 덧붙여진 것이다.

나아가 이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무죄 선고 대상인 가토 다쓰야를 질책하고, 선고문을 읽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착석을 요청하는 가토 다쓰야를 3시간 동안 기립시켜 선고 내용을 듣도록 했다.

박근혜 눈치 봤다면 왜 ‘유죄’ 선고를 유도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궁금증이 제기될 만한 부분은 양승태 행정처가 당시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협조를 구하고자 이 재판에 손을 쓴 것이라면, 왜 가토 전 지국장의 유죄 판단으로까지 유도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 관계도 중시했다는 점, 이와 관련한 양승태 행정처와 청와대의 또 다른 재판거래 교감 흔적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본 정부와 졸속으로 위안부 합의를 한 데서 알 수 있듯, 박근혜 정부는 한일 관계 회복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6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관리 대상으로 언급하며 설명한 부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6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관리 대상으로 언급하며 설명한 부분.ⓒ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

이러한 내용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6월 5일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 자세히 나온다. 이 문건에는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이름과 함께 ‘최대 관심사->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고 적시돼 있다. 그 아래엔 ‘주일대사 경력의 비둘기파로서 최근 한일관계 악화 안타까워함’,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외교적 해결 노력 중’ 등 이 전 실장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이 부장판사는 가토 전 지국장 사건 판결을 내리면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가토 다쓰야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고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청와대로선 박 전 대통령의 명예도 중요하나, 가토 전 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판결로 인한 일본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양승태 사법부는 자칫 충돌할 수 있는 두 가치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청와대를 만족시킨 셈이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 철저히 보호받았다. 판결을 내린 이 부장판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됐으나 작년 2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임 부장판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강경훈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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