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 선고공판] 결국 준법감시위는 집행유예로 가는 다리가 될 것인가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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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들이 제시한 삼성 준법감시위가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인지 여부, 이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지 여부, 만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고려할 지는 모두 재판부의 판단 대상이다."
지난 12월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서울고법 형사1부). 결심 직전 공판에서 정준영 재판장이 꺼낸 이 말은 지난 2019년 10월 25일 첫 공판을 시작해 오는 18일 최종 선고를 앞둔 파기환송심 재판을 요약한 한 문장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공판 시작과 동시에 내건 준법감시위(감시위)는 줄곧 '봐주기 논란'을 떨쳐낼 수 없었다.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횡령 금액을 2심과 정반대로 '재판장 재량 없인 집행유예 불가' 수준으로 판단한 까닭에,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감시위를 집행유예로 가는 다리로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이어진 정 판사의 발언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다만 (감시위를) 양형조건으로 고려해도 여러 양형 조건 중 하나이고, 유일한 양형조건이라거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 사건은 피고인도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위법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다투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 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렇듯 이 부회장의 유죄는 대법원 뿐 아니라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미 확정했다.
관건은 다시 파기환송심의 유일한 변수인 감시위다. 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양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는 재판부가 최종 선고에서 읽어 내려갈 판결문에서 짚어야 할 핵심 질문이다.
10시간
문제는 평가 기준이다. 재판부가 받아든 삼성 측, 특검 측, 재판부 측 세 파트의 전문심리위원의 공통 의견은 무엇보다 '평가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특검 측 심리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특히 지난 7일 공판에서 감시위 평가에 소요된 시간과 경과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점검 일정 상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2020년 11월 9일에 (심리위원단이) 확정됐고 처음 회의를 했다. 일반적인 내부 통제 점검은 회사 제출 자료 뿐 아니라 외부 입수 자료도 면밀히 검토하고 점검 항목을 설정한 후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해 실제 현장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11월 10일에 한 첫 회의에서 재판부가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요청 자료를 만들기도 전에 현장 일정부터 잡아야 했다. (중략) 일수로는 3일, 시간으로는 10시간 이내 현장 점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짧은 기간임에도 세 위원이 내놓은 저마다의 분석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여부와도 직접 연관된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과정을 감시위가 얼마나 조사했느냐 여부였다. 재판부 측과 특검 측은 공통적으로 '부족'을 말했다.
재판부 측 위원인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회사 합병 형사 사건은 사실 관계 보고만 받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삼성 측 위원인 김경수 변호사는 "유무죄 논의가 많은 사건이라 감시위가 평가하고 사전 조치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3·5법칙
▲ 박근혜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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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과 변호인 측이 마지막까지 다툰 의제도 감시위를 이 부회장의 양형요소 어디에, 어떻게 끼워 맞출 수 있는지 여부였다.
특검은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이 인정되더라도 양형 기준 상 일개 인자인 '진지한 반성'은 하위 사실 하나에 불과할 뿐, 양형 구간 산정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변호인 측은 "감시위가 결코 이 사건에서 간과될 요소가 아니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특검은 특히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하며 '집행유예'라는 단어를 총 5번이나 언급했다. 감시위를 통한 '죄 깎기'로는 집행유예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법원이 법치주의 구현과 정의의 최종실현자로 직무에 충실했다고 평가받을 것인지, 퇴행하여 법치주의 암흑기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인지 기로에 섰다"라며 법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감시위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은 파기환송심 재판의 정의부터 다시 규정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이 재판은 이 부회장 자신의 승계를 위한 개인의 범죄일 뿐, 재판부가 제시한 준법감시제도는 기업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감경 사유로 적용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동시에 3·5법칙(판사 재량으로 횡령죄를 지은 재벌 총수들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내리는 현상)을 우려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지난 14일 논평에서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소위 3·5 법칙으로 집행유예를 받아왔다"면서 "(과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쇄신 약속에도) 삼성은 변하지 않았고 총수의 처벌만 면했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8680810000원
감시위와 달리 다툼의 여지가 없는 것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과정에서 전달했다는 뇌물공여 액수다. 변호인들은 마지막까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겁박을 거절 못해" 벌어진 사건이라면서 "전형적인 정경 유착과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의 36억 3483만 원의 판단을 파기하고, 86억 8081만 원을 최종 횡령·뇌물 액수로 인정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징역형 여부를 판가름 하는 마지노선인 50억 원 이상의 횡령액을 가뿐히 넘어서는 숫자다. 최서원(최순실씨 개명 후 이름)씨에 대한 지난 6월 11일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는 이 부회장의 뇌물 제공 여부가 더 구체적으로 판시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는 뇌물 요구에 해당하고 이재용이 그 요구에 따른 것은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하여 직무와 관련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로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7년 12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관련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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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일
이 부회장의 죄에 대한 벌의 크기는 오늘(18일), 국정농단 사태 이후 2017년 2월 17일 처음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후 꼬박 1432일 만에 판가름 난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부탁인지는 몰라도 하나 말씀드린다. 다 제 책임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1일 결심공판 최후진술 자리에서 아버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름을 꺼내며 "최근 아버지를 여읜 아들"임을 강조했다. "국격에 맞는 새 삼성을 만들어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고 읍소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죄를 물을 게 있으면 내게 물어 달라."
죄가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말이다. 이제 재판부의 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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