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에서 광화문역으로 가는 길목 사거리, 그곳을 지날 때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개 있다. 경찰 차벽으로 모든 골목이 막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했던 그날, 장대비보다 더 굵은 줄기로 쏟아지던 살수차의 물줄기, 그리고 코에서 피가 흐르는 채 구급차에 실려 멀어져가던 한 어르신의 모습.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렬을 막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노동절에 모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막아섰던 경찰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살수와 최루액으로 그 힘을 과시했다. 갑호비상령을 발동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범죄집단으로 치부했던 경찰에게는, 모든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농민들이 행진하며 동여맨 상여는 맥없이 부서졌고, 차벽을 물리치고 행진하려던 사람들은 물대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수없이 반복해본 영상 속 고인은 무방비 상태로 홀로 차벽과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몇 번 당긴 것이 전부였다. 고인의 상반신을 조준한 듯 타격하는 물줄기에 힘없이 쓰러진 고인은 10개월 동안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2016년 9월 25일 사망하였다. 고인의 사망 직후 경찰은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수차례 부검영장을 집행하려했고, 이로 인해 사망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고인이 쓰러진 직후 진행된 경찰들에 대한 고소·고발, 직사살수 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국가배상청구, 그리고 고인과 가족들을 모욕하고 조롱한 이들에 대한 고소·고발, 사망진단서를 잘못 작성한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까지, 고인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한 싸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2015년 11월 사건 발생 직후 검찰에 경찰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했지만, 검찰은 2017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당시 살수요원과 현장책임자,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고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2018년 8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법률이 아닌 경찰청 내부 지침에 근거한 살수차 사용과 직사살수 행위의 위법성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집회·시위 현장에서 살수차·방수포의 배치와 사용을 금지하고 장비 사용과 기준에 관한 법령의 근거를 명확히 할 것, 그리고 책임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권고했다. 국가배상 사건에서는 고인이 위법한 직사살수 행위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도 인정됐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고인에 대한 직사살수 행위가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확인했다. 고인은 자신의 온몸으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고, 공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이들과의 싸움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갑호비상령을 동원하고 집회관리의 총괄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고인과 유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구은수 전 서울청장에 대한 형사재판은 대법원에 계속 중이고, 살수차 사용의 근거를 내부 지침이 아닌 법률에 명확히 두어야 한다는 권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인의 죽음이 외부 충격으로 인한 ‘외인사’가 아니라, 오랜 중환자실 입원으로 인한 ‘병사’라고 기재한 백선하 교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또한 아직 진행 중이다. 고인과 가족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시한 이들에 대한 형사재판도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용될 때 공권력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방향과 목적을 잃은 공권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국민들이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이런 상황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몇 초간의 직사살수행위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고인과 가족들에게 발생한 피해와 그 고통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를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의 소중함과 무게감을 고인을 통해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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