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은 여성들 자신이 이룩한 업적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애국의 일념으로 불타는 조선의 어머니들과 딸들은 남성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과감하게 혁명의 길에 나셨으며 일제를 조국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생명도 청춘도 가정도 다 바쳤다. 1936년 봄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사단을 편성하던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조직하였던 <여성중대>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감회깊게 회고하였다. <여성중대>를 따로 조직한 것은 유격대오의 급속한 확대발전과 전반적 항일무장투쟁의 새로운 앙양을 시사해주는 경이적인 사변이었다고 김주석은 언급했다. <여성중대>의 탄생은 봉건적 질곡에 의해 수천년 동안 뒷방에 갇혀있던 조선의 여성들이 혁명투쟁의 제일선에 당당히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중대사였다. 지금은 우리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두고 말할 때마다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항일혁명시기에만 해도 여성이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라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우기 여자가 총을 잡고 남성들과 같이 장기간 무장투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주석 자신도 초기에는 여성들의 참군을 불합리한 것으로 보았다고 고백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육체적으로 연약하다는 생각, 그들이 그 연약한 몸으로 유격투쟁 앞에 나서는 모든 난관을 극복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였다고 그는 진술했다.
사실상, 항일유격전쟁에서는 여성들이 간호원이나 재봉대원이나 취사원과 같은 보조적 역할 뿐 아니라 전투원으로서의 사명도 동시에 감당해야 하였다. 일단 참군이 결정되면 여성들도 무자비한 전쟁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전쟁은 여성들이라고 하여 인도주의를 선사하지 않는다. 정세가 요구하면 남자들과 똑같이 무거운 짐들을 이고지고 며칠씩 강행군도 해야 하고 언땅에 배를 붙이고 포화 속에서 싸움도 해야 한다. 정치공작이나 식량공작을 위해 적구에 파견될 수도 있고 강추위 속에서 토목일 같은 것도 해야 한다. 엄동설한에 풍찬노숙하며 몇 년을 싸워야 할지, 몇십 년을 싸워야 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난관을 과연 여성들이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지판에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로 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마음을 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김주석은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여자들이 무장투쟁에 참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그것은 남성들이나 할 일이다, 여자들에게는 여자들만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여성들을 뒷방에서 끌어내어 사회혁명에 참가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무장투쟁까지 하라고 하겠는가 하고 김주석도 생각했다.
무장투쟁준비가 성숙되고 여기저기에서 유격대들이 계속 조직되자 참군을 열망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지하조직들에서 활동하던 여성들 가운데는 남들이야 뭐라건말건 막무가내로 유격대에 들어와 승인도 없이 그대로 주저앉는 동무들이 적지 않았다. 형세가 이쯤되자 김주석은 여성들의 참군문제를 정식으로 논의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참군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일부 기혼자들은 한마디로 그 가능성을 부정해버렸다. 여성들은 집안 일을 보고 남성들은 집 밖의 일을 보는 것이 조상전래의 관례이다, 여성들이야 어떻게 험한 산발을 타고다니며 남자들도 감당키 어려운 유격활동을 하겠는가, 여성들을 전쟁마당에 끌어내는 것은 모험이라고 대부분 주장하였다.
한편, 차광수를 비롯한 일부 대원들은 자식이 불 속에 들면 그 속에 맨먼저 뛰어드는 것이 여성이다, 하물며 나라가 피눈물에 잠겼는데 여자라고 왜 가만히 앉아만 있겠는가, 여성참군은 여성들 자신의 요구일 뿐 아니라 시대의 부름이라고 주장하며 여성참군을 찬성하였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자 결국 여성참군에 대한 논쟁은 견해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일시 중단되었다. 그렇게 미루어오던 여성참군문제가 아무런 의견충돌도 없이 모두의 지지 속에 매듭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계기로 된 것은 무장을 탈취하기 위한 간도여성들의 투쟁소식이었다. 화룡현에 사는 용감한 두 여성이 빨래방망이로 일본경찰을 때려눕히고 보총을 빼앗아냈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어 여성참군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입을 봉해버렸다. 온 간도가 무장을 해결하기 위해 떨쳐나섰던 때였다. 무기를 빼앗은 두 처녀는 1933년 여름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수백년 동안 여성들을 구속하고 있던 봉건의 질곡을 대담하게 타파하고 무력항전에까지 참가하는 경지에 도달하게된 것은 손에 총을 잡고 나서는 길 외에는 달리 살 수 없는 조선여성들의 참혹한 생활이 마련해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여자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은 속박의 사슬과 원한 뿐 이었다. 조선의 봉건사회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의 하나는 “남존여비”를 계율로 삼아 모든 여자들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구속하고 천대한 것이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음식이나 준비하고 밭을 가꾸고 길쌈이나 하는 집안의 머슴과도 같이 치부되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어도 홀몸으로 늙어죽어야야 하는 것도 여자였고 빚에 팔려가는 것도 여자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이 모든 불행위에 여성의 “도구화, 상품화”라는 불행을 더 첨가시켜 놓았다.
항일혁명은 그 모든 악적 조건과 부조리의 근원을 송두리채 쓸어버리는 “폭풍”이었으며 조선 여성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해준 “세기적인 사변”이었다. 조선의 여성들은 “펜이 아니라 선혈로써” 대지위에 자기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고 김주석은 평했다.
여성참군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혁명군은 그들을 더 잘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총은 잡았어도 여성은 역시 여성인 것만큼 유격전쟁을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여성고유의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였다. 여대원들로 따로 대오를 편성해줌으로써 그들의 생활단위와 군사행동단위를 일원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여대원들만으로 따로 <여성중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1936년 4월 만강부근의 수림 속에서 <여성중대>의 탄생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조선혁명군은 이 중대를 사령부직속으로 두고 소대와 분대들을 직접 편성해주었다. 첫 중대장으로는 박록금이 임명되었다. 여성중대는 우리 나라 군건설 역사상 처음으로 생겨난 여성전투부대였다.
< 여성중대>의 탄생은 수천년 동안 고질화되어 왔던 <남존여비> 사상과 인습을 타파하고 여성들의 지위를 실제적으로 남성들과 동등한 수평선상에 올려세운 하나의 사변이었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또한 여성중대의 출현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전민족적인 폭과 인민적인 성격”을 뚜렷이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또한 의의가 크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조선항일혁명군에 <여성중대>가 있고 그 여성중대의 대원들이 남성군인들 못지 않게 용맹스럽게 잘 싸운다는 사실은 곧 전 만주일대와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를 경탄시키는 화제거리로 되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손에 총을 잡고 항일무장대오에서 용감하게 싸운다는 소식은 조선의 모든 여성들과 인민대중을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그 소식은 국내와 해외에서 인민혁명군에 입대할 것을 열망하는 수많은 참군지망자들을 낳게 하였다.
< 여성중대>는 어디에 가나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독차지하였다. 오각별이 빛나는 군모를 쓰고 어깨에 기병총을 멘 여대원들의 모습이 먼발치에 얼핏 나타나기만 해도 사람들은 <여자군대가 왔다!>고 소리치면서 동네방네를 뛰여다니었다. 여성중대가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된 것은 우선 여대원들이 어떤 정황에서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도덕품성”을 가지고 성심성의로 인민을 도와주고 존대하면서 처신을 잘한데 있었다고 김주석은 판단했다. 여성중대는 어느 부락에 주둔할 때나 주인집 뜨락을 쓸어주고 물을 길어주고 설겆이를 해주고 터밭의 김을 매주었다. 여대원들은 인민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연설도 하고 글도 가르쳐주었다. 여성중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자랑이었고 진귀한 꽃”이었다고 김주석은 표현했다.
여성중대는 여러 전투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웠다. 여성중대는 탄생후 반년 정도밖에 존재하지 못하였지만 조국이 영원히 기억하고 인민이 길이길이 따라배울 불멸의 위훈을 남기었다. 항일혁명의 일선에서 무장을 잡고 일제를 상대로 하여 피어린 싸움을 벌려온 여전사들이야말로 현대 조선여성들의 빛나는 귀감이며 <여성해방투쟁사>에서 뿐 아니라 <인류해방투쟁사>에서 참다운 전형으로 내세울 수 있는 여성영웅들이라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그들은 여성들의 <사회적 평등>을 남먼저 이룩하고 우리 나라 <여성해방>의 길을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었다. 김일성주석은 생전에 조국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전장과 교수대에서 장열하게 최후를 마친 여투사들과 마지막까지 혁명적 의리에 충실하였던 여대원들에 대해서 자주 회고하였다.
초기 대성산에 건설된 <혁명열사능>에는 10여명의 여성투사들이 안치되어 있었다. 김일성주석은 이들을 하나씩 기억하며 그들의 업적을 추억하였다. 공청일꾼으로 투쟁을 하다 적들에게 잡혀 무수한 고문을 받았지만 일체 비밀을 대지 않고 죽은 이순희동지, 혀를 깨물며 조직의 비밀을 지킨 마동희를 낳아키운 혁명가로서 딸과 며느리도 유격대에 보낸 장길부여사, 김주석의 부인으로 도천리일대에서 어려운 적후공작임무를 잘 수행하였으며 군복제작에 큰 공을 세운 김정숙여사와 그녀와 함께 임무를 다한 최희숙동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로 혁명가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던 안순화동지, 북만에서 싸운 재봉대 책임자로 혁명가의 지조를 지킨 한주애동지, 혁명가답게 절개를 잘 지킨 남만유격대원들의 친근한 누나였던 이순절동지, 장백현 주경동에서 지하공작을 하다가 체포되어 희생된 김수복동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민의 충실한 복무자, 교양자, 선전자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다한 이계순동지, 등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쳐 혁명가로서의 존엄과 절개를 지켜낸 여성들의 실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고 김주석은 술회하였다.
그 중에서 김일성주석은 김희숙동지를 가장 못잊어했다. 주력부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최희숙동지의 뛰어난 “충실성과 혁명성”을 언제나 경이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김주석은 그녀의 숭고한 의리와 인격에 탄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억했다. 고난의 행군때 최희숙동지는 남들이 다 자는 한밤 중에도 우등불가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전우들의 꿰진 옷들을 기워주었다. 그는 맹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이틀이건 사흘이건 맡은 일을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쉬지 않았다.
소할바령회의후 소부대공작에 참가하였던 최희숙은 중요한 정보자료를 가지고 사령부로 찾아오다가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적들에게 붙잡혔다. 적들은 비밀을 뽑아내려고 그녀에게 무지막지한 고문을 들이대었다. 나중에는 그녀의 두눈까지 뽑아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문과 위협도 최희숙동지의 굳은 절개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수 있는 명언이라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그 말은 여투사 최희숙의 “한생의 총화”이기도 하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오늘날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는 말은 조선인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혁명적 낙관주의>를 상징하는 금언으로 되고 있다.
여성들이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담당한다”는 김주석의 주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피로 물들여진 항일의 혁명역사와 조선 <여성해방운동>의 직접적인 참가자, 증견자로서의 산 체험에 기초한 것이라고 김주석은 주장했다.
오늘 김정은 시대에 조선인민군대에는 항일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수많은 여성구분대들이 있다. 총을 잡고 조국의 국방을 지키고 있는 여전사들은 비단 인민군대의 여성구분대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들에도 총을 잡은 여대원들이 많다. <전민무장화>를 실현한 조선에서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1, 000만의 여성 전체가 유사시에 조국의 국토를 사수하기 위하여 총을 잡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이 1, 000만 여성무장대의 원형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직속 <여성중대>였다.
지금 조선노동당시대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여성중대원들이 발휘한 <백두의 혁명정신 과 투쟁전통>을 이어받은 무수한 여성 영웅들과 여성 활동가들, 여성 노력혁신자들을 배출하였다. 노동당시대가 낳은 여성영웅들의 사고와 실천을 지배한 것은 <백두의 넋>, <백두의 혁명정신>이었다. 조선의 수백만 여성들은 오늘 김정은시대에도 이 넋으로 조선 땅에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주체사회주의 보루를 쌓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자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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