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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8일 화요일

한 명의 피해자를 위한 공연, 객석에서 울음이 쏟아졌다

 [인터뷰] '무용계 최초 미투 고발 대법원 승소' 기념 공연 현장에 가다

20.09.09 08:07l최종 업데이트 20.09.09 09:49l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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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는 특별한 분이 참석했습니다. 그는 권위적인 무용계 구조 속에서도 용기있게 가해자와 맞서 싸웠고, 1년여의 소송 과정을 훌륭히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18일 대법원은 가해자의 항소(상고)를 최종 기각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무용인들의 뒤편으로 짧은 편지 형식의 글 하나가 띄워졌다. "당신이 바로 우리가 꿈꿔온 변화의 시작입니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무대에 있던 출연진이 꽃다발을 들고서 객석으로 향했다. 꽃다발을 건넨 사람도, 받은 사람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공연은 웃음 섞인 울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건이 떠난 자리, 연대가 남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진행됐던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공연의 한 장면이다. '감성스터디살롱-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의 주관으로 기획된 공연은 코로나19 상황상 정부의 방역 수칙에 따라 비공개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꽃다발을 건네받은 사람은 2019년 6월 무용계에서 처음으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를 고발한 피해자다. 유명 현대무용가 류아무개(50, 당시 45)씨는 당시 19세였던 피해자를 자신의 연습실에서 여러 차례 성추행하고 강제 성관계까지 시도했던 사건이다. (관련 기사 : 무용계 미투 1년 "예술계 위력 성범죄 인정, 가슴 뛰는 결과" http://omn.kr/1o275)

이제 이 사건은 법원에서 무용계 최초로 '위력에 의한 추행'을 인정받은 선례가 됐다. 지난 8월 18일 대법원은 가해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 2년 형을 확정했다.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한한 무형의 위력'을 성폭력 수단으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유지한 결과다. 피해가 발생한 지 6여 년, 소송이 진행된 지 1년이 넘은 후에야 피해자는 비로소 웃음 섞인 얼굴로 꽃다발을 건네받을 수 있게 됐다.

공연 직후 <오마이뉴스>는 이날 무대에 올랐던 김하람, 천샘, 권이은정 등 예술공방 회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이 가운데 천샘 예술공방 대표와 권이은정 아프리칸 댄스컴퍼니 따그 대표는 피해자의 고발 직후부터 사건 공론화에 함께 힘 써온 '오롯 위드유(아래 위드유)' 활동가들이다. 이날 천샘 대표는 공연의 안무를 기획하면서 피해자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했다.

"당신이 달리다 쓰러져도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서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행여 좋지 않은 결과가 있더라도 변화를 위해 계속 나아가려는 사람은 있을 것이라고. 안무가이자 무용가로서,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됐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상을 바친 싸움... 피해자는 무용계를 떠났다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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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대법원판결 이후 오랜 싸움에 끝이 났다. 소감이 어떤가.
천샘 : "판결이 9월 1~2주 정도에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이것도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상보다 빠르고 명쾌한 결론이 나 감동적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1·2심 판결을 진행하면서 제가 가장 바랐던 것은 일상의 회복이었다. 내 일을 하면서 판결 결과를 통보받길 바랐다. 어쩌면 이번 대법원판결로 소원을 이룬 셈이다. 안무를 짜고, 춤추는 내 일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소식을 들었던 게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권이은정 : "좋았지만 한 편으론 괘씸했다. 대법원까지 왔다는 건 가해자가 하급심 판결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를 괴롭게 한 셈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4~5년의 세월을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본인에게 내려진 2년 형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와 연대 관계자들 모두의 일상을 철저하게 깨뜨렸다. 이렇게 끝장을 보려 한 가해자의 심보가 너무 괘씸했다. 우리가 이렇게 화가 날 정도인데 피해자는 얼마나 지쳤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피해자 사건을 계기로 나온 공연이라 했다. 기획 시점은 언제인가.
천샘 : "2019년 6월부터 기획했다. 1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기획됐다. 만일 우리가 법정 싸움에서 진다면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마음으로, 정말 굿판이라도 벌이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게 됐다. 그런데 다행히 1심부터 크게 승소했다. 원래 1심 결과가 나온 뒤에 공연을 올리려 했는데 코로나19 문제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전부 환불한 뒤 비공개로 진행하게 됐다."

- 공연 현장에 피해자도 왔다.
권이은정 : "공연 도중에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문항들이 있었다. 그중에 '(성희롱·성폭행) 피해를 입은 사람이 본인인 경우, 미친 듯이 뛰어라'라는 질문이 있었다. 사실 이 질문이 행여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서 춤을 췄다. 내가 그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춤에 분노를 담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공연이 다 끝난 후 피해자가 내게 되레 고맙다면서 위로가 됐다는 말을 건네줬다."

- 공연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오가는 역할도 있었는데.
김하람 : "여성이지만 방관할 수 있고, 때론 무관심으로 폭력을 가할 수도 있고, 혹은 연대할 수도 있지 않나. 여러 모습이 섞였던 제 역할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가 나쁜 역할을 많이 맡았다 보니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불법 촬영 장면이었는데, 이걸 표현할 때 최대한 조심하려 했다. 혹여 이 장면이나 여기서 나오는 단어들이 피해자를 비롯해 관객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변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공연의 출연진 및 제작진 모습이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의 출연진 및 제작진 모습이다. 우측부터 권이은정, 이륜화, 김하람, 천샘, 서경선 예술가, 채미정 무대총괄 감독.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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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마친 직후 피해자를 비롯한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권이은정 : "공연 마지막에 서아프리카 전통북 소리와 우리들의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궂은 일이 있어도 함께, 계속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건데, 그때 춤을 추면서 평소보다 더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피해자분이 공연장에 오신 것 때문에 더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다."

김하람 : "공연이 끝나고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무대 뒤쪽 화면에서 떴다. 그 내용을 보면서 작품과 삶이 명확하게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이 작품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도 그 자막을 보는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밀려왔다."

- 이번 공연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천샘 : "당신이 아무리 작은 소리를 내더라도 누군가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당신이 달리다 쓰러져도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서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춤출 때 이 말을 계속 되새기면서 췄다. 이게 피해자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 피해자 좌석도 내 앞으로 배치했다. 

이 메시지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무용·예술계에선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고 있다. 무용계에는 이런 좋은 결과가 왔지만, 행여 좋지 않은 결과가 있더라도 변화를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있다는 거다. 안무가이자 무용가로서,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됐길 진심으로 바란다."

- 현재 피해자의 상태나 근황은 어떤가.
천샘 : "우리랑 얘기 나눌 때 보면 많이 회복한 상태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그 속까지 알 수는 없다. 오늘 피해자가 공연장에 직접 왔다는 것 자체가 '괜찮다'는 안부를 대신한 거라고 본다."

-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로 무용계를 떠났다고 했다.
천샘 : "그렇다. 피해자는 이제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중이다. 우리는 이제 피해자의 근황 체크를 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거쳐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가 되어줬지만, 이제는 그 친구가 일상 속에서 제 이름을 덜 마주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떤 안부조차 묻지 않는 것이 그 친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다시 새로운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와중에 혹여나 멈춰 돌아오면 안 되지 않겠나."

-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천샘 : "건강한 무용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선 저희는 지금 판결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또, 건강한 무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자치 규약을 만들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지금 3회차까지 진행된 상태인데 반응들이 좋다. 마지막 4회차에서는 (무용예술) 기관 내 성폭력 대응 시스템을 점검하는, 그런 세미나를 만들 예정이다. 공연을 통해서는 여성·동물·환경에 대해 얘기해 볼 생각이다. 중심이 아니었던 것에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그런 공연을 만들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공연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모두 준수한 상태에서 비공개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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