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안에서는 모른다. 민족이 뭔지 왜 민족의 주체성을 지켜야 하는지 모른다. 오히려 일본처럼 다중의 힘으로 타인과 타민족을 배제하고 차별하려 든다. 김 감독의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그래서 우리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많은 곳에서 공동체 상영을 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안영민 민족21 전 편집국장)”
“그냥 강추... 복잡한 이 ‘재일조선인 이야기’는 그만큼 종합적으로 그려내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도전 자체가 실패 50퍼센트라는 이야기. 그 어려운 걸 김철민 감독이 해낸 듯한 기분이 든다. (김명준 영화 ‘우리학교’ 감독)”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분노나 비극적인 심상이 지배적인가 하면 그와 반대입니다. 애틋하면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재특회 등 일본의 극단주의자들 모습에는 어제 동두천미군기지 앞에서 확인한 바 있는 한국 내 친일 친미 매국노들의 천박하고 광적인 모습이 그대로 겹쳐져 떠올랐지만, 그들과 완전히 다르게 고상한 우리 동포들의 모습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근성이 재일동포의 투쟁 속에 빛나게 담겨있습니다.. .식민과 분단세월을 고스란히 앓아가며 최선두에서 싸워내고 있는 동포들이며 별난 안목으로 긴 세월 영상에 담은 모든 이의 사연을 마음에 얹고 괴로워했을 김 감독과 제작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황선 평화이음 이사)”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분단의 역사와 함께 아직도 식민의 역사도 살아있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은 지금 일본에서 이 말 한마디 하기가 아주 힘들다. 조선이라는 말을 악마화하고 조선 사람들은 일본에서 차별을 받아도, 인권이 침해되어도 마땅한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낸 일본정부의 계획은 일반인들과 사회풍조까지 세뇌해 이제 완수상태에 있다. 그저 조선사람으로 살려는 삶이 너무도 가혹한 현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겹겹이 들이닥치고 숨쉬기도 힘든 일상.. 그래도 절대 꺾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웃음으로 버티는 단단하고 따뜻한 우리의 모습들이 담긴 영화입니다. (박금숙 재일동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해외 청년학생대회가 열렸다.
당시에 금강산에 갔던 한총련 대학생들이 한결같이 말한 것이 있다.
“처음에 북의 학생들을 만난다는 것이 설렜다. 하지만 대회 내내 가슴에 깊이 박힌 것은 해외에서 온 특히 일본에서 온 청년학생들이었다. 우리들보다 더 절절하게 통일을 외치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기억에 남는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김철민 감독 역시 2002년 금강산에 열린 청년학생대회에 참가했다.
재일동포 청년들의 절절한 눈물은 김 감독이 재일동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연스레 그들이 사는 일본으로 이끈다.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출품작인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김 감독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을 다니면서 만난 재일동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122편의 출품작 중에서 프로그래머 추천작 13작품에 선정돼 지난 20일과 23일, 2회에 걸쳐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는 ‘#1. 재일조선인 #2. 나를 찾아서 #3. 두 개의 조국 #4.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조선사람’하면 자연스레 북을 떠올리게 된다.
재일동포들은 왜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 모두다 북을 조국으로 여기는 것일까.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동포들의 삶을 통해 ‘조선사람’이라는 의미에 대해 식민과 분단, 그리고 민족,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2006년 고베, 2009년 교토, 2002년 금강산, 2006년 오사카, 유신시대 서울, 2015년 오사카, 도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재일동포들의 고통과 희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 아픔,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교차한다.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분노를, 조국이 식민지여서 일본으로 끌려간 재일동포 1세의 삶에 대한 아픔을, 분단으로 인해 동포들에게 조국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던 것에 미안함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통일을 위해 더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에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해방 직후 바로 조국에 돌아올 수 없었던 재일동포 1세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가르쳐주기 위해 학교를 세운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한 푼, 두 푼 모아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지금의 ‘조선학교’의 전신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바로 돌아가려 했던 조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나고, 분단된다.
동포들은 조국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 자연스럽게 조국이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와서 살던 재일동포 1세와 그의 자녀들(재일동포 2세)은 조국을 선택해야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일동포들은 이 상황에서 조국을 남부조국이냐, 북부조국이냐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일본에 사는 조선사람 즉 ‘재일조선인’으로 남는다.
여기서 ‘조선’의 의미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라고 동포들은 말한다.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일본의 온갖 차별과 혐오에 맞서 살아가야 한다. 일본의 차별은 점점 더 심해지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동포들에게 테러까지 한다. 하지만 동포들은 그런 탄압에 약해지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닌 강해지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당당하고 낙천적으로 생활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재일조선인’에게 하는 차별과 박해는 조국의 분단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국이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일본이 ‘재일조선인’에게 극심한 탄압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동포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단의 아픔을 온몸에 받으면서 통일에 대한 절절함이 커질수 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조국의 분단으로 피해를 본 동포들의 이야기도 다뤘다.
조국을 알고 싶어 남부조국에 왔지만 간첩으로 몰려 십 년이 넘게 옥고를 치른 재일동포 2세들, 조국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남부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본에서 투쟁하다 지금까지 남부 조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재일동포 2세들.
하지만 이들은 남부조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아픔이 ‘재일조선인’으로 자신을 정체성을 확인하고 통일을 위해 더 헌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재일동포들은 “분단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이 재일조선인이지만, 통일되면 가장 큰 은혜를 받을 사람이 재일조선인이다”라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현재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4세들이 일본 문부성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자기들의 문제니까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외친다. “조선학교 차별을 철폐하라”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선 학생들의 모습에서 어제의 힘듦을 이겨내며 오늘이 있게 한 재일동포 1,2세의 모습이 보인다.
만약 재일동포 1,2세들이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재일조선인’으로 정체성을 주저하거나 포기했다면, 오늘의 ‘재일조선인’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우리가 몰랐던 ‘재일조선인’들의 당당한 삶의 이야기이다.
한편,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10월 말에 일본에서 9개 도시 순회상영을 할 예정이며, 한국에서도 상영 준비를 하고 있다.
김철민 감독은 ‘다큐창작소’에서 활동 중이며, 2011년 ‘걸음의 이유’, 2014년 ‘불안한 외출’을 만들었다. 현재 국가보안법을 다룬 ‘게임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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