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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1일 목요일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지 말라"

20.05.22 08:07l최종 업데이트 20.05.22 08:07l
사진: 이희훈(lhh)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감소, 실직 등 직격탄을 맞았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노동 현장 속 쟁점과 대안을 살펴본다.[편집자말]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 이희훈
  
"시장은 실패했다."

코로나19 노동정책에 대한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의 일성이다. 왜 그는 시장이 실패했다고 단언한 것일까.

작년 여름 조돈문 대표를 처음 만났다. 당시 조 대표는 27년 동안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임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 찍을 계획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발생한 코로나19가 그의 발을 한국에 묶어 두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조 대표는 "한가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지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와 노회찬재단 이사장 업무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자문단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노동 정책의 대안을 물은 책 <함께 잘 사는 나라 스웨덴>(2019)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길>(2018),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2017) 등 다수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첫 인터뷰 후 약 8개월 만에 코로나19와 한국의 노동시장을 주제로 인터뷰를 다시 청했다.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조돈문 대표를 만나 그가 바라보는 한국 노동 상황에 대해 들었다.

"IMF보다 더 오래 갈 수도"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 이희훈
 
-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해고되고 있다.
"그렇다. 그런데 고용동향을 보면 정규직 숫자는 작게나마 증가했다. 임시직·일용직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정규직은 소리소문없이 해고된다. 계약기간이 종료되거나 갱신되지 않는다.

예컨대 재가요양보호사의 경우 서비스 수급자가 갑자기 전화해서 코로나19가 겁나니 집에 오지 말라고 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돌봐주러 왔는데 마치 감염원이 온 것처럼 대한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지고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되거나 혹은 감염 위험을 겪으면서 대면 서비스를 계속한다."

- 이전부터 취약한 이들이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그전부터 불이익을 받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돌봄노동자를 보라. 여성 노동 중에서도 돌봄노동은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사노동이 그렇다. 노동자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한국이 지니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자영업자 가운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줄고 있는 반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늘어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비자발적인 창업이 늘었는데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 IMF 경제위기와 현재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인가.
"더 오래 갈 수 있다. 한국이 IMF를 겪을 때 다른 나라는 겪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코로나19로 인해 수출도 힘들어지고 수송부문 인프라가 무너지고 있다. 부품 공급망이 다 끊어지면 부품 수급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제조업으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다. 위기가 구조화되고 장기화되면 제조업도 인력감축이 확대될 수 있다."

- 코로나19 국면에서 빠르게 대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간 노동계는 한국 노동시장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한국 노동시장은 과도하게 유연화 돼 있고 안정성이 결여돼 있다. 유연성을 억제하고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정부와 자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10년 전부터 고용보험 혜택 범위를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피고용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험 적용률이 40%밖에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률을 높이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예산지출을 대폭 증대하고 수요 중심 일자리정책에서 공급 중심 일자리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은 결국 21대 국회로 넘어갔는데.
"한국 비정규직이 1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들 중 60%인 720만 명이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고용노동부는 5월 18일 이들 중 특수고용노동 9개 업종 77만 명에 한해 우선 고용보험 적용을 하겠다고 했다. 어떤 업종을 넣고 어떤 업종은 넣지 않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모든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피고용자를 포괄해야 한다. 노조법 2조의 근로자 범위를 확대하여 노동3권과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용보험적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국회와 고용노동부가 반기를 드는 형국이다. 이는 결국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건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아니라 '두 국민' 고용보험 정책 아닌가."

"코로나19보다 많은 사람이 산재로 죽어"
  

- 대통령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는데 실현하기 어려웠다고 보는 건가.
"대통령이 고용보험 전문가도 아니고 세부적인 사항은 모를 수 있다. 대통령은 원칙과 방향을 정하고 행정부처에서 구체적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보험료 부담 수준과 국가의 지원 비율 등 자영업자 고용보험의 경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단계적 적용 판단은 옳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약 300만 명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이 통과되지 않았고 이는 대통령이 선언했던 전국민고용보험제 원칙과 어긋났다고 본다(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20일 언론브리핑에서 "금년 중에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기자주)."

- 과거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하면 월등히 친노동적인 정부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정부는 촛불 항쟁 속에서 출범했고 촛불 정부를 자임했다. 촛불 민중이 요구했던 바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전향적 정책 대안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대선 공약 대부분이 폐기되거나 추진하다가 유턴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자회사 방식으로 시도하고 최저임금 1만 원 공약도 산입범위를 복리후생비와 상여금까지 확대해놓고 실노동시간 단축 위한 주52시간 상한제도 탄력근로시간제 기간 확대를 추진했다. 선언만 폼 나게 하고 실망을 안겨준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시장은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는데 무책임한 발언이다. 국가가 뭔가. 시장은 평소에 사회적 규제를 거부하고 국가는 위기가 오면 개입해 시장을 구해준다. 위기가 오기 전에는 시장이 이윤을 독점하고 권력도 독점하고 위기가 오면 국가가 알아서 '땜빵'하는 구조다. 위기가 끝나면 다시 시장에 권력을 돌려줄 것으로 보인다.

분명 잘못됐다. 룸살롱 같은 데 가서 쓰라고 시장에 이윤을 허락해주는 게 아니다. 위기에 대비해 예방적인 조치를 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이윤을 허락해준다. 그걸 안 하고 국가가 다 해주면 기업에 이윤을 허락할 필요가 없다. 세금으로 이윤을 수거해가도 시장은 할 말이 없다."

- 정부가 키를 잡고 있는 게 잘못됐나.
"시장에 코로나19 위기 대처 능력이 없으니 정부가 하는 거다. 거기 들어간 모든 비용을 시장에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해야 한다. 예컨대 총수 일가가 기업의 지배 구조를 멋대로 주무르는 건 잘못 됐지 않나. 기업이 남기는 이윤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업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19일)까지 263명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 책임자는 매일 같이 언론에 나와서 몇 명이 죽었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는지, 시민들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작년 한 해 산업재해로 인해 노동자들이 하루에 6명씩 사망했다. 코로나19보다 많은 사람이 한 해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죽어나갔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나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어제 몇 명이 죽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건 아무렇지도 않고 코로나19로 목숨을 잃는 것만 안타까운 일인가."

"한국은 매번 위기 때마다 전쟁 치르듯 위기 대처"
 
 
- 일각에서는 기업이 어려운데 노동계가 너무 노동자 중심으로 사고한다고 불만이 많다.
"기업이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런데 기업이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나. 기업이 어렵지 않을 때 시민사회를 위해 그간 못했던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왔을 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보호해주자고 나서지 않겠나.

기업이 항상 어렵다고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니 믿을 수가 없다.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기업이 망한다면서 정리해고한 이듬해에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기업들은 무조건 어렵다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기업들이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면 노동자들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까. 양심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면 얼마든지 보호해줘야 하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국민 세금으로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없다. 부도 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라 경영에 실패한 총수 일가 대신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잘 운영해서 보호받을 만한 자격을 만들어야 한다."

- 스웨덴 전문가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기업은 어떤가.
"스웨덴은 노동자들이 기업을 챙겨준다. 정리해고도 기업과 노조가 같이 추진하고 정보도 공유한다. 스웨덴 기업은 7명의 이사진 중 3명 정도가 노조 대표다. 이들이 기업의 전략적인 결정을 행사한다. 기업이 노동자들을 속일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노조와 공동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스웨덴이 타격을 많이 입었다. 국가가 작아서 대외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경제위기 극복을 빨리했다. 2년 뒤인 2010~2014년 GDP 성장률이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높다."

- 어떻게 된 건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스웨덴의 경제는 타격이 적다. 자국 의료 체계에 대한 신뢰도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높다. 2008년 경제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평소 노동시장이 건강하면 버텨낸다.

스웨덴 노조는 만일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그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다른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노동자들이 옮겨가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아까 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스웨덴 시민들은 해고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국가 시민들보다 높은 고용안정감을 갖고 있다."

- 고용안정감이라면?9
"노동자들이 너무 힘없이 해고당하고 일자리를 잃으면 재취업하기가 어렵지 않나. 그런데 스웨덴은 코로나19 위기가 와도 사회·경제 체제가 크게 타격받지 않고 모양을 유지해나간다. 한국은 매번 위기 때마다 전쟁을 치르듯 위기에 대처한다. 시민들에게 시장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예시가 금모으기운동 아닌가.

시민들은 정부에 세금 내고 기업 물건을 사고,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왜 정부와 기업은 경영 실패와 시장의 실패에 대해 책임지지 않나. 평소 권력을 독점하고 자원을 독점했던 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평소에 불이익 당하고 하라는 일만 묵묵히 했던 시민들이 역할을 한다."

"콜센터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다면"
 
 
- 한국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세계적으로 방역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손꼽히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의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게 아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된다. 민간에 의료 서비스와 자원들이 밀집돼 있는데 원래 공적인 의료시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대학병원과 같은 3차 진료 기관이 중심이라 큰 병에는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정상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이를 보완해가고 대응능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인력을 총동원해서 전쟁을 치르는 듯하는 국가동원 시스템은 개발독재식이다. 의료 시스템이 훌륭해서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기보다는 시장이 능력이 없기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했다. 반복적으로 전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대처할 수는 없다."

- 재택근무가 앞으로도 증가할 것처럼 보인다. "원한다면 영원히 재택근무를 해도 좋다"는 기업도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이 있다. 사무직의 경우 대체로 재택근무가 가능할 것이고 할 수 있다면 해도 좋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도 현장에 가야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돌봄·요양 서비스의 경우 대면 접촉을 해야 되고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도 공장에 가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업무들 역시 위기 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 콜센터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노동자인 것과 집단 감염된 것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나.
"직접고용 노동자라면 사용자가 법적인 책임과 의무를 진다. 훨씬 책임감 있게 대처했을 것이다. 간접고용직은 사용자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안전 관리에 소홀하다. 만일 콜센터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다면 노동자들에게 안전보호 기구들을 나눠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교차 근무를 시키는 식으로 조치했을 것이다.

감염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직접고용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서 훨씬 더 신경 쓰고 안전장치를 해둔다. 마스크 지급도 비정규직에게는 제대로 하지 않고 정규직에게만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 코로나19가 길어질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위기 때에는 훨씬 더 성숙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린이집 등 보육·요양 부문에 공적 서비스 비중이 낮지 않나.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린다고 했을 때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얼마나 항의했나. 위기 상황이 되니 대체 어디를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정상적인 임금 지급을 하라는 전제로 정부가 민간 어린이집에 지원해주는데 권고사직은 물론 무급휴직도 많고 정부지원금으로 보육교사 임금을 주었다가도 다시 되돌려 받는 '페이백'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시장에 새로운 규칙을 부과해야 한다. 위기가 끝나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음번 위기가 와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기획 - 포스트 코로나, 노동의 미래]
① 박점규 "신종코로나 전부터 신종근로자 확산... 정부 말-행동 너무 달라" (http://omn.kr/1njdo)
② 하종강 "코로나19 방역 세계 최고지만... 재난자본주의 벗어나야" (http://omn.kr/1nl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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