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생각] ‘여덟 살 응우옌티탄’이 기억하는 학살
응우옌티탄은 머리가 아팠다. 2015년, 2018년, 2019년, 모두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두통과 멀미에 시달렸다. 태어나 마을 밖으로 멀리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 그런 건지,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정이 가져온 스트레스인지 알지 못했다. 응우옌티탄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국회로, 전국으로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바쁜 일정 사이에 한국 친구들이 챙겨준 두통약도 소용이 없었다. 베트남어가 잘 통하지 않을 땐 이마 가운데를 손으로 툭툭 치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지 못해 한 쪽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기도 했다. 언제나 한국 방문은 그에게 힘들고 어려운 숙제였다. 두통에 시달리며 매번 그는 한국에 온다.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Nguyễn Thị Thanh). 같은 날 학살로 희생된 탄의 다섯 가족은 마을 당산나무 옆 위령비에 이름으로 남았다. 위령비에 새긴 29번 엄마 판티찌, 34번 이모 판티응으, 42번 언니 응우옌티쫑, 62번 남동생 응우옌득쯔엉, 64번 사촌동생 도안테민이 그들이다. 탄의 가족을 포함해 모두 74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전투부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유일하게 현장 사진 등의 증거가 남아있는 사건이다. 당시 희생자 대부분은 10세 미만의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었다. 탄은 살아남은 19명 중 한 명이었다. 탄은 지금도 여덟 살 그 해, 그 날만 떠올리면 울음이 터진다.
화약연기 뿌연 속을 허우적거리며 배를 움켜쥐고 오빠와 엄마를 찾아 헤맨 기억이 서럽다. 엄마의 죽음을 만난 건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였다. 한국의 기자가 가지고 온 흑백 사진 속 참혹한 시신들 사이에 엄마가 있었다. 사진을 보러 모여든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탄은 카메라를 응시한 채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윗옷을 추켜들어 자신의 상처를 보였다. 옆구리에 난 상처가 깊었다.
그로부터 14년의 세월이 지나 탄은 한국에 왔다. 사진에서 본 젊은 탄은 중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탄은 죽은 이들을 대신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했다. 2000년대 초까지 전개되었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이후로 20여년의 세월을 건너,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이 재점화 되었다. 그리고 그 활동의 중심에 퐁니퐁넛 마을 사건과 응우옌티탄이 있었다.
2018년, 탄은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평화법정’)의 원고가 되어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옆 마을 하미학살 피해자인 같은 이름의 응우옌티탄이 또 다른 원고로 동행했다.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법정을 준비한 것은 50여개가 넘는 단체와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양현아 서울대 교수로 재판부를 구성하고, 실제와 다름없이 법정을 준비했다. 퐁니·퐁넛 사건과 하미사건에 대한 소장과 증거, 변론준비기일 통지서 등을 법률상 대표자인 법무부장관 앞으로 송달하고 피고 대한민국의 참여를 기다렸다.
탄은 시민평화법정에서 지난 삶의 고통을 눈물로 진술했다.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 삶의 힘든 시기에 항상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죽지 않았다면,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한국군인들이 그 때, 학살이 일어난 날에 차라리 나를 죽였으면, 이렇게 힘들게 지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법정이 저를 도와줘서 한국 정부하고 한국 참전군인들이 이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2018년 4월 21일, 베트
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원고 퐁니·퐁넛마을 응우옌티탄 진술)
그 무엇보다 사과를 원했다. 가족을 잃고 자신의 삶도 무너진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한국의 참전군인과 정부가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다. 그것은 탄과 같은 다른 피해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2019년 4월, 베트남 꽝남성과 꽝응아이성 한국군 피해마을 유가족 103명이 한국 정부에 제출한 청원서에도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와 공식사과, 피해회복조치 요구가 담겨있다. 이것은 베트남의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에 직접 목소리를 내 피해를 호소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청원서에 자신과 가족이 겪은 피해사실을 적고, 한국 정부가 학살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그들은 학살 이후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후유증으로 삶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피해에 대한 배상과 사과 외에도 한방파스가 필요하다고도, 생계를 도와달라고도 했다. 죽은 가족의 제사를 지내고, 무덤을 고치게 해 달라고도 했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시작부터, 시민평화법정, 피해자 청원까지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바는 명백하다. 진상조사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며, 피해자에 대해서는 인도적 차원의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시작된 지도 20년 세월이 흘렀다. ‘의혹’으로 시작된 이 문제는 사실상 많은 기록들에 의해 상당부분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만이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 청원에 대해 다섯 달 만에 나온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은 이 문제에 대한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자세를 반영한다. 한국군 전투사료에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어불성설이나, 한베공동조사 여건조성이 안 되어 조사를 못하겠다는 식의 답변이 그러하다. 민변에서 퐁니퐁넛 사건에 대한 국정원 조사기록 목록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있는 현실도 덧붙일 항목이다.
정부가 진상규명 활동에 뒷짐 지고 있는 사이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깊어지고, 수많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전쟁범죄의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국가폭력에 동원된 또 다른 피해자인 참전군인을 위해서도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국가가 나서 베트남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참전군인의 삶까지 돌아봐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세인트 제임스 스퀘어에 한 시민단체가 한국군 성폭력 피해여성과 그로 인해 태어난 라이따이한을 위로하는 모자상을 세웠다. 이 단체는 영국 의회에서 한국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행사를 가졌다. UN인권위원회의 전면 조사는 물론 한국 정부에 진상조사와 사실인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진상규명 요구가 국내외적으로 거세다. 언제까지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베트남전쟁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다. 굳이 가해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란 거룩한 표현이 아니어도 좋다. 관점은 눈이 아니라 발에 달려있다. 베트남 전쟁 문제에 있어 피해자중심주의란 바로 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03명 청원인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사과의 대상은 베트남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과 베트남 나라간의 정치적, 외교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탄은 이제 ‘진짜’ 법정에 대한민국을 세우려 한다. 2020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이 대리인이 되어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코로나19가 길을 막았지만 화상통화를 연결해 소감을 전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먼 길을 오지 않은 응우옌티탄은 이 기자회견을 앞두고도 두통에 시달렸을까?
최근 진상규명 활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꾸려졌다. 이를 중심으로 청원 1년 기자회견과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발의를 알리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좀 더 강제성을 가지고 법과 제도의 틀에서 문제해결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이후로도 한국 정부와 우리 사회가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의 자리에서, 유가족의 자리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과 그 가족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도록, 진상규명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여덟 살 탄의 눈으로 전쟁을 본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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