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씨는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은 되지 않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고 말했다. | |
ⓒ 조선혜 |
"그때가 오전 3시 9분 쯤이었어요. 호가창에 호가(매도·매수를 위해 부르는 값)가 없어지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 주문을 눌렀더니 주문이 안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제가 1억 8300만 원을 손해 봤는데, 회사는 2500만 원만 줄테니 합의하자고 하더군요."
지난 8일 제보자 지윤근(43)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미니 크루드 오일 5월물에 투자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해당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하락한 가운데 유진투자선물의 HTS(주식매매시스템)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전산오류가 발생해 매매가 불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에 연동되는 금융상품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회사의 시스템이 '먹통'이 됐고, 그 피해는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먹통된 금융시스템
지씨는 당시 호가창에서 가장 낮은 금액이 0.025 달러인 것을 확인하고 장 마감 시간인 오전 3시 30분까지 거래가 완료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5월물 상품의 만기는 4월 21일이었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씨는 "그런데 호가창에 갑자기 숫자가 사라졌고, 선물의 현재가는 마이너스로 표시됐다"며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이 되지 않았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애초에 금융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면 사거나 팔 수 없도록 돼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놀란 지씨는 오전 3시 20분 유진투자선물 쪽에 전화를 걸어 "왜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나"라고 물었고, 유진투자선물은 그제서야 "강제 청산해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그 때의 선물 가격은 -9달러를 기록하고 있었고, 지씨가 다급히 마진콜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통화는 종료됐다.
오히려 "빚 갚아라" 독촉
선물 거래의 경우 금융회사는 거래 초기에 투자자에게 보증금 개념의 증거금을 요구한다. 이후 거래가 진행되면서 만약 선물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 증거금이 깎이게 되고, 이 금액이 20%만 남게 되면 회사는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을 넣게 된다. 그런데 지씨의 경우 해당 선물 가격이 -1.5달러가 되면 마진콜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그는 "5분 뒤 전화를 준다던 회사는 이미 장이 끝난 뒤인 오전 4시쯤 다시 전화했는데, 내 계좌에 -14만 달러가 찍힐 거라고 말했다"며 "선물 가격이 -37달러까지 떨어졌으니 그에 대한 미수금을 갚아야 한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황당한 요구를 받은 지씨는 지속적으로 회사 쪽에 항의했고, 그제서야 회사는 피해금액 1억 8300만 원 가운데 2500만 원을 배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유진투자선물은 지씨가 선물 가격이 -31달러일 때 체결한 것으로 임의의 기준을 정한 뒤 이 같은 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던 중 <오마이뉴스>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 쪽은 선물 가격을 -25달러로 정한 뒤 모두 52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피해금액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지씨는 "솔직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지만 14영업일 동안은 회사와의 자율조정 기간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주 전 시카고거래소의 경고
키움증권에서 같은 상품을 거래한 뒤 전산오류로 피해를 입었던 투자자 김지훈(47)씨는 이번 사고에 대해 금융회사들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권고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CME는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당시 마이너스 유가에 대비해 각 증권사에서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공지를 지난달 3일 이후 3차례나 띄웠다"며 "국내에선 키움증권 등이 이에 전혀 대비하지 않아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증권의 경우 미리 관련 시스템을 구축해 가격이 마이너스에 진입했을 때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키움증권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베스트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투자자들의 거래를 차단해 사고를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300만 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회사는 1차 배상안으로 약 550만 원을 제시했고, 이후 수 차례 논의 끝에 적절한 금액을 배상 받게 됐다.
"엉터리 집 지어... 100% 책임져야"
다른 증권사들은 어땠을까? 지씨는 "유안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 두 회사는 사고 이후 첫 번째 주에 합의를 마무리했다"며 "키움증권 피해자 1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도 합의를 끝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전산 오류에 대한 잘못을 금융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꼴"이라며 "당연히 금융회사가 피해액의 100%를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회사가 엉터리 집을 지어놓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중개수수료만 받고 발을 빼려 한다면 금융회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쪽은 지씨의 경우 전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유진투자선물 관계자는 "전산 장애시각 당시 시스템상 주문 기록이 없었으며, 고객과의 통화에서 청산 의사를 물었으나 고객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해당 고객이 보상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관련 절차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회사는 덧붙였다.
지씨는 "그런데 호가창에 갑자기 숫자가 사라졌고, 선물의 현재가는 마이너스로 표시됐다"며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이 되지 않았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애초에 금융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면 사거나 팔 수 없도록 돼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놀란 지씨는 오전 3시 20분 유진투자선물 쪽에 전화를 걸어 "왜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나"라고 물었고, 유진투자선물은 그제서야 "강제 청산해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그 때의 선물 가격은 -9달러를 기록하고 있었고, 지씨가 다급히 마진콜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통화는 종료됐다.
▲ 지난 8일 지윤근(43)씨는 "1억8300만 원을 손해 봤는데, 유진투자선물은 2500만 원만 줄테니 합의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 |
ⓒ 조선혜 |
오히려 "빚 갚아라" 독촉
선물 거래의 경우 금융회사는 거래 초기에 투자자에게 보증금 개념의 증거금을 요구한다. 이후 거래가 진행되면서 만약 선물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 증거금이 깎이게 되고, 이 금액이 20%만 남게 되면 회사는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을 넣게 된다. 그런데 지씨의 경우 해당 선물 가격이 -1.5달러가 되면 마진콜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그는 "5분 뒤 전화를 준다던 회사는 이미 장이 끝난 뒤인 오전 4시쯤 다시 전화했는데, 내 계좌에 -14만 달러가 찍힐 거라고 말했다"며 "선물 가격이 -37달러까지 떨어졌으니 그에 대한 미수금을 갚아야 한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황당한 요구를 받은 지씨는 지속적으로 회사 쪽에 항의했고, 그제서야 회사는 피해금액 1억 8300만 원 가운데 2500만 원을 배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유진투자선물은 지씨가 선물 가격이 -31달러일 때 체결한 것으로 임의의 기준을 정한 뒤 이 같은 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던 중 <오마이뉴스>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 쪽은 선물 가격을 -25달러로 정한 뒤 모두 52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피해금액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지씨는 "솔직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지만 14영업일 동안은 회사와의 자율조정 기간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주 전 시카고거래소의 경고
키움증권에서 같은 상품을 거래한 뒤 전산오류로 피해를 입었던 투자자 김지훈(47)씨는 이번 사고에 대해 금융회사들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권고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CME는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당시 마이너스 유가에 대비해 각 증권사에서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공지를 지난달 3일 이후 3차례나 띄웠다"며 "국내에선 키움증권 등이 이에 전혀 대비하지 않아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증권의 경우 미리 관련 시스템을 구축해 가격이 마이너스에 진입했을 때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키움증권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베스트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투자자들의 거래를 차단해 사고를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300만 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회사는 1차 배상안으로 약 550만 원을 제시했고, 이후 수 차례 논의 끝에 적절한 금액을 배상 받게 됐다.
▲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 |
ⓒ 조선혜 |
"엉터리 집 지어... 100% 책임져야"
다른 증권사들은 어땠을까? 지씨는 "유안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 두 회사는 사고 이후 첫 번째 주에 합의를 마무리했다"며 "키움증권 피해자 1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도 합의를 끝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전산 오류에 대한 잘못을 금융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꼴"이라며 "당연히 금융회사가 피해액의 100%를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회사가 엉터리 집을 지어놓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중개수수료만 받고 발을 빼려 한다면 금융회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쪽은 지씨의 경우 전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유진투자선물 관계자는 "전산 장애시각 당시 시스템상 주문 기록이 없었으며, 고객과의 통화에서 청산 의사를 물었으나 고객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해당 고객이 보상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관련 절차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회사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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