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어떻게 노조를 와해했나
- 전혜원 기자
- 호수 642
- 승인 2020.01.08 12:42
노조 와해 공작 혐의로 기소된 삼성 고위 임원들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재판부는 삼성이 노조 무력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적극적으로 노조 와해를 공모했다고 보았다.
삼성의 노조 와해가 법원 판결로 확인되었다. ‘삼성 2인자’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지난 12월17일, 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 자회사)의 협력업체 노조를 와해시킨 혐의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날 법정 구속되었다. 강경훈 부사장은 나흘 전인 12월13일, 에버랜드 노조 와해 혐의로 이미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하며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들이 노조 와해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결정적이었다. 검찰은 201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수사의 일환으로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삼성전자 측이 부서 배치표와 직원 명단을 주지 않자 인사팀으로 이동했는데, 인사팀 전무의 PC에서 ‘지하 주차장의 직원 승용차 트렁크에 저장매체를 숨겨놓았다’는 사내 메신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저장매체에서 노조 와해 관련 문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약 6000건). 문건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의 증거물인 동시에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을 재수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판결문에서 법원이 확인한 사실을 재구성해보면, 두 사건이 사실은 한 덩어리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노사파트에서 작성한 ‘2011년 그룹 노사전략’은 “확고하고 견실한 비노조 조직문화 구축을 통한 복수노조 위기 극복”을 목표로 삼았다. 2011년은 삼성에 특히 중요한 해였다. 그해 7월 복수노조 관련법 시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 노사전략’에 따르면, 삼성은 이를 “위기”로 인식했다. “노조설립 사전 차단에 주력”하고, 노조 설립이 시도되는 경우 조기 와해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일단 노조가 설립되면, ‘노조의 장기 고사’를 목표로 상황별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단계별 전략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①평상시에는 ‘비상상황실 설치’ ‘노조 설립 예상 인력 및 동향 파악’ ‘반
삼성 인물 및 단체에 대한 면밀한 동향 파악’ ‘문제인력(노조를 만들려는 사람을 뜻한다) 파악 및 취합 후 비상상황실 일일 보고’ ②노조 설립 단계에는 ‘노조 설립 서류 하자 제기’ ‘정보 분석을 통해 주동자와 단순 가담자를 분류한 후 노조 탈퇴 및 노조 설립 신청 취하 유도’ ③노조 설립 후에는 ‘장기 고사화 전략으로 방향 선회’ ‘교섭 개시를 최대한 지연’ ‘대항노조(회사 측에 우호적인 노조를 말한다)를 설립, 교섭대표권 확보’ ‘개별 면담, 주동자 징계 등을 통해 노조 자진 해산 유도’.”
삼성은 복수노조 시행 대응을 회장 보고사항이라 여길 정도로 중시했다. 2011년 3월9일, 미전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110309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방안(A 보고)’ 문건을 작성한다(‘A 보고’란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는 문건을 지칭한다. 재판부는 이 문건이 이건희 회장에게 실제로 보고되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문건은 이렇게 적는다. “원천적으로 노조 설립 가능성을 차단하겠습니다.” “만약의 경우 소수 문제인력에 의한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기에 노조를 와해시키도록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시간을 끌면서 상대 노조를 고사화시키거나 친사 노조를 설립하여 무력화시키는 방안도 강구하겠습니다.” 그룹 노사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인사에 반영된 ‘복수노조 대응태세’ 성적표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대해 ‘실무자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건이 ‘실천방침’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수두룩하다. 미전실 노사파트는 이 전략에 따라 2011년부터 3년 동안 각 계열사의 ‘복수노조 대응태세’를 세밀하게 점검했다. ‘문제인력의 프로필 관리’ ‘안정화 및 퇴출’ 등의 평가 항목을 만들어 점수를 매길 정도였다. 심지어 미전실은 각 계열사 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시험까지 실시했다. 문항은 이런 식이었다.
“장기 승격 누락자 A 대리가 회사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취지의 글을 사내 개인 블로그에 게시하였고, 문제인력 20명이 이에 동조하면서 ‘노조 설립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중략) 현 상황을 판단, 분석한 후 대책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의 답안지 작성 시간은 20분이다. 미전실이 평가한 ‘복수노조 대응태세’의 계열사별 성적은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반영되었다.
그룹 노사전략이 처음으로 본격 실행된 계열사는 에버랜드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둔 2011년 6월4일, 에버랜드 리조트 F&B 물류센터 2층 복합기 옆에서 이른바 ‘불온문서’가 발견된다. 이 문서엔 ‘회사 측이 노조 결성 시도를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조합원 가족 접촉, 납치/감금, 인사이동, 해고 등)’에 대한 노동자 측의 대응방안이 적혀 있었다. 에버랜드에 노조를 만들려는 이들이 준비 과정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이처럼 노조 설립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자, 그해 6월17일 미전실 직원 김이훈씨는 ‘에버랜드, 문제인력들의 노조 설립 기도 대책’이란 문건을 작성한다. ‘조장희 등 문제인력들의 노조 설립 전 선제적으로 대항노조를 설립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조장희에 대한 징계 해고와 형사고발 등을 추진하여 삼성노조의 조기 와해에 주력하며, 에버랜드에 비상상황실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계획은 신속히 진행되었다. 에버랜드 내의 건물 지하에 회사 측 ‘상황실’이 설치되었다.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그해(2011년) 7월12일 설립총회를 열었다. 에버랜드 측은 설립총회로부터 6일 뒤인 7월18일,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을 징계 해고한다.
징계 사유 중 하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설립총회 이전인 6월26일 ‘차량 번호판을 허위로 달고 다닌’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다. 조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에 가짜 번호판을 달아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가 한 수 위였다. 이미 미행으로 그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체포되기 나흘 전인 6월22일, 사측 상황실 직원은 조 부위원장이 문을 잠그지 않고 주차해놓은 차량의 보닛을 열고 엔진 뒤쪽에 새겨진 차대번호(이게 진짜 차량번호다)를 몰래 촬영했다. 그리고 이를 경찰에 알렸다. 사전 공작도 해두었다. 차대번호 촬영에 성공하기 이틀 전인 6월20일에 사측 상황실장이 용인경찰서장을 만나 조 부위원장의 자동차 번호판 위조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두었던 것이다. 사측은 조 부위원장이 연행되자 이를 즉각 언론에 알렸다. 이로써 ‘근무처에서 경찰에 연행됨으로써 직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는 징계 사유가 완성되었다.
미행과 동향 파악은 장기간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다. 상황실 직원이 미전실에 보고한 ‘문제인력 차량 확인계획’은 문제인력들에 대한 ‘순찰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절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확인만 한다’ ‘2인1조로 운영한다’ 등이다. 압박 수위도 ‘목표물’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로 세밀하게 조절했다. 에버랜드는 삼성노조 설립 1년6개월 만에 조합원 전원을 징계한 바 있다. 그중 조합원 김영태씨에 대해서는 징계 수위를 당초 ‘강격’(직급 강등)으로 검토하다가, 김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알아냈다. 결국 김씨는 ‘정직’으로 생활비를 벌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그를 무급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주효한 압박 수단이라 판단한 사측의 고려였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측의 삼성노조에 대한 징계를 ‘위력으로 노조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판단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다.
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등장하는 ‘대항노조’ 설립도 에버랜드에서 실제로 이뤄졌다. 회사 측은 노조 설립 움직임을 감지한 직후 임도한씨에게 ‘대항노조’의 위원장직을 제안한다. 임씨는 에버랜드에서 10년 동안 노사업무를 담당한 직원이었다. 사측은 대항노조 조합원이 될 직원들에게 ‘설립신고’ ‘단체교섭 시뮬레이션’ 등을 교육한 뒤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그해(2011년) 6월20일 대항노조(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하고, 24일 단체교섭 요구를 만들었으며, 29일엔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모든 절차가 ‘7월1일 이전 완료’를 목표로 진행되었다. 복수노조 허용 법률이 시행되는 7월1일 이전에 대항노조를 만들어 단체교섭을 체결하면 그로부터 2년 동안엔 사내의 다른 노조(조장희씨 등의 삼성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측은 문건에서 에버랜드 노조를 ‘PU(Paper Union·서류상 노조)’ ‘DH노조(대항노조)’라고 표현했다. 에버랜드 노조위원장에겐 ‘어용, 알박기 비난 대응 Q&A’ 등의 교육을 실시했다. 재판부는 미전실 등의 이런 행위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삼성전자도 미전실의 그룹 노사전략에 따라 2011년부터 3년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를 대상으로 ‘복수노조 대응태세 점검’을 실시했다. 당시 사측 문건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면 다음과 같이 대응하라고 적었다. “일부 인력 노조 가입 시→GPA(협력업체) 사장 계약해지 유도. 다수 인력 노조 가입 시→장기적 고사화 작전.”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실행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2013년 1월, 외근 협력업체의 두 직원을 ‘문제인력’으로 분류한다. 두 사람이 금속노조 관계자를 만났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노조 설립 차단을 위해 협력업체의 ‘조기 폐업’을 검토한다. 계획대로 해당 협력업체는 폐업하게 되는데, 문제인력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다른 협력업체로 옮겨간다.
2013년 6월께 삼성전자서비스에 ‘신속대응팀(이른바 QR팀, 팀 이름은 계속 변경된다)’이 구성된다. 팀원들은 모회사인 삼성전자에서 파견되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2013년 7월)된 뒤인 2014년 1월 QR팀 대응 방침은 다음과 같다. “대표성 있는 강성 활동 협력사 중 사장이 경영 포기 의사를 밝힌 업체를 선정해 고용승계 없는 폐업 추진.” “(폐업) 소문을 확산시켜 불안감 극대화.” “「강성 노조활동→폐업→실직」이라는 인식 확산” “가정통신문을 통한 압박도 가능.”
이후 QR팀은 “위장폐업 논란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일정 변경을 검토”하면서 해운대와 아산의 협력업체를 폐업시킨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할 수 있는 우월한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대해 ‘단순한 우월적 지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협력업체 경영진과 수리기사들에게 직간접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내렸다. 협력업체는 사실상 삼성전자서비스의 하부 조직처럼 운영되었다. 그래서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의 수리기사들이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다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재판부는 해운대·아산 협력업체 기획 폐업 등이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이며 삼성전자서비스가 그 주체라고 인정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원을 대상으로 ‘표적 감사’를 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삼성전자가 작성한 일련의 문건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작업기록을 분석해 자재 허위 교체, 수리비 과다 청구 등 ‘이상 데이터’를 발굴했다. 한 건 이상의 문제가 발견된 기사는 4000명 정도였다. 이 중 “약 800명의 노조 가입 인력 명단을 가지고 노조 간부 등 주동자 약 140명 정도를 (감사) 타깃으로 선정”한 것이다. 노조원을 겨냥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비노조원까지 섞어 감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표현 그대로 표적 감사였으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했다.
협력업체와 공모한 ‘그린화’ 작전도 실행되었다. ‘그린화’는 노조에서 탈퇴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협력업체 사측은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노조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삼성전자서비스 측에 제공했다. 수리기사들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소속 협력업체가 폐업되거나 일감이 줄고 노조 탈퇴를 강요받았으며 개인정보까지 탈취당했다.
이 같은 노조 와해 작전의 와중에 2013년 10월 천안 협력업체 직원 최종범씨, 2014년 5월엔 양산 협력업체 염호석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삼성 측은 노조장으로 치러달라는 고인의 유서에도 불구하고 염호석씨 아버지 염 아무개씨를 회유해 가족장으로 치르도록 설득했다. 시신을 노조로부터 빼돌려 서둘러 화장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김정환씨의 조력을 받기도 했다. 삼성 측은 노조 문제에서 경찰관 김씨에게 도움을 받은 대가로 모두 3188만원을 건넸다. 재판부는 이를 뇌물로 인정했다.
“비노조 방침 철회는 아니다”
삼성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비노조 경영에 대해 ‘노조가 필요 없는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건으로 확인된 ‘비노조 경영’의 실체는 그와 달랐다. “악성 노조 바이러스가 침투하더라도 임직원이 흔들림 없도록 비노조 DNA를 확실하게 체화하도록 모든 사원들에 대한 노사교육 실시” “3년 내 문제인력 100% 감축 목표로 개인별 성향 분석 등을 통해 매월 조직관리회의 시 문제인력 감축실적 체크”(2013년 그룹 노사전략).
삼성은 문제인력뿐 아니라 계열사 임직원들의 연말정산 자료를 무단 열람해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등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잠재적인 문제인력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불온단체’에는 한국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민족문제연구소, 향린교회, 통합진보당 등 진보단체·정당이 들어 있었다. 삼성은 문제인력에 대해 “우군화”와 같은 전쟁용어를 사용했다. 노조를 만들고 싶지 않은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노조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등장하면 와해·그린화(탈퇴 종용)·고사화하는 것이 삼성의 기본 방침이었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다. 재판부는 “문건에 드러난 피고인들의 노조에 대한 반헌법적 태도는 일관되고 적나라하다”라며 비노조 경영이 “반헌법적 요소를 포함한다”라고 적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문 발표가 비노조 경영 방침을 철회한다는 뜻이냐는 <시사IN>의 질문에 “아니다. 그것은 확대해석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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