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구제역, AI 등 경제적 피해 넘어 환경, 건강 위협…공장식 축산 재검토해야
» 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9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 및 처분 현장에서 생매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생매장 살처분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축산업이 몸살이다. 9월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 발견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파주, 김포, 강화, 연천 등에서 잇따라 확진되었다. 이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살처분 대상에 오른 돼지만 15만 마리가 넘고, 수매·도태된 돼지까지 합치면 살처분 규모는 45만 마리까지 늘어난다.1) 이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이전 전국 돼지 수(6월 기준 1131만 7000마리)의 4%에 달한다. 여기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전파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전국에서 잡아 죽인 멧돼지 2만 1209마리까지2) 더하면 이번 사태로 47만 마리가 살처분된 셈이다.
어마어마한 수의 살처분이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가축 질병 발생 및 방역 현황’을 보면, 2010년 구제역 발생 이후 2018년까지 8차례의 구제역으로 38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7차례의 조류인플루엔자로 69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되었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 47만 마리까지 더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년간 7000만 마리의 생명을 가축 전염병 예방이라는 목적으로 죽이고 땅에 묻었다.
» 2018년 구제역 확정 판정을 받은 경기도 김포시의 한 돼지농가에서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 등이 돼지들을 살처분장으로 유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몰지 부족과 환경오염
이러한 살처분에는 농가 보상비용 외에도 살처분을 실시하고 가축의 사체와 오염물을 소각·매몰하는 등에 엄청난 세금이 쓰인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든 비용을 포함하지 않고도 2010년 이후 10년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비용에 든 세금이 4조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가축 전염병 발생지역의 소독과 매립지 관리 등에도 예산이 필요해 살처분을 책임지고 있는 기초지자체의 파산이 걱정될 지경이다(▶관련 기사: ‘살처분 비용’ 지자체 SOS에…중앙정부 일주일째 "검토 중").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살처분이 제대로 관리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11월 살처분한 돼지 수만 마리를 땅에 묻지 않은 채 쌓아두었다가 돼지 사체에서 나온 피가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지류 하천으로 흘러들어 파주시가 금파취수장의 취수를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연천뿐 아니라 돼지 매몰지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매몰지 관리 부실은 이번뿐 아니라 그동안의 매몰지에서도 흔하게 일어났고, 일어나는 일이다(▶관련 기사: 이낙연 총리 "연천 돼지 사체 침출수 유출, 주민들께 송구").
» 9월 17일 오전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돼지들을 살처분하기 위한 흙 구덩이 넣을 매몰통을 옮기고 있다. 파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살처분 매몰지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문선희 작가는 2018년 ‘생명을 묻다’ 세미나에서 발굴 금지 기간(3년)이 지난 매몰지 100여 곳을 무작위로 직접 찾아가 본 결과, 대부분의 매몰지가 3년이 지난 당시까지도 여전히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고 밝혔다. 곰팡이가 핀 매몰지는 물컹하여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하는데, 돼지 뼈와 곰팡이가 가득한 매몰지 100곳 중 20곳에서는 농사를 시작하여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가 많은 매몰지라도 확보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2010년부터 가축 전염병으로 조성된 매몰지가 4000~5000곳에 이른다. 이 중 2304곳은 매몰지 관리지침에 따라 관리대상에서 해제됐지만, 여전히 관리 중인 매몰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조성된 71곳을 포함하여 213곳에 이른다. 그러나 관리대상에서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살처분 가축 매몰지는 사체 잔존물이 남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보니 이번 연천 돼지 사체 침출수 유출사건처럼 산처럼 쌓인 사체가 매몰지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되어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의 매년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이제 살처분 가축 매몰지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렸다.
»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에 따른 살처분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월 6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살처분 당하는 장면을 재현하며 돼지의 고통을 알리고 탈육식 동참을 호소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농가와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이 되는 살처분 방식은 비단 경제적으로만 피해를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과정에서 발생한 연천군 하천오염과 같이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물론 살처분 이후에도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인해 매몰지 인근 지역의 지하수와 토양 등 환경을 오염시키고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2011년 충남의 한 축협에서 일하던 정아무개씨가 살처분 트라우마로 인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 씨는 2010년 12월 말 당진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동료들과 함께 가축 매몰작업에 투입됐다. 갓 태어난 어린 가축을 포함한 소, 돼지를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야 했던 정 씨는 그 일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 씨는 이후에도 2011년 9월까지 매몰지를 방문해 흘러나오는 침출수 제거 작업을 해야 했다. 정 씨는 죄책감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11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관련 기사: 새끼 돼지 태워 죽인 공무원 트라우마, 국가는 책임을 외면했다). 이러한 살처분 트라우마가 정 씨만의 일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공무원 등 268명을 대상으로 한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 증상을 보였다.
»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살처분되기 전(위)과 후의 산란계 축사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10년간 4조원을 쏟아붓고 7000만 생명을 빼앗고도 해마다 살처분이 계속된다는 것은 살처분이 비경제적이거나 반생명적인 방법이라는 문제점 외에도 과연 실효성이 있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해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조류인플루엔자는 살처분 매몰방식이 오히려 조류인플루엔자를 토착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살처분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유독 극성이었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살처분된 가금류는 지난 10년 동안 살처분된 가금류의 90%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 기간 충북의 동물복지농장 23곳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가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철새 탓이라는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공장식 축산이 가축 전염병의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제는 실효성도 없이 피해만 늘어나고 있는 공격적인 살처분 방식보다 먼저 축산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가축 전염병을 급속하게 전파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밀식사육과 저수지 주변 사육과 같이 무분별한 축산업 허가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또 가축 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 대상인 3㎞ 범위를 처음부터 축사 이격거리 조건으로 허가해 대규모 살처분을 애초에 예방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닭 공장’과 같은 비위생적이고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축산방식에서 벗어나 동물복지 농장을 지원하고 사육제한 직불제 등에 살처분 비용을 쓰는 것이 가축 전염병 예방과 축산 농가 지원에 더욱 효과적이다.3)
해마다 거듭되면서, 국가재정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축산농가와 살처분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하는 살처분이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바이러스에 집중한 살처분으로 가축 전염병을 막아낼 수 없었다면 이제는 전염병을 키우고 번지게 하는 사육 환경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원칙으로 돌아가서 다시 점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운영위원장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