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이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에게 욕설을 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드러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갈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교수가 센터장을 사임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외상센터 의료진마저 닥터헬기 탑승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보건복지부와 경기도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 갈증의 골이 워낙 깊어 내홍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주대병원과 병원 외상센터의 봉합으로 ‘하늘의 응급실’인 닥터헬기가 다시 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상센터·닥터헬기 운영 불협화음.
지난 13일 언론을 통해 유희석 원장과 이국종 교수의 대화라며 한 녹음파일이 공개했다. 녹음파일에서 유 원장은 이 교수를 향해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가 말이야”라며 욕설이 담긴 막말을 한다. 이어 유 원장은 “나랑 한판 붙을래 너?”라고 말하고 이 교수는 “아닙니다”라고 답한다. 문제가 된 녹음파일은 4~5년 전 외상센터와 병원 내 다른 과와 협진 문제를 두고 유 원장과 이 교수가 나눈 대화의 일부로 전해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유희석 의료원장과 이국종 교수는 2013년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될 무렵부터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2011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 교수는 자신의 실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권역외상센터 운영에 자신감과 애착을 보였고 아주대병원 측은 전체적인 병원 살림을 앞세우면서 긴장 관계는 점차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또 비슷한 갈등은 지난해 8월 ‘닥터헬기’가 도입되며 다시 불거졌다. 닥터헬기가 하루 10여 차례 이착륙하며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한 것이다. 아주대병원은 민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 교수는 주·야간 가리지 않고 닥터헬기를 띄워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국종 “기존 인건비는 계속 병원이 부담해야” vs 아주대병원 “법적 기준보다 28명 더 많이 인력 지원”
보건복지부는 2018년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 간호사 인건비 25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당시 아주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 간호인력 법적 기준(40병상 64명)보다 28명 많은 중환자실 간호사를 병원 부담으로 쓰고 있었다.
이 교수는 국가 지원금은 전부 새 간호사를 뽑는 데 써야 하는 것으로 봤다. 이에 이 교수는 중환자실 간호사 외에도 외상병동 간호사 등 64명 충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은 병원이 부담하던 중환자실 간호사 28명의 인건비를 빼고 36명만 새로 뽑았다. 법적 기준보다 더 채용했던 28명의 인건비를 국가 지원금으로 충당한 것이다. 이 교수는 병원의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확인에 나선 복지부는 병원이 법적 기준보다 더 채용한 간호사들도 국가 지원 대상이 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부담하던 인건비는 국가지원금이 내려와도 병원에서 계속 부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복지부 지원을 받기 전에도 병상당 필요한 인력인 64명보다 28명이 많은 92명이 근무하고 있었다”며 인력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병상 부족에 따른 ‘바이패스’ 증가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100개의 병상이 있다. 센터는 집중치료병상이 확보돼야만 환자를 받을 수 있는데 현재 센터의 집중치료병상이 다 차면 본관의 집중치료병상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마저도 다 찼을 경우이다. 바이패스(bypass·우회)는 이처럼 병상이 부족하니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119에 통보해 다른 곳으로 환자를 이송하도록 하는 조치다. 권역외상센터는 2017년 11건, 이듬해 53건, 지난해 57건의 바이패스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 교수는 이처럼 바이패스가 늘어나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본관에서 권역 외상센터 환자를 더 수용해 위급한 환자를 권역 외상센터가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했지만, 아주대병원 측은 다른 과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2달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느라 병상 100개를 사용하지 못한 시기를 빼면 병상 문제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국종 없는 ‘권역외상센터’, 닥터 없는 ‘닥터헬기’
이국종 교수는 지난 2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음달 3일 보직사퇴서를 아주대병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청원 등을 통해 권역외상센터 운영 예산을 만들었는데, 정작 병원의 지원은 없었다”며 “병실은 병원이 조직적으로 내주지 않았고, 닥터헬기는 소음 민원 등 여러 지적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센터장 사임이 현실화할 경우 의료진의 사기저하 등으로 이어져 센터 운영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닥터헬기 운항 재개에도 먹구름이 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은 지난 21일 보건복지부가 권역외상센터에서 주관한 회의에서 ‘닥터헬기’ 탑승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의료진은 인력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이유로 들었다. 앞서 권역외상센터는 원활한 닥터헬기 운영을 위해 병원 측에 의사 5명과 간호사 8명 충원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인력 충원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한국 항공우주산업으로부터 안전점검을 받고 운항 준비를 끝낸 닥터헬기는 지난 22일부터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권역외상센터 측의 탑승 거부로 운항이 멈춘 상태다.
■아주대 의대 교수회는 사퇴 요구, 시민단체는 모욕 등 혐의로 고발.
유 의료원장의 욕설 막말 논란과 관련해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회는 지난 16일 “언어폭력은 사건의 동기나 그 이면의 갈등과 상관없이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며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이라며 “유 원장은 이 교수 등 전체 교수에게 사과하고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 유 원장을 모욕과 업무방해·직무유기 등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에서 “유 원장은 이 교수가 운영하는 권역외상센터에 병실을 배정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센터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했다”며 “피고발인은 의사로서 사명감과 책무를 저버려 의료원과 이 교수 등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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