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에 걸쳐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되었다. 북한은 회의 결과를 1월 1일 종합하여 발표했으며 신년사를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과거에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이 신년사를 대체한 적이 있다. 이에 북한의 올 한해 및 앞으로의 행보를 알아보기 위해 2020년 새해를 맞아 전원회의 결과를 분석한다. 북한이 전원회의 보고 전문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보도만 가지고 분석하는 제한성이 있음을 미리 알린다.
1.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자로서의 풍모가 잘 드러났다
(1) 상당히 ‘거연한 자태’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번 전원회의 결과를 보면 지난해 10월 김정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른 때부터 지금까지 무르익은 사색과 구상을 응축한 것이란 느낌이 든다. 당시 북한 언론은 “세상이 놀라고 우리 혁명이 한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느낌을 준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높은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였다.
북한은 전원회의의 목표를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고 사회주의건설의 진군속도를 비상히 높여나가기 위한 투쟁노선과 방략”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국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리자는, 상당히 높은 목표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는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국내 상황, 특히 경제에 치중한 목표다. 한국에서는 매년 초 경제성장율 목표치가 주요 관심사로 된다. 국가의 존엄이나 전반적 국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는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를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국가 위상을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침략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는 점에서 북한과 다르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은 세계초강대국으로서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패권을 휘두르며 횡포를 부리는 미국이다.
둘째, 객관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와 맞서서 주인으로 우뚝 서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우리는 오늘의 투쟁에서 객관적 요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 객관적 요인이 우리에게 지배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객관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강력한 자체 역량을 통해 주동에 서서 난관을 뚫고 나가겠다, 세계와 맞서서 자기 운명의 주인, 세계의 주인으로 우뚝 서겠다는 그런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런 의지만으로 이미 주인으로 우뚝 선 느낌이다.
객관의 지배를 받지 않고 객관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는 종교의 시각으로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절대자유, 즉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체의 속박을 벗어난 상태를 연상시킨다.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탄생 직후 사방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천상이나 땅 위에서나 나 홀로 존귀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자기 삶의 주인은 신이 아닌 자기 자신이며,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존엄을 누려야 한다는 뜻이다. 신과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난 절대자유의 ‘나’가 진짜 ‘나’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객관의 지배를 거부하고 객관을 지배하자고 선언한 것에서 이와 같은 거침없는 절대자유인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을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과의 치열한 대결은 항상 자체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을 동반하며 자기를 강하게 만드는 사업이 선행되어야 주동에 서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 힘을 키워 객관을 지배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서 가능성이 보인다.
자기 힘, 자력이라는 것은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자력일 때만이 사람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남의 힘을 빌리면 눈치를 안 볼 수 없으며,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을 펼치는 게 불가능해진다. 자기 힘을 통해서만, 그걸 각오한 사람만 객관을 지배하고 진정한 절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자력갱생, 자력강화, 자력부강, 자력번영 등 자력을 계속 강조한 건 굉장히 중요하다. 전원회의 보고 전체를 굳건히 세우는 척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자기 힘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에서 절대자유, 절대의지의 거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2) 국가 지도자로서 ‘천재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장장 3일에 걸쳐 총 7시간의 매우 긴 보고를 하였다. 그 내용도 대단히 방대하여 정치, 외교, 국방은 물론 경제영역은 주요 산업별로 하나하나 점검하고 과학기술과 교육, 보건 등 사회 각 영역들, 심지어 생태환경과 자연재해 문제까지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북한 언론이 공개한 전원회의 보고 내용은 읽었을 때 40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었다. 실제 보고에 7시간이 걸린 것으로 봐서는 공개된 보고 내용은 전체의 10분의 1 정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매우 방대한 내용을 보고한 것이다.
그런데 전원회의 보고 영상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프롬프터(연설문을 보여주는 장치. 요즘은 투명유리에 글을 띄워 연설자가 청중을 보면서 동시에 연설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를 사용하지도 않고 장시간 청중을 보며 연설에 가까운 보고를 하였다. 연단의 원고는 어쩌다 한 번씩 볼 뿐이었으며 시종일관 청중들과 시선을 맞추며 활발한 손짓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발언을 하였다. 의자도 없이 서서 3일 연속 7시간을 보고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정은 위원장은 마지막 날까지 지친 기색 없이 열정적이었고 자신감과 활력이 넘쳤다.
▲ 28일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위 사업정형과 국가사업전반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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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이 가능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 내용을 한 눈에 꿰차고 완전히 자기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이 써준 글을 읽을 때는 이게 불가능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 운영의 여러 부문에 정통한 것은 다양한 단위를 현지지도하면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 지도자가 국정의 모든 영역을 통달하고 직접 지도하는 경우는 거의 유일한 듯하다. 상당히 천재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3) 지도자를 중심으로 굉장히 안정된 나라라는 인상을 준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와 1000여 명의 전국 주요 핵심 간부들이 한 장소에서 3박4일을 연설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대규모 회의를 진행했는데 그 모양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참가자 모두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과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으며 회의장 전체에 강한 열기와 단결, 응축된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회의장 전면 위에는 “전 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는 구호가 적혀있는데 이는 곧 북한이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 아래 모든 것을 해나가겠다는 의미다. 그 기치 아래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선두에 있고 온 나라의 주요 간부가 하나로 단결해있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이처럼 지도부가 하나로 뭉친 3박4일을 보여주는 나라는 없는 듯하다.
지난 1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신년 합동인사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취임 후 첫 대면을 했다. 언론은 모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고 보도했다. 추 장관이 조만간 대규모 검찰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은 추 장관 측근 수사에 돌입해 다시 한 번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정면충돌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구도 정부의 단결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나 정당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국회는 동물국회 난장판으로 단결은커녕 정상적인 민주적 토론조차 불가능한 자리가 된 지 오래고, 정당들을 보면 같은 당 내에서도 당권을 쥐기 위한 암투,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더 심하다. 2018년 10월 18일(현지시간)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오벌오피스) 문 밖에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욕설과 삿대질이 오가는 격렬한 싸움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9월 경질된 후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며 “북한과 협상은 실패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식의 다툼이나 권력투쟁은 미국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이런 것과 비교하면 북한은 전국의 주요 간부 전체가 하나의 사상, 한 명의 영도자를 중심으로 전체가 통일된 느낌을 준다. 하나의 통일체로서 용광로처럼 뜨겁게 이글거리는 모습이다.
또 전원회의가 끝나자 북한은 새해맞이 대규모 문화행사를 펼쳤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엄청난 규모의 무대와 화려한 불꽃놀이, 다양한 공연이 있었고 또 수많은 관객이 결집해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걸 보면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고지도자와 간부들, 국민이 하나로 통일되어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데 굉장히 독특하다고 보인다.
2. 북한이 굉장히 중요한 국가라는 것이 과시되었다
지난해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계는 북한을 주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과연 북한이 ‘새로운 길’을 선포할 것이냐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사람들은 1월 1일 신년사에 모든 해답이 담겨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언론들은 「‘성탄선물’ 언급 북, 일단 ‘잠잠’...전원회의·신년사 주목」(매일경제, 2019.12.25.), 「미 전문가들, 북한 신년사 통해 ‘병진 정책’ 회귀 가능성에 주목」(미국의소리, 2019.12.31.) 등 신년사를 주목해야 한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다가 1월 1일 북한이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자 국내외의 이름 있는 모든 통신사와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고 분석기사를 써냈다. 각국의 이런 저린 정세분석가들도 분석을 쏟아냈다. 일부 방송은 혹시 북한이 별도의 신년사를 발표할 수도 있다며 오전 내내 대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조선한국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1월 3일 인터뷰에서 “신년사를 생략하는 행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 전 세계 여러 통신사, 언론사가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소식을 타전했다. © 로이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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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신년사에 전 세계가 이토록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는 현상은 유례가 없다. 아마 북한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세계 정세 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극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북한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정상에 있는 나라로 보인다. 미국의 일극시대가 저물고 있다.
3. 폭풍전야의 느낌을 준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핵심 주제어로 얘기했는데 뭔가 폭풍전야의 느낌을 준다.
(1) 자력부강, 자력번영
북한 보도를 보면 작년에도 북한 경제가 빠르게 발전했음을 볼 수 있다.
작년 북한이 내세운 대표적인 건설 성과는 삼지연시 2단계 공사, 중평채소온실농장과 양묘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이다. 사진을 보면 일단 규모가 크고 또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굉장히 고급스러우면서 조화롭고 세련된 건축미학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명을 드러낸 건축물이었다.
▲ 북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삼지연시의 거리 이름을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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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조업식을 한 함경북도 경성군 중평지구의 온실농장의 전경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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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준공식을 한 양덕온천문화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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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지점은 위 3곳이 모두 평양이 아닌 지방이라는 점이다. 삼지연시는 백두산 기슭, 중평채소온실농장은 함경북도, 양덕온천문화휴양지는 평안남도에 있다. 또한 2017년 려명거리 완공 후 평양 일대에 이와 같은 건설 붐이 계속되고 있고,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가 내년 개장을 목표로 건설이 한창인 상황에서 위 3곳의 대규모 공사를 마쳤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위 건설을 모두 자력으로 했다는 것이다. 삼지연시 공사를 보면 원래 산골의 작은 읍을 시로 승격할 정도로 하나의 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였는데 이를 자체 설계, 자체 설비, 자체 자재, 자체 자금, 자체 노동력으로 해냈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신도시를 개발하고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지만 수입품을 많이 쓴다. 수입 자재는 물론 포클레인이나 화물트럭을 보면 대부분 수입차량이다. 철근도 수입 철광석에서 뽑아낸다. 고급 아파트일수록 수입 자재 비율이 늘어나는데 일부 호화 아파트의 경우 거의 100% 수입 자재를 쓴다.
이와 비교해보면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속에서도 자체 힘으로 도시 하나를 건설해내는 북한의 능력은 확실히 엄청나 보인다.
그들이 경제 건설을 자력으로 했기에 그 성과, 그 창조물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내 힘, 내 노력, 내 능력으로 만들어 완전히 내 것일 때 그 창조물은 긍지와 보람, 행복이 응축된 결정체가 된다. 남의 힘, 남의 노력, 남의 능력으로 만든 것은 그만한 긍지와 보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이런 면에서도 북한은 독특한 자기 발전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삼지연시에 사는 사람, 중평채소온실농장에서 나오는 채소를 먹는 사람, 양덕온천문화휴양지를 이용하는 사람 모두 평범한 국민일 것으로 보인다.
려명거리가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을 때 여러 언론들이 저런 고급 아파트단지에는 고위직들만 살 것이라고 보도했다. 려명거리는 우리로 따지면 한남동이나 청담동의 최고가 아파트단지다. 그런데 실제 취재해보니 려명거리에는 평범한 노동자, 사무원, 교원들이 살고 있었다. (「“평양 최고급 아파트에는 그 집을 지은 노동자들이 산다”」, 노컷뉴스, 2018.8.2.)
이번에 시로 승격된 삼지연시에 대해서 그 누구도 특수계층이 살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산간도시에 ‘특권층’이 굳이 이주해 가서 살 거라는 주장이 있다면 그야말로 난센스다.
이처럼 북한이 자력으로 건설하는 것은 민생과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민생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번영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마천루(초고층 건물)를 떠올린다.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서울 테헤란로 등의 마천루가 다 번영의 상징으로 꼽힌다. 물론 이런 것들이 번영의 상징으로 될 수는 있지만 그걸 보면서 서민의 삶을 떠올리며 서민이 풍요롭게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천루와 서민의 삶은 분리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서울 강남에 즐비한 고급아파트를 보며 ‘저기는 어떤 사람이 살까’, ‘이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은 왜 없나’, 이런 말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내세운 대표적 건설 성과들은 모두 일반 주민이 살고, 일반인이 이용하고, 일반인이 먹고, 그런 인상을 준다. 이런 면에서 보면 북한이 추구하는 자력부강은 민생보장과 통일되어 있어 보이고 번영의 모습도 다른 나라와는 다른 자기 나름의 특색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게 작년까지 북한의 모습이다. 북한이 그동안 계속 발전해왔으므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북한은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의 기본전선이 경제전선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는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지난해의 경제성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경제 영역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올해가 당창건 75주년임을 강조했는데 과거에도 이런 꺾어지는 해에 커다란 경제성과를 과시하곤 했다. 올해 북한 경제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북한은 올해 경제 분야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에 불이 달려 폭발하듯 솟구쳐 오르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거대한 추진력을 느끼게 한다.
(2) 충격적인 대미 공세 예고
북한은 전원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어있을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하여 핵증강, 핵전파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상대로는 감히 무력을 사용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들겠다고 하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거침없는 대미 공세를 예고하는 것 같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지 않을까 싶다.
4. 중구난방 미국의 반응
북한이 새해 첫날 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자 미국 내부가 상당히 분주한 모습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자중지란이라는 인상을 준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표 직후 기자들에게 북한이 예고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꽃병’이길 희망한다며 북한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북한은 분명 초강경 대미 입장을 밝혔고 트럼프의 평소 언행을 보면 트럼프의 대답은 ‘화염과 분노’여야 맞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북한과 관계가 좋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뭔가 짝사랑을 한다는 느낌이 들고 제발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말아달라는 애원을 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싸늘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 로버트 메넨데즈 의원은 “대북 제재 체제에 재시동을 걸고 중국을 강력히 관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미연합훈련 취소는 이득 없이 북한에 엄청난 선물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1일 “개인기와 경제발전에 대한 희미한 약속으로 북한 문제를 일소할 수 있다고 믿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8개월 실험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북정책 비판에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의 초강경 대미 메시지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을 비난하기보다는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제재를 강화해라, 중국을 설득해라, 훈련을 재개하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 목표도 북한 응징이 아니라 핵·미사일 유예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한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미국은 한국에서 취소되거나 축소된 모든 군사 훈련을 완전히 재개해야 한다”, “미군이 진정으로 ‘오늘 밤 싸울’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의회 청문회를 개최하라”고 주장했다. 당장 북한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자는 것인데 이게 원래 미국다운 목소리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 그다지 울림이 없는 소수파의 외침처럼 느껴진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중구난방이다. 미국 외교정책의 초당적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지난해 6월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로 비핵화가 달성되진 않을 거다. 유일한 방법은 ‘외교적 관여’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올해 1월 1일 인터뷰에서는 “북한에 대해 외교적 수단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며 반년 만에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통일적인 대응방침이 없는 것 같고 뭔가 주도면밀한 정책도 없어 보인다.
5. 하나의 주목되는 현상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강력한 핵억제력의 경상적(임시 변동 없이 항상 일정한 것)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며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하였다.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 차원에서 북한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주장이 거의 들리지 않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작년 초만 해도 북미 사이에서 비핵화의 개념을 두고 한반도 비핵화냐 북한 비핵화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어쨌든 미국은 북한에게 비핵화를 계속 요구했다. 그런데 올해 북한이 핵무력을 더욱 확대, 강화하겠다고 공식화했는데 이에 대해 비핵화하라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설사 여전히 비핵화를 주장하더라도 현실성 있게 느껴지지도 않고 울림도 없다.
2017년 11월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2년이 지난 지금 정치외교적으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돈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주장하면 사람들은 ‘미국이 어떻게 보상할지를 이야기해라. 왜 보상 얘기는 없고 북한한테만 요구하냐’는 반응을 보인다. 북한 비핵화가 안 되는 책임을 미국에게 묻는 형국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성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 핵무기는 원래 있어서는 안 되므로 북한에게 당연히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사라지고 자연스레 ‘북한 핵무기는 원래 있는 것이므로 북한에게 비핵화를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굉장히 주목되는 현상이다. 이대로 국제정치지형에서 북한의 핵보유국으로서 지위가 굳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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