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0.01.23 19:48 수정 2020.01.23 19:48
제조업의 위기는 한국만 겪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선택적 공업화'의 결과 제조업에 대한 과잉의존과 (제조업 관련) 서비스 부문의 취약성이 한국 제조업 어려움의 추가 요인일 뿐이다. 제조업 위기에 대한 혹은 제조업 이후에 대한 산업계의 대응은 (전편에서 소개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압축된다.
2000년 전후로 미국이 주도한 산업체계의 지각 변동은 시작했다. 90년대 IT 혁명이 2000년대 DT(data technology) 혁명으로 진화하면서 플랫폼 사업모델이나 데이터 경제 등의 부상에서 보듯이 새로운 산업 및 경제의 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몰락하는 제조업의 새로운 대안,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90년대 IT 혁명은 세상의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디지털 사업모델인 닷컴 기업을 등장시켰다. 모든 것의 '연결'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상황에서 '연결'을 통한 가치 창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자원이나 역량으로 가치를 창출하던 기존 방식에서 다른 사람들의 자원이나 역량을 '연결'시켜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비즈니스 세계의 키워드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이다. 고정 장소에서의 연결을 이동 상황에서의 연결로 확장시키자는 것이 '모빌리티의 스마트화(스마트 모빌리티)'이고, 첫 타자가 이동 전화기를 스마트화시킨 스마트폰이고 두 번째 대상이 자동차의 스마트화인 것이다.
새로운 가치 창출 방식의 선두 주자는 구글이었다. 구글이 검색서비스를 시작할 때 이 분야의 거인인 야후가 존재했다. 그러나 야후는 21세기 들어 쇠퇴의 길을 걸은 반면 구글은 인공지능(AI) 기술, 자율주행차 등으로 계속 진화를 하면서 21세기를 상징하는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구글의 진화는 '이익 공유'에 기반한 '디지털 생태계(플랫폼)'의 구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익 공유' 없이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 검색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대신 '데이터(흔적)' 등을 확보한 것이다. 이익을 많이 제공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자주 연결시키는 매력적인 플랫폼에서는 빅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확보한 빅데이터는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연료가 되었고, AI 기술의 향상은 자율주행자동차를 개선시키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의 스마트화의 절대 조건 중 하나이고,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AI 기술의 지원과 기술 개선을 위한 빅데이터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차량공유서비스가 또 다른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문제와 더불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사업으로의 전환은 자동차 산업에 지각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의 쇠락은 물론이고 자동차 소유 필요성의 감소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전화기나 자동차 등 제조업 제품의 위상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더 이상 전통적인 전화기를 넘어 '연결'과 '가치 창출'의 수단이자 데이터 창출 및 구동의 대상으로 진화하였다.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창출한 앱 생태계가 아이폰 제품의 매력을 만들어냈듯이 이동전화기와는 다른 스마트폰의 새로운 역할들이 스마트폰 제품의 매력을 결정하고 있다. 자동차의 스마트화는 다음 대상일 뿐이다.
새로운 국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 기업과 정부
이처럼 IT 혁명에서 DT 혁명으로 넘어가면서 (기후위기와 더불어) 제조업의 위상에 대한 영향은 예고된 것이었고, 우리나라 제조업의 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 기업이나 정부의 대응은 초라하다. 먼저, 우리나라 간판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대응을 보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8년 8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미래 사업들로 AI·5G·전장·바이오 등을 선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공언하였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 완화를 기대하고 선정한) 바이오는 커다란 의미가 없고 나머지 3개는 미래 자동차 산업(스마트 모빌리티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전장(전자장치)은 (대부분이 전자장치들로 구성될)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선택한 것이고 그 결과는 2016년 하만 카돈 인수로 나타났다. (기술적으로 실시간 연결을 가능케 하는) 5G는 (생명을 다루는 자동차 운행을 기계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자율주행차의 필수요소이다.
그런데 문제는 AI에 있다. 삼성전자가 AI 부문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 스마트폰에서 하였던 실수가 연상된다. 애플이 (이익 공유라는) 플랫폼 사업모델 방식으로 앱생태계를 구축하여 한때 앱 판매로부터 애플 영업이익의 70% 가까이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아이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자 삼성전자의 대응 방식은 초기 인기 어플 개발자 수십 명의 고용이었다.
어플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아이디어이고,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기업 밖에 있고, 애플은 '이익 공유'(3:7 수입 배분 방식)를 매개로 지구상의 70억 명이 가진 아이디어로 앱 생태계를 구축한 반면, 삼성전자의 대응은 앱 생태계 구축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었다. 당시 이를 지켜본 필자는 삼성전자는 뼛속까지 제조업체라는 지적을 한 바가 있다. 제조업과 전혀 다른 플랫폼 사업모델의 가치 창출 방식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였던 것이다.
삼성전자의 AI 부문 본격적 진출은 2016년 가을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인 비브랩스의 인수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빅스비'를 내놓았다. 현재 빅스비의 모습은 구글의 어시스턴트나 애플의 시리 등과 비교하면 솔직히 초라하다.
삼성전자가 2018년 미래 사업 중 하나로 AI를 선정했을 때 해외 반응은 늦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필자는 늦은 것은 큰 문제가 안 되는데 추격 방식이 후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AI 기술은 빅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디지털 생태계(플랫폼)'의 구축이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구글 같은 플랫폼이 아니다.
스스로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권우성
자신이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않고 AI 부문에 진출하려면 기본적으로 새로운 AI 기술을 계속 사들여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현대차의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2018년 무렵에야 '차량공유서비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외 차량공유서비스업체에 지분 투자로 대응하고 있다.
국내 재벌기업의 반복적인 헛발질은 체질적으로 '이익 공유'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문제를 풀려고 접근했을 때 (재벌기업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반발을 보며) 재벌기업은 플랫폼 사업을 절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최고의 제조업체인 GE의 쇠락을 남의 집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재벌기업이 아닌 국내 IT 분야 개척자들에게는 희망이 보이는가? 김범수 의장은 지난해 10월 모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DT 시대의 도래'를 거론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DT 시대는 20년 전에 이미 도래했는데...
이런 인식을 보면서 카카오가 모빌리티 및 차량공유서비스에 진출하는 후진 방식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개척자들조차 이익 공유나 데이터 창출 방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우리나라 플랫폼 사업들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을 가진) 중국에 한참 뒤처진 것이다.
제발 정부 규제 탓 좀 하지 마라. 스스로 안정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다 보니 공공기관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공공기관 데이터로 사업을 하고 있는가? 최근 (가입자를 쥐어짜는 수수료를 부담 지우는) 배달앱 사업모델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만든 생태계를 스스로 파괴시키는 역주행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매력적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단기 수익 극대화를 추구한 후 먹튀식 매각으로 조로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익 공유 없는 플랫폼은 지속 불가능한 생태계이다.
일본과의 싸움이 할만하다고 본 이유
정부는 어떤가? 2018년 혁신성장의 책임을 떠맡은 김동연 부총리는 플랫폼 경제의 활성화를,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홍남기 부총리는 D(ata), N(etwork), A(I) 육성 등을 얘기하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정부의 플랫폼 경제 활성화나 DNA 육성은 단언컨대 '구호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육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더 멀리 가서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얘기했는데, 녹색산업 육성의 결과는 어떠한가? 일본이 90년대 말부터 창조산업 육성을 했지만 비참할 정도로 실패했다. 산업정책에서는 노하우가 축적된 일본이 창조산업 육성에 실패한 이유는 창조산업과 제조업의 차이를 모르고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이다.
필자가 지난 여름 일본과의 싸움이 할 만하고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본 이유가 일본 제조업은 90년대 후반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반면,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산업 육성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육성하려는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가 없다.
산업 지도의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나 기업, 개인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을 전제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는 살을 깎는 모습이 필요하다. 다음 호에서는 이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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