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굴뚝같지만] 집주인에게, 파인텍에게 불이익은 없다?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후원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에 참여한 지 반년이 흘렀습니다. 사측인 파인텍이 노동자들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75m 굴뚝 위에 올라갔다고 들었습니다. 파인텍에서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아, 여기 정말 문제가 많구나' 하고.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은 '법적인 것 이외에 문제가 많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고, 우리 인생 대부분이 법 이외의 것으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슬쩍 들여다보기만 했지, 파인텍과 노동자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속속들이 살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일상을 꾸려가는 동안 파인텍 고공농성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습니다. 저는 그것 말고도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요.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아, 여기 정말 문제가 많구나' 하고.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은 '법적인 것 이외에 문제가 많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고, 우리 인생 대부분이 법 이외의 것으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슬쩍 들여다보기만 했지, 파인텍과 노동자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속속들이 살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일상을 꾸려가는 동안 파인텍 고공농성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습니다. 저는 그것 말고도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들이 굴뚝에 올라가 있는 동안 제 주변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간밤에 열이 올라 콜록거리는 두 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전세가 오르는 것을 피해 이사해야 했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했고, 부모님의 칠순을 챙겨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문득문득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와 같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고민했습니다. 일상에 치어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로또 한 장을 사고 1등에 당첨되길 바라는 마음, 딱 그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펀딩을 해놓고, 파인텍 문제 해결이라는 '대박 로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한 달이 가고 반년이 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그들이 밥을 먹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러다 사람 죽는 거 아냐?'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일인가요? '약속'을 깨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하는 사회보다 서로 믿고 사는 사회가 덜 피곤하고 평화롭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파인텍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가 납니다.
그들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다 전세금을 내주지 않던 집주인이 떠올랐습니다. 집주인은 집을 리모델링하겠다며 세입자인 저에게 이사를 요구했습니다. 이사가 결정되면, 바로 전세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요구로 이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사비용도 전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 '약속'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저는 애가 탔습니다. 그러더니, 집주인은 이사비용을 주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사 갈 집의 계약금을 날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가족의 전 재산인 전세금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이러다 사람을 해코지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집주인은 저와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마음대로 바꿔도 집주인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란, 없습니다. 집주인이 갑이자,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파인텍의 노사관계에 있어서 사측은 항상 강자였던 것 아닐까요? 강자인 사측에게 '약속 이행'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도 되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약속'을 깨면 안 된다는 원칙을 상기시켜줘야 합니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측과 노동자의 관계라는 것을 말해줘야 합니다.
제가 살고 싶은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제 아이에게 '강해져라, 그러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굴뚝의 그들에게 힘을 싣습니다. 여전히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한없이 빚지는 마음이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힘을 싣습니다.
혹시 모르지요. 이러다 도저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걸고 싸울지도….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인 파인텍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오는 12월 24일이 되면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이 이 기록이 경신하게 됩니다. 그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시민들이 릴레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 파인텍하루조합원 4080인 선언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너무나 참혹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인권 전체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장기 굴뚝 고공농성 408일의 기록이 그 당사자들에 의해 갱신되는 노여움 앞에 우리 모두가 치를 떨고 있습니다. 두 번씩이나 정상적인 고용에 대한 약속을 어겨 온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결단해야 합니다.
두 번의 408일을 맞지 않겠다는 결의로 12월 10일 차광호 지회장이, 12월 18일에는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등 제사회단체 대표자 4인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5명 조합원, 파인텍하루조합원들만이 아닌 한국 시민사회가 전체가 껴안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함께 땅을 밟고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파인텍하루조합원 여러분의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 파인텍하루조합원 한끼 단식 함께해요! 클릭!!!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