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씨의 유가족들을 비롯한 시민대책위원회는 24일 국회를 직접 방문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일일이 의원들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며 "잘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 씨가 국회를 직접 찾은 이유는 이날도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김 씨는 여야 4당을 일일이 방문해 "다른 아이들은 살려야 한다"고 반복해 호소했다.
"다른 아이들은 살려야 합니다" 고 김용균 어머니의 호소
임이자 "어머니 마음 잘 새겨듣겠다" 김동철 "민노총 말, 다 맞지 않아"
임이자 "어머니 마음 잘 새겨듣겠다" 김동철 "민노총 말, 다 맞지 않아"
김 씨를 비롯한 시민대책위는 이날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고용노동소위원장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이날 임 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여야가 합의를 해야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27일 본회의에 개정안이 상정될 수 있기 때문에, 회의 시작 전에 임 위원장을 만나 법안 통과를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김 씨는 임 위원장의 손을 잡으며 "이번에 용균이가 속해있는 법이 제대로 만들어져서 통과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남아있는 용균이 또래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의 곁에 앉아 있던 이태의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사람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냐"라며 "오늘 안 되면 올해 (산안법 개정안 통과가)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불안해했다.
그러자, 임 위원장은 "오늘 해결 안 된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급성이 있기 때문에 3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간사들이 합의해서 이 법을 올려서 심사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임 위원장은 "법을 심사하다 보면 법률상 '명확성,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는 부분이 있다"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말씀한 부분들이 법안에 녹여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이 법을 심사하는 동안 어머니 마음을 잘 새겨듣고,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유족의 말을 듣고, 답하는 내내 연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정작 유족들의 탄식은 환노위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김 의원이 환노위 소위원회 회의를 위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족들과 시민대책위는 위원장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김 의원이 도착하고, 짧은 만남이 이뤄졌다.
김 씨는 "(아들의 빈소에) 오셔서 했던 약속을 꼭 지켜달라"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물론이다"라면서도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민노총(민주노총)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뜸 말했다.
김 의원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유족들은 "저희는 민노총이 아니라, 유족이다"라고 항의했지만, 김 의원은 "원청의 책임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민노총의 입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싸늘하게 할 말만 하고 나가는 김 의원을 바라보며, 유족들은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깊은 한숨과 함께 억눌린듯 한 탄식이 이어졌다.
김동철 발언 이후, 손학규 면담에서도 이어진 신경전
채이배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과 보조 맞춰, 법 막는다는 오해 풀자"
채이배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과 보조 맞춰, 법 막는다는 오해 풀자"
김 의원의 발언 이후, 김 씨를 비롯한 시민대책위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의 면담 자리에서 억울함을 강하게 토로했다.
김 씨는 "저번에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빈소에 찾아와서 약속하지 않았는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김 씨의 곁에 있던 이들은 "김동철 의원, 채이배 의원"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이태의 공동집행위원장도 날을 세웠다. 이 위원장은 "유족들이 요구하는 내용은 단순하다. 다시 용균이처럼 죽음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저희는 어머니의 뜻만 받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동철 의원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이를 듣던 손 대표는 "민주노총은 '쇠 불도 단김에 빼라', '시간 끌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채 의원 말을 들으면 국회의 입법 과정이 간단하게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어 그는 "소위원회 입법 과정을 보면 전원 합의를 (해야 하고) 최소 1명에서 2명이 반대할 때 설득하는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이 당 차원에서 반대하면 입법이 현실상 가능하지 않다"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손 대표의 말을 듣는 어머니는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 면담에 함께 참석한 채 의원도 "정부안 내용이 방대해서, 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일단 급한 내용부터 처리하고 그 외의 다른 내용들은 2월 국회에서 처리하도록 앞장서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회 논의 과정에 있어서,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과 보조를 같이해서 위험의 외주화 법을 막고 있다는 데 오해를 풀어달라. 저희는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서둘러 채 의원이 언급한 '급한 내용'을 추려 제시했다.
박 대표는 "위험의 외주화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 시, 원청의 책임을 명시하는 것이 제일 (중요성이) 크다"라며 "영국의 경우는 90년대 말에 기업살인법을 제정했고, 산재 사망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라고 강조했다.
또 박 대표는 "특별히 위험한 작업은 하도급을 금지시켜야 위험의 외주화가 금지될 수 있다"라며 "이 핵심 두 가지라도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손 대표는 "김동철 의원과 어제 통화했을 때, '위험의 외주화는 본인의 오랜 정책이고, 제가 내놓은 입법이다', '정부 안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라며 "박 대표의 말대로 중대재해 원청 책임과 위험 업무의 하도급 금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하겠다"라고 밝혔다.
고 김용균 어머니 "다시 이런 일 안 생기도록 부탁한다"
이해찬 "죽음 헛되지 않도록 법 개정할 것" 김병준 "원청 책임 강화는 다른당과 입장 같다"
이해찬 "죽음 헛되지 않도록 법 개정할 것" 김병준 "원청 책임 강화는 다른당과 입장 같다"
김 씨를 비롯한 시민대책위는 이날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도 면담했다. 민주당은 최고위원들이 대거 참여해 간담회를 연 반면, 자유한국당은 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만 참석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를 마친 직후 이뤄진 간담회에서 "아드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며 "정부와도 협의했는데 26일에 다시 협의해서 가능한 한 빨리 법 개정을 통해 아드님의 뜻과 죽음의 의미가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민주당에 진상조사위가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박석운 대표는 "발전 5사에 대해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데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 상급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를 참여시키지 않고 노동부와 기업 노조만 참여시키는 상황"이라며 "시민들과 유족들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에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당도 총력을 다하고 있다"라며 "특별진상조사위원회는 피해자 측이 참여하도록 빠른 시일내에 특별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또 우 의원은 "지난 당정청협의에서 진전된 것도 있다"라며 "원청의 산재율보다 하청의 산재율이 높으면 공개하겠다.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는 시행령을 통해 하겠다. 하청의 산재가 원청으로 가도록 원하청을 통합 관리하겠다. 공기업 평가 시, 이윤을 얼마나 냈는가가 중심이었는데 산재도 평가 기준에 넣겠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을 듣던 이태의 공동집행위원장은 "대표님이 약속해주신 27일까지 최대한 하겠다는 말을 분향소에서만 지켜보기 힘들어서 올라왔다"라며 "오늘 어떤 결과가 나든지 지켜보겠다. 그래서 말씀한 내용들이 어디까지 지켜지고 있고, 누가 막고 있는지 어머니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신다"라고 강조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이날 유가족을 포함한 시민대책위를 만나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져야 한다고 보는 건 틀림없는 입장"이라면서도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놓고 국회 안에서 서로 입장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법을 전면 개정하자, 아니면 법 자체를 두고 그중에서 필요한 조항만 개정하자는 등 입장이 다른 게 있다"라면서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청 기업의 책임 강화하는 데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기본적으로 입장은 같이 가지 않나 싶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자유한국당을 향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산안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시민대책위를 만난 자리에서 "자유한국당의 의원이 '이 법이 통과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정말 정신을 한참 못차렸다. 대기업을 보호하다가 생떼같은 자식을 다 보내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법도 통과 못시키는 국회를 어떤 국민들이 인정하겠나"라며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런 식으로 어깃장을 놓고 법안 통과를 가로막는 일이 있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날 여야 4당 대표들을 만나 면담을 마친 김 씨를 비롯한 시민대책위는 국회에서 법안 심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끝까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고 김용균 씨의 유족들이 재발방지책으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한 산안법이 27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을지 여부는 이날 환노위 회의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환노위 고용노동소위는 오전에 여야 간사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오후 4시에 회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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