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치킨 시대’
50년대보다 5배 무게 ‘괴물’, 한해 658억 마리 도축해 화석 남기 쉬워
옥수수 주식, 연중 산란, 골다공증 등도 특징…인류세 지표 화석 가치
» 3주 된 육계. 수명의 절반을 살았다. 굵은 다리와 큰 가슴이 두드러진다. 게티이미지뱅크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접어들었다는 논의가 지질학자 사이에 활발하다. 인류가 지구환경을 전에 없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미래 문명이 퇴적층에서 인류세를 알아볼 ‘지표 화석’은 무얼까. 플라스틱, 콘크리트에 이어 닭 뼈가 유력한 후보라는 주장이 나왔다.
캐리스 베넷 영국 레이스터대 지질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13일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과학’ 논문에서 “육계가 인류가 생물권을 바꿔놓은 상징으로서 지표 화석이 될 만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닭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새를 합친 것보다 많이 살며 또 많이 죽어서 화석으로 남기 쉽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했다. 2016년 현재 세계에서 기르는 닭은 227억 마리이며, 일 년 동안 658억 마리를 도축했다. 닭의 수명이 육계는 5∼7주, 산란계는 1년이어서 기르는 마릿수보다 죽이는 마릿수가 많다.
게다가 요즘 닭은 야생닭인 동남아 정글의 적색야계는 물론 로마와 중세시대와도 크게 구별된다. 비슷한 나이의 육계와 적색야계의 다리뼈를 비교했더니 요즘 닭의 다리뼈가 길이는 2배, 넓이는 3배나 큰 ‘괴물’이었다.
» 5주 된 육계의 다리뼈(왼쪽)와 6주 된 야생 닭 품종인 적색야계 다리뼈의 비교. 런던자연사박물관, 베넷(2018)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이는 1950년대 이후 집중적인 육종으로 빨리 크게 자라는 품종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1957년 품종에 견줘 2005년의 육계는 무게가 4∼5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다리와 가슴이 비대하지만 심장과 뼈는 왜소해졌고, 너무 빨리 자라느라 뼈에 구멍이 많아 일찍 도축하지 않아도 오래 살지 못하는 이상한 동물로 바뀌었다. 육계의 도축 시기를 5주에서 9주로 늘렸더니 사망률이 7배로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자들은 급속한 성장에 따른 형태상의 특징과 뼈의 다공성,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고 연중 번식하도록 육종하면서 유전자가 바뀌어 현재의 닭을 과거의 닭과 쉽사리 구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닭을 포함한 조류는 뼈가 가볍고 쉽사리 청소동물의 먹이가 돼 화석으로 남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 육계는 워낙 뼈 배출량이 많은 데다 도축장이나 가정에서 버린 뼈가 대부분 묻히는 매립장의 산소가 부족해 잘 분해되지 않는다. 또 2008년 한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폐사한 닭 1000만 마리를 묻는 등 대규모 매립 사례도 잦아 후세에 화석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한꺼번에 수만 마리의 육계를 기르는 공장식 육계 사육장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1950년대 들어 육계의 생산이 플라스틱과 화석연료 사용과 발맞춰 많이 늘어난 것도 ‘인류세’의 특성을 가리키는 화석 지표로서 유리한 특성이라고 연구자들은 주장했다. “육계는 인류가 생물권을 늘어나는 소비패턴에 맞게 전환한 것을 생생하게 상징하며, 인류세의 지표종이 될 잠재력을 보여준다”라고 논문은 적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1만1200년 이후를 지질학계에서는 ‘홀로세’로 구분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생물 대멸종, 대량소비, 플라스틱 등 새로운 물질 배출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를 1950년대부터 설정하자는 논의가 지질학계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이를 결정할 국제층서위원회는 아직 이를 최종 채택하지 않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nnett CE et al. 2018, The broiler chicken as a signal of a human reconfigured biosphere. R. Soc. open sci. 5: 180325. http://dx.doi.org/10.1098/rsos.18032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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