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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8일 토요일

안희정 징역 4년 구형과 '꽃뱀'이라는 맥거핀




[도우리의 미러볼]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7.28 11:54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결심공판이 27일 열렸다. 다음 달이면 결심공판 중 피해자 김지은 씨와 피고인 안희정 씨의 최후 진술을 토대로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이번 선고는 ‘미투(#MeToo)’ 고발 중 최초의 법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재판의 핵심 쟁점인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지표 판례’가 될 중대한 사건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된 것은 ‘입증의 문제’ 때문이다. 김지은 씨 측이 고소한 위력의 성격은 폭행·협박과 같은 유형력의 행사보다, 도지사-수행비서 권력 관계에서 비롯한 무형력의 행사였다. 이 탓에 김지은 씨는 ‘성폭력 당시 위력이 가해졌다는 물적 증거를 보여라’는 추궁은 물론, ‘연인 관계였다’라거나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는 등 진실 공방을 가장한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27일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결심공판이 열리는 서울 서부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안희정 전 지사는 사건 당시 고소인 김지은 씨의 고용인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서, 김 씨에 대한 현저한 위계 격차가 있었던 것은 물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안 전 지사가 폭행과 협박을 굳이 쓰지 않고서도 단순한 성적 접촉이나 제안만으로도 김 씨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력에 의한 간음의 기준도 적극적 저항이 아닌 ‘자유의사의 제압 여부’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측은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었음을 입증하기보다, 연인 관계나 평소 행실을 운운하며 본질을 회피해 왔다. 입증 책임의 당사자가 안 전 지사가 아닌 김씨로 호도된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진실 공방이 아닌 ‘진실과 기만의 싸움’이었다.
이때 ‘꽃뱀’은 입증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기 위해 소환되는 개념이다. 합의한 성관계와 피해자의 비도덕성을 연출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정작 입증 책임의 당사자는 입증 부담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꽃뱀은 일종의 ‘맥거핀’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심각한 2차 가해를 감당하거나 침묵해야 했다. 그리고 ‘미투 운동’이나 ’00계 내 성폭력’ 고발 흐름은 더 이상 이러한 사회적 맥거핀이 먹히지 않음을 시사한다.
다시 한번, 위력에 의한 간음은 적극적 저항 여부가 아닌 ‘저항 의사의 제압 여부’가 물어져야 한다. 피해자의 위증보다 가해자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또 기계적 물적 증거보다 실체적인 맥락적 증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형의 위력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물리력보다 더 치명적인 데다 그 피해가 장기적일 수 있다. 이번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이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가능했다는 점은 오히려 무형의 위력의 세기를 방증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김지은 씨가 승리함으로써 권력형 성폭력 처벌에 대한 올바른 선례가 남겨져야 한다. 위력의 범위를 넓히고 합의에 대한 기준을 높임으로써 그동안 가시화되지 못했던 성폭력들을 구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판결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묵은 관점을 심판하는 일이다. 나아가 위력에 의한 간음은 ‘위력에 의한 폭력’의 한 종류로써 성폭력뿐 아니라 경제적, 신체적 착취 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라도 여성들이 ‘카산드라의 저주’로부터 풀려나야 한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중 트로이 마지막 왕의 딸로, 아폴론 신에게 예언력을 얻었지만 그의 구애를 거절한 대가로 예언의 설득력을 빼앗긴 인물이다. 그리고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카산드라의 충고를 무시한 트로이는 멸망했다. ‘미투 운동’과 ’00계 내 성폭력’ 고발 흐름은 ‘카산드라’들이 우리 사회를 향해 외치는 집단 충고다. 카산드라가 예언의 설득력을 빼앗긴 계기가 구애를 거절한 탓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신화의 실체적 진실은 그녀가 ‘꽃뱀’으로 몰렸던 것은 아닐까.
이번 판결에서 김지은 씨가 승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 트로이 목마라는 커다란 적폐를 방치하는 꼴이다. 우리가 김지은 씨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안희정 전 지사를 문책하는 여론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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