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노조 양보도 모자르다? “법정관리 협박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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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사태가 주범인 GM에 의해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베리 앵글 GM 해외사업부 사장이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임한택 지부장과 면담 중에 ‘부도’를 운운했다. 급기야 지난 13일엔 댄 암만 GM사장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산업은행과 한국지엠지부가 각각 GM과 4월20일까지 최종 합의를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는 최후통첩성 발언을 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댄 암만 사장의 발언에 대해 산업은행을 포함한 정부당국과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모두 열이 받았다. ‘X 싼 놈이 화낸다’고 한국GM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들이 부도를 협박하면서 ‘돈 내놔라’, ‘양보하라’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국민들 역시 분노하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 협박은 ‘벼랑 끝 전술’
사실 지금 상황에서 GM이 막상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왜냐면 실제 GM이 떠나버리면 뒤치다꺼리를 당사자인 한국GM 임직원들과 부품협력업체, 그리고 지역사회, 나아가 정부가 다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갈 것 같진 않다.
GM이 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철수했지만, 아직 한국GM에서 빼먹을 게 있고,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 막상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GM 역시 주도권을 한국 법원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4월20일 법정관리 신청 데드라인’ 발언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다.
GM과 산업은행의 극적 합의 가능성
현재 GM본사와 산업은행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댄 암만 사장의 ‘4월20일 데드라인’ 발언 이후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20일에 실사 중간보고서가 충실히 나온다면 4월27일 잠정적으로 지원을 약속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밝힌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채권자·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이란 3가지 원칙을 다시 확인하면서, GM이 법정관리 신청을 강행한다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즉 정부(산업은행과 산자부 등)는 이들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타협의 여지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20일을 전후해 GM과 산업은행 사이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할만한 결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남게 되는 건 노사간의 합의다.
일방적인 희생양이 돼 버린 한국GM
한국GM의 부실은 거의 전적으로 한국GM을 희생양 삼은 글로벌GM의 정책적 결정 탓이다. 매출을 늘리기는커녕 4분의 1을 싹둑 잘라버렸고, 이익은 연구개발비, 업무지원비, 로열티, 이자 등등으로 다 빼가고, 신차 배정도 하지 않는데 무슨 재주로 흑자 운영할 수 있겠는가? 팔 다리 다 잘라 놓고 걷지 못하고 뛰지 못한다고 타박하는 꼴이다.
가장 크게는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매년 평균적으로 6000억 원씩 빼갔고, 여기에 업무지원비 명목으로 평균 400억 원, 연리 5.3%의 고리로 이자만 평균 1200억 원씩 가져갔다. 일반적으로 자동차회사에서 연구개발비야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지만 한국GM의 경우 지적재산권은 전부 GM에게 귀속됨으로써 우리가 분담하는 연구개발비는 무형자산으로 남지 못하고 비용으로 처리돼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GM은 매년 평균 9350억 원 정도를 빼내갔다. 사실상 이렇게 과도하고 일방적인 부담이 없었다면 한국GM 매출이 2013년부터 급감했다 하더라도 손실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은행도 노조에 양보 강요할 자격 없다
사태 해결에 나선 산업은행의 3가지 원칙 중 첫 번째가 바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산업은행은 그동안 GM이 한국GM에게 빌려 준 27억 달러에 대해선 올드머니(old money. 이미 투자된 자금)로 규정하면서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액 출자전환과 차등감자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GM이 새롭게 투자하겠다는 신규 자금(new money) 28억 달러에 대해서는 17%에 해당하는 5000억 원만큼만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는 산업은행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도 17.2%의 지분을 가진 2대 대주주 아닌가 말이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GM의 약탈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한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무기력하게 거수기 노릇만 해왔던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노조가 양보한 각종 비용은 당연히 ‘뉴머니’다
노조는 현재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선제적으로 양보를 해왔다. 하지만 노조는 지금의 한국GM 부실사태에 어떤 책임도 없다. 고임금 때문에 회사가 부실해졌다고? 지나가는 뭐가 웃을 소리다. 제조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동종사보다 결코 높지 않다.
하지만 노조는 이미 현 사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임하며 매년 해오던 임금인상과 성과금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희망퇴직이란 이름 아래 진행되는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지도 않았다. 결국 26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희망퇴직을 통해 2500억 원, 지난 시기 평균 임금인상 총액 250억 원, 성과금 1500~2000억 원 등 매년 4250~475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것이다. 특히 평균 임금인상 총액과 성과금 총액 2000억 원은 회사 경영수지 측면에서 신규 투자와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당연히 뉴머니(New Money)인 것이다.
또다시 구조조정 당할 수밖에 없다
1~2년 후 부평에 있는 엔진공장 4분의 3과 부평2공장이 조만간 폐쇄되는 등 또다시 2~3000명이 구조조정 앞에 놓여있다.
GM이 정부에 제출한 ‘경영정상화 방안’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위한 투자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 ‘노(NO)답’이다. 28억 달러를 투자해(과연 이 모두가 온전한 투자비인지도 의심스럽다) SUV와 CUV를 각각 1종씩 개발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투자가 일어나는 시기에 고용은 현재 1만70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줄이며 생산량 역시 50만대에서 30만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2600명이 먼저 떠났으니 6000명 빼기 2600명, 즉 3400명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 내용을 담아 놓고도 신규 투자란다. 이러면서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특혜를 뻔뻔스럽게 요구하는 자들이 바로 GM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군산공장과 부평2공장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군산공장도 계획으로 예고했던 2022년이 아닌 올해 5월말로 폐쇄 당하듯이 부평2공장도 길어야 1~2년 뒤 폐쇄되고 말 것이다. 지금 생산하고 있는 아베오와 캡티바는 오는 7월말 생산이 종료된다. 그러면 말리부 1개 차종만 생산하게 되는데, 중형차의 속성상 수출은 많지 않고 내수 역시 신통치 않아 벌써 2-Shift에서 변형 1-Shift로 운영 중에 있다.
부평2공장, 미래발전 전망과 총고용보장 등이 마지노선이다
한국지엠지부 노조는 ‘군산공장 680여명의 총고용보장, 부평2공장에 전기차와 단종되는 캡티바 후속 차종 투입, 그리고 외주화 내지는 통폐합하려는 AS의 정상화’를 마지노선으로 11차에 걸친 집중교섭과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900여 명이 떠난 군산공장에는 아직 680여 조합원이 남아 있다. 노조는 이들의 총고용보장을 요구해 왔고, 회사는 부분적인 전환배치, 그리고 남는 인원에 대해 5년간의 무급휴직안을 제시했다. 노조가 받을 수 있는 안이 결코 아니다. AS부문과 부평, 창원, 보령 공장 등에서 희망퇴직으로 빠져나간 자리에 군산공장 680여 조합원들을 전원 전환배치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AS부문에 대한 외주화나 통폐합도 물 건너가는 것이다.
엔진공장 중 FAM-0 리모델링해서 CSS 엔진만 남기고, 나머지 GEN-3, S-200 엔진은 단종시키고, 부평2공장은 폐쇄해 사람 자르고…. 결국 2022년에는 부평1공장과 창원공장에 각각 1개 차종씩만 남기고 나머지 차종들은 수입해 수지를 맞추겠다는 게 GM의 계획이다. 이런 계획에 동의해 줄 노조가 어디 있으며, 이런 계획에 잘 한다고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을 지원해 줄 정신 나간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부평2공장에 신차를 투입해야 한다. 노조는 한국GM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전기차 Bolt EV를 포함해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SUV차종(캡티바 후속)을 투입하지 않으면 노사간 합의는 절대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GM, 협박 중단하고 발전전망과 고용·생존권 보장해야 한다
“이 따위로 할 바에야 GM은 떠나라!”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한국지엠에 빨대를 꽂아 이익을 빼가질 않나,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특혜를 요구하지 않나. 뻔뻔한 자들에게 무슨 미련이 있을까?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GM(당시 GM대우) 사장을 지낸 닉 라일리 전 사장도 “한국GM이 적자를 낸 것은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판매를 접기로 했기 때문이지 한국GM 탓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GM은 법정관리 신청을 무기로 정부와 노조에 대한 협박을 즉각 중단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남아 있는 군산공장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부평2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시해 노사 합의를 조속히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성재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조합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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