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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등록 :2018-04-26 19:46수정 :2018-04-27 01:08


문 대통령도 흥남철수 피란민 출신
2004년 어머니·이모 상봉 직접 지켜봐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김치 넘버 1’ 손양영씨
5살 딸·9살 아들 두고 배에 오른 부모
그 이름 부르고 또 부르다 세상 떠나
“북한의 형·누나 만나 한 풀었으면”
‘김치 넘버 5’ 이경필씨
아버지 전쟁없이 살고 싶단 말씀에
가축병원 문 열며 ‘평화가축병원’ 간판
“부모 고향에 갈 날 하루빨리 오기를”
“죽기 전에 함경도에 있는 부모님 고향 땅을 밟고 북한에 남겨진 형 누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북한과 왕래하며 사는 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모두의 소망일 겁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25일, 성탄절을 맞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에는 이틀 전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미국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통이었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배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배에서 첫 번째, 다섯 번째로 태어난 실향민 손양영(68)·이경필(68)씨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이들이 태어난 빅토리호를 함께 타고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가 여동생을 만나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다섯 아기 중 첫 번째로 태어나 ‘김치 넘버 원’으로 불린 손씨도 “북한에 두고 온 형과 누나를 꼭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을 풀고 싶다”고 소망했다. 흥남철수 당시 손씨의 부모에게는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이 있었다. 손씨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손씨의 형과 누나에게 “큰삼촌과 며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빅토리호에 올랐다. 금방 전쟁이 끝나 자녀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손씨의 부모는 60년 동안 북에 두고 온 자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웠던 손씨의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영옥아’라고 하셨어요. 북한에 두고 온 누나 이름이 손영옥입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는 제 아내한테 ‘영옥아, 영옥아’ 하셨고요.”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손씨의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어머니는 ‘곧 고향에 가서 자식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어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네요.”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던 손씨는 ‘평화’를 구체적인 공기로 느꼈다고 한다. “김여정과 김영남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했어요. ‘곧 형과 누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빅토리호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치 넘버 파이브’ 이씨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온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고 했다. 이제 ‘수의사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씨는 1975년 처음 문을 연 동물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동물병원 이름에 ‘평화’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도 자영업을 했는데 ‘평화사진관’, ‘평화상회’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그의 아버지는 10여년 전 세상을 뜨면서 “묘비에 함경남도 흥남시 고향 주소를 적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후손 중 누군가가 대신 고향 땅을 밟아줬으면 하고 바라셨어요. 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온화한 그의 말투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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