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빈 상자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 서울 마포구의 한 재활용센터에 들어서는 장면. 환경부는 폐비닐 등 수거 거부를 통보한 재활용업체들과 협의한 결과, 수도권 3개 시·도의 48개 업체 모두가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부에선 계속 분리수거하라는데 업체에선 안 가져가겠다니 그냥 당분간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리면 안 되겠습니까?”
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밀려드는 주민 항의 전화에 울상이었다. 2일 환경부와 서울시는 재활용 분리·수거 업체들과 협의해 폐비닐 분리수거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28~30일 4개 수거업체, 선별장 7곳,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25개 자치구 등과 간담회를 열어 “비닐류는 자원재활용법 제13조 및 환경부 지침에 의거, 재활용 가능 자원에 해당하므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도록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날도 많은 아파트 단지들에선 비닐 쓰레기를 재활용품으로 내놓는 것을 막고 있었다. 정책과 현실이 따로 놀면서 주민들의 혼란은 여전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꼽힌 재활용품을 아파트 단지와 수거업체들이 처리하는 방식에 변함이 없다면 ‘비닐 대란’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공덕동 450가구가 사는 한 아파트단지는 1년 동안 재활용업체에 폐지와 고철을 팔아서 번 돈이 5천만원을 넘었을 땐 집집마다 2만~3만원짜리 식용유 세트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재활용품 값이 급락하면서 몇년 전에 1가구당 1천원, 1년에 단지 전체에서 4500만원을 수거업체로부터 받았던 계약을 올해는 1가구당 660원, 1년에 3600만원을 받는 것으로 변경했다.
2천가구가 사는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는 2015년엔 재활용품으로 1년에 3천만원을 벌었는데 올해는 1200만원을 받는다. 재활용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아파트 경비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 수집과 관리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은 재활용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경비원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해왔다. 그런데 재활용품 판매 수입이 줄면서 경비원들에게 주던 특별수당 7만원은 5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그보다 적어질 전망이다.
이 아파트 전 입주자 대표였던 심재철씨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지자체에서 재활용품을 모두 관리하고, 이익이 많이 나는 단지에만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가 돼야 한다. 재활용품 판매 대금으로 아파트 단지의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에서는 관리비나 경비원 임금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번 비닐 대란을 계기로 모든 재활용품 수거를 공공에 맡기는 단지는 자치구 수거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나 대부분 공동주택들은 폐지, 고철 등 값나가는 재활용품은 직접 팔고 비닐, 스티로폼은 자치구가 가져가기를 희망하고 있어 갈등의 여지는 그대로다. 다른 나라들은 공공이 재활용품을 직접 처리한다. 아파트 단지가 업체에 재활용품을 개별 판매하는 방식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재활용품을 이용하는 생산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지속 가능할지도 불투명하다. 환경부와 업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없다’는 근본 문제는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박필환 재활용수집선별협동조합 사무국장도 “당장 업체와 합의는 했지만 현실적인 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장기적으론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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