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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7일 월요일

조국 수석의 전화, 아내의 반대...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되다

 


[1530일, 이광철의 기록②] 문재인 정부 청와대 입성과 민정수석실 업무

25.03.18 06:52최종 업데이트 25.03.18 06:52
2017년 5월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 브리핑실에서 민정·홍보·인사 등 일부 수석비서관 인선발표에서 조국 민정수석(왼쪽)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오후 무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약식 취임식을 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박근혜 탄핵으로 엉망이 된 나라가 새 정부 출범으로 안정되고 반듯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만발하던 때였다.

내 휴대전화가 울렸고, 서울대 조국 교수의 전화번호가 창에 떴다. 민변 활동 중에 국가보안법 관련 글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번호였다. 그날 오전 그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지명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조국 수석은 생기넘치는 목소리로 내게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2012년에 이어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 법률지원단 활동을 했고, 누구보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염원했던 터라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조국 수석의 전화가 영광스러웠다. 바로 아내에게 상의했다.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축하를 예상했다. 하지만 아내는 강하게 반대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왜 그러냐고 했다. 아내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내가 보복받는다더라, 둘째 아이들도 무사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는다더라고 했다. 아내는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내가 문재인 후보 법률지원단 활동을 하니,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내가 청와대 가서 일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대선 이전부터 인터넷을 통하여 이것 저것 검색을 해 보았다고 했다. 2017년에 큰 아이가 만 10살, 작은 아이가 만 5살이었다.

예상 못한 아내의 반대 ... "차라리 이혼하고 가라"

나는 아내를 설득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의 한 가운데 민정수석실이 있었고, 우병우 등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보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런 폐단을 없애자고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문재인 정부는 결코 그런 보복받을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완강했다. 차라리 이혼하고 가라고 했다. 아내의 강력한 의사를 접하고 조국 수석에게 이를 알렸다.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일 것입니다. 나도 그때까지 일을 하고 학교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부인과 말씀 잘 나눠보세요."

다시 아내를 설득했다. 다음 날 아내는 침묵했고 나는 그 침묵을 묵시적 양해로 애써 생각했다. 나중에 아내의 반대 이유는 불행하게도 모두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처의 반대 이유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예언인 셈이다.

또한 기가 막힌 것이 그때 조국 수석과 나눈 전화 통화다.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조국 수석의 생각은 불행히도 이뤄지지 못하였다.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개혁 과제를 완성하라는 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장관직을 받아든 조국은 그 대가로 본인은 물론이고, 일가 가족들까지 풍비박산의 신세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직책을 받다

2017년 6월 청와대 앞길(춘추관~분수대)에서 바라본 청와대 본관의 모습권우성

조국 수석은 내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업무를 시작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변호사 사무실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약 열흘이 지난 5월 22일 월요일 청와대 여민2관 민정비서관실로 첫 출근을 했다. 5월의 찬란한 햇살이 막 동쪽으로부터 펴져나가던 그 아침에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앞을 지나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나의 직책이었다. 고위공무원단 나급 직급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다음날 바로 임기를 개시하느라, 인수위 없이 바로 국정 운영에 착수했고, 그래서 일을 할 진용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청와대의 경우 이른바 늘공(청와대나 안보실의 일반직 공무원, 부처 파견 공직자 등)과 어공(정무직 내지 별정직 공무원)으로 이뤄져 있는데, 늘공의 경우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파견나와 있던 공무원들이 아직 부처에 복귀하지 못한 채 뒤숭숭한 분위기로 책상에 앉아 있었고, 어공들의 경우 나처럼 대통령 취임 이후 비로소 임명장을 받고 일하기 시작하는지라 인선에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도 검증에 시간이 소요되어 일을 하면서도 한동안 공직자 신분을 갖지 못하여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많았다.

당시 나도 검증이 완료되어 발령을 받은 2017년 7월 4일 이전에는 공직자 신분을 취득하지 못하여 급여를 받지 못한 채 일을 하였다(실 출근일당 하루 소정의 자문료를 지급받았다). 그래서 민정수석실이 전체 진용을 갖추고 비로소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그 해 8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까지 임기 도중 탄핵 소추된 예에 비추어 보궐선거 성격의 대선이 앞으로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개헌 사항일지, 아니면 국회 입법으로도 가능할지는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조기 대선으로 대통령이 취임하는 경우 취임일까지 다만 며칠이라도 시간을 할애하여 늘공과 어공 공직자 인선 등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게 하고 임기를 개시하는 것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본다. 그 사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더 직무를 수행한다고 하여도 큰 장애는 없지 않나 싶다.

조국, 백원우, 그리고 나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2017년 6월 8일 오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은 네 개의 비서관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임비서관실인 민정비서관실을 필두로 하여 고위공직자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실, 공직기강 점검과 인사검증업무를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대통령비서실의 법률 검토를 담당하는 법무비서관실 등이다.

이 중 민정비서관실은 크게 기본 임무인 민심 청취와 친인척 관리업무, 국정과제 중 적폐청산 과제 업무(국정과제 1번)와 권력기관개혁 과제 업무(국정과제 13번)가 주된 업무였다. 나는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위 4가지 중 친인척관리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업무를 총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후일 내가 맡았던 세 가지 업무 모두 윤석열의 검찰에게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검찰개혁 추진은 말할 것도 없고, 적폐청산은 나중에 청와대 기획사정으로 이름붙여져서 나와 이규원 검사가 수사 대상에 올라 이 검사가 기소되었다(지난 2월 26일 1심 법원이 공소사실 대부분을 무죄로 판결하였다). 민심 청취 건은 나중에 울산 사건으로 비화되어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이 기소되고, 조국 당시 수석과 나 역시 지금도 피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지난 2월 4일 울산 사건 전부에 대하여 2심 법원이 무죄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국, 백원우 그리고 나는 문재인 정부가 시작하면서부터 칼날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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