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과 국정원장의 12.4 미국 출장
국정원장의 12.4 미국행 티켓예약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
12.3 내란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에 있어 조태용 국정원장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의 또 다른 열쇠(Key)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조 원장은 비상계엄세력에 적극 가담한 것 같지도 않고, 둘째, 병력동원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셋째, 사전 모의에서 (부분적으로 동의한 흔적은 있지만) 적극 동조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조태용 국정원장은 그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에 대한 속시원한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한 번 물어보자. 국정원의 적극적인 도움과 협조없이 비상계엄 실행이 가능할까? 국가정보원은 과거의 안전기획부다. 그 이전에는 중앙정보부였고. 가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정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꿰뚫어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거다. 국정원의 적극적인 개입 정황이 잡히지 않는다. 국정원장이 계엄 당일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가긴 했지만, 개별 지시를 받은 것도 없고 계엄 지시 문건도 없다.(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받은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은 있지만 구체적 지시내용도 없다. 게다가 국정원 2인자인 1차장이 내부자 폭로를 해버렸다.
국회측 변호인(왼쪽)과 조태용 국정원장 @MBC 뉴스 갈무리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변호인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 변론을 갖기로 결정하고,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다시 증인으로 소환하였다. 홍 전 차장은 헌재 증인석에 두 번 서는 유일한 증인이 되었다. 서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이루고 있기에 국정원 1인자와 2인자의 증언이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뼈속까지 외교관, 조태용 국정원장
조태용 국정원장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정치학 전공, 1980년 외무고시 합격 후 본격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이후 주미대사관 1등서기관, 외무부 북미2과장, 북미1과장, 북미국장, 외교통상부 제1차관 의전장 등 핵심 요직을 거친 '미국통'이다.
조태용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2005년 북핵 6자회담 차석대표로 참여하며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11년 주호주 대사,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3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이후 외교부 제1차관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 등을 역임했다. 21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뱃지를 달면서 정치권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6월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비례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2023년 3월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돼 명실공히 윤 정부의 외교·안보·대미·북핵 사령탑이 된다. 2024년 1월 공석중이던 국가정보원장에 올라 현재에 이른다.
블랙요원 출신 정보통, 홍장원 1차장
조 원장이 외교통인 반면, 홍장원 1차장은 골수 정보통이다. 1987년 육사 졸업, 소위 임관 후 중위 진급과 동시에 특전사 707특임단에 선발되어 중대장을 맡았고 대위 전역 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특채된다. 육사 대표화랑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내에서 가장 험하고 기피 대상인 대북공작국에 지원했고, 이후 수십년 간 ‘블랙요원’으로 요원 경력을 쌓았다.
안기부 및 국정원 재직시 주 영국 대사관 정무공사, 국정원 비서실장, 대북특보 등을 지냈고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영국 런던대 대학원 전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윤 정부 출범 후 2023년 국정원장과 1차장이 동시에 경질되자 후임 1차장으로 임명되었고, 2024년 1월 조태용 국정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국정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국정원 역대 원장들이 모두 홍장원을 중용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책임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차장의 부친은 황해도에서 월남해 6.25전쟁에 해군제독으로, 어머니는 간호장교로 참전한 분들이다. 그는 지난 1월 22일 국회 내란국조특위에 출석해 계엄 당일 윤 대통령 측이 시도한 작업들은 북한(평양)에서나 실제 벌어지는 일이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진실게임 : 조태용 국정원장 vs 홍장원 1차장
(1) 홍장원 1차장의 주장(폭로)
2024년 12월 6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 53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전화를 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홍 전 차장은 곧 육사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으로부터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니, 여인형 사령관이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었다고 폭로했다.
(2) 윤석열 피청구인 및 조태용 국정원장의 주장
● 피청구인의 주장 : “그런 말 한 사실 없고, 격려 전화를 한 것”
● 국정원장의 주장 : “홍장원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
(3) 쟁점
홍장원 1차장의 폭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홍 차장에게 전화를 한 것은 조태용 국정원장이 해외에 있는 줄 알고 한 것이고, 별 특별한 내용없는 격려전화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쟁점이다.
조태용 국정원장과 홍장원 전 1차장의 대립 @연합뉴스 갈무리
2024. 12. 3. 사건의 재구성
(1) 20:00 - 윤 대통령,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전화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심판에서 홍장원 차장에게는 격려만 했다며, 홍 차장의 발언내용을 부정한 것에 대해 국회쪽 변호인단은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집요하게 심문했다.
[청구인측 변호인] 증인(조태용 국정원장)의 경찰 조서를 보면 증인은 20:00 대통령으로부터 보안폰으로 전화를 받습니다. (윤)어디세요? (조)여기 있습니다. (윤)미국안가셨어요? (조)내일 떠납니다. 방금 미국대사와 송별만찬을 했습니다. (윤)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요, 피청구인(윤대통령)은 20:00경에 증인과 통화를 하고도 증인이 해외에 있는 줄 알고 홍장원 차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증인의 진술과 다릅니다. 증인과 피청구인 중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조태용 국정원장] 제가 “여깁니다”라고 대답을 해서 저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라고 대답을 한 건데 대통령께서는 미국으로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본인의 조서를 한 번 보세요. (조: 보고 있습니다.) (조)공관에 있습니다. 미국 대사 송별만찬을 했습니다. (윤)미국 안가셨어요? (조)내일갑니다. 이런 문답이 있었다는데 이걸 잘못 알아들을 여지가 있습니까? [조원장] 경찰조사와 검찰조사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아까 보여주셨던 걸 보면 제가 여깁니다라고 답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변호인] 네, 검찰조서도 한 번 보시죠. 경찰 조사받은 날과 검찰 조사받은 날이 하루차이였죠? (조: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대답할 여지가 있습니까? [조원장] 저는 대통령께서 잘못 생각한다고 생각을 못하니까. ‘여깁니다’라고 대답하는 거나, ‘공관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거나 똑같죠.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변호인] 자, 검찰조서에도 증인이 20:00경에 만찬자리가 끝나고 전화를 받았고 “공관에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대통령이 “미국 안가셨어요?”라고 질문을 했고, “제가 내일 갑니다.”라고 문답을 하셨다고 진술을 하셨습니다. 경찰 진술과 검찰 진술이 동일합니다. [조원장]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린 걸로 기억합니다. 들은대로 설명 한거고요. 근데 인제 그날은 경황이 없는 날들 아니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 여기다. 그냥 미국이라고 생각하시면 뒷부분은 깊게 안들으실 수도 있다. 그렇게.. 제 생각입니다. [변호인] 5분 뒤에 강의구 부속실장이 전화가 오죠. (조: 네)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조: 네) 근데, 대통령이 5분 전에는 증인이 미국에 있는 줄 알고 전화를 끊었다면, 5분 뒤에 강의구 부속실장이 들어오라고 전화를 한 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죠? [조원장] 대통령께서 장관들 모두 직접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그런데 저한테는 통화를 하셨는데 들어오라고 말씀을 안하셨어요. 그러고 부속실장이 전화를 한 걸 보니까 조금 갭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왜그런가 하면 국정원장은 해외를 갔다온 다음에도 보안을 지켜서 비밀로 남습니다. 제가 대통령님 외에는 누구한테도 미국으로 출장간다고 보고드린 바가 없습니다. [변호인] 갭이라는게 그러면.. (조: 부속실장이 잘못 알았을 수도 있죠) 잘못한 것이 아니고 제대로 안거죠. 증인이 국내에 있는 줄 알고 전화를 했고, (조: 제 말꼬리 잡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뇨아뇨, 대통령은 지금 증인이 국내에 없는 줄 알고 전화를 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원장] 저는 제 기억대로 ‘여깁니다’ 설명하고 미국 내일간다고 말씀드렸고, 대통령께서 장관들을 다 불러들이시는데 (저한테는) 바로 들어오라고 말씀안하셨거든요. 부속실에서 연락이 와서 들어와서 보니... 저로선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만은... [변호사] 네, 알겠습니다. |
(2) 20:50 - 조태용 국정원장 대통령실에 도착
윤 대통령이 계엄전에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계엄과 관련하여 지침이나 지시를 내린 것이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윤 대통령은 다 얘기했다고 하고 조 원장은 들은 것이 없다고 한다.
[청구인측 변호인] 20시50분경에 대통령실에 도착하셨죠. (조: 네) 21:00경에 조태열 외교부장관과 들어가셨을 때 한덕수 국무총리, 김용현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 행안부장관, 통일부장관이 원탁형태의 탁자에 앉아 있었죠. (조: 그렇습니다.) A4용지 못봤고, 비상계엄문건 못봤고, 개별지시메모도 없었고, 김용현이 나눠주는 것도 못봤고... 그런데 피청구인(윤석열)은 2월4일 심판정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원장인 증인에게 계엄사무에 관해 다 얘기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증인은 피청구인으로부터 계엄사무에 대해서 아무 설명을 못들었다고 하는데 이건 또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조태용 국정원장] 그래서 제가 아까 설명드린 것처럼 계엄발표를 하고 다시 돌아오셔서 저까지 포함해서 국무위원들 계셨는데 그때 각 부처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자 그정도 취지의 말씀이 있었고 어느 부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언론에서 봤습니다만, 저는 그게 없었습니다. [변호인] 여기 위딩 그대로 함 보시죠. 이미 관련된 문제는 원장하고 다 얘기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조원장] 그날 밤 1:1로 대통령님과 얘기한 게 없습니다. |
(3) 22:53 – 윤 대통령이 홍장원 1차장에게 전화
윤 대통령은 22:53 홍장원 1차장에게 전화를 한다. 정형두 재판관은 “통화시간이 1분 24초였다. 꽤 긴 시간”이라고 했다. 윤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 홍 차장의 주장이다.
[홍장원 1차장] 윤석열 대통령은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 봤지?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고 지시했고 이에 육사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으로부터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니 여인형 사령관이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었다 |
(4) 22:55 – 윤 대통령이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전화
조 국정원장은 22:45경 대통령실을 나와 국정원으로 가는 중 22:55경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다.
정형두 재판관은 조 원장에게 물었다. 윤 대통령이 홍장원 1차장과 1분 24초 통화를 하고 난 직후 바로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했다며 “그 갭이 30초 밖에 안된다”고 지적하자 조 원장은 “통화시간은 짧았다”고 답변한다.
[조 국정원장] 통화기록은 22:55~22:57이라고 저도 봤는데 통화는 30초가 안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짧았습니다. 사실은.. [정형두 재판관] 제 말은 뭐냐면, 대통령이 홍장원 차장한테 굉장히 많은 지시를 했는데 그러구 나서 바로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해가지고서는 참 한가한 얘기를 한 거예요. 미국 출장 어떻게 하실래요? 그게 좀 이해가 가지 않거든요? [조 원장] 그래서 저는 대통령께서 53분에 홍차장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에 대해 확신이 안갑니다. |
불과 2분 간격으로 윤 대통령은 홍장원 1차장과 조태용 국정원장 두 사람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조태용 원장은 미국 출장 외에 아무런 얘기를 나눈 사실이 없다고 하고, 홍장원 1차장이 밝힌 대화의 내용은 윤 대통령이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기가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이 지점에서 유추해 볼 때, 홍장원 차장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조 원장 역시 대화의 상당 부분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살펴 보자.
(5) 23:30 – 국정원 : 국정원장, 1·2·3차장, 기조실장 회의
조태용 국정원장이 국정원으로 돌아온 후 정무직 회의를 연다. 이때 홍장원 1차장은 조 원장에게 “원장님은 비상계엄 언제 아셨냐?”고 묻자, 조 원장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고 답한다.
[변호인] 그날 밤 23:30 증인은 1, 2, 3차장, 기조실장 등 정무직들과 함께 비상계엄에 관한 긴급회의를 약 10분~15분 정도 하셨죠? (조: 네.) 2차장은 계엄이 선포되면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지고 국정원이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말도 하셨죠? (조: 네.) 증인은 합동수사본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군가를 조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셨죠? [조원장] 전 국민이 계엄이 되면 방첩사에서 합동수사본부가 생기고 모든 정보기관이 협조해야 한다는 것은 알 거 같구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정무직 회의할 때 홍장원 1차장이 증인에게 “원장님, 이거 언제 아셨나요?”라고 물었고 증인은 “뭘 그런 걸 물어봐요”라고 대답했다고 진술하셨죠? (조: 네, 맞습니다.) 만약 증인이 비상계엄을 사전에 몰랐다면 “저는 몰랐습니다. 비상계엄 직전에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텐데 언제 알았는지 대답하지 않고 물어보지 말라는 식으로 대답한 이유가 뭔가요? [조원장] 차장이, 제 하급잔데 하급자가 첫 마디로 이거 언제 알았냐고 물어보는게 제가 보기에 썩 적절치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변호인] 증인은 다른 정무직 분들에게 대통령실에 갔다는 말씀도 안하셨죠 (조: 네, 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안하고 숨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조원장] 숨긴 건 아니고 경황이 없어서 얘길 못했는데, 금방 제가 갔다는게 나왔기 때문에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숨길 의도는 없었습니다. 얘기 안한 거는 맞습니다. ( 국정원장과 1.2.3차장, 기조실장 모두 TV로 국회 의결을 모니터링 ) |
조태용 국정원장은 거짓말을 하는데 그리 능숙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몰랐다”고 딱 잡아뗐다면 거짓말일 텐데,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말에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태용 국정원장은 청구인측 변호인이 비상계엄 사실을 언제 처음 알았느냐고 질문했을 때, “대통령실에 도착해서 대통령님하고 다른 분들 계실 때 처음 알았다”고 답변했는데, 이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조 원장은 2024년 3월 안가 회동에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 정무직 회의 마친 후 – 홍장원 1차장이 국정원장과 독대
정무직 회의를 마친 후 홍장원 1차장이 국정원장실로 가서 조 원장과 독대를 한다. 홍 차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첩사 도와주라고 하더라. 정무직 회의 때 원장님 안색을 살펴봤는데 원장님 생각이 많으신 것 같다. 오늘 밤부터 방첩사가 이재명 한동훈을 잡으러 다닐 것 같다.”라고 하니 조 원장은 “내일 아침 이야기 하시죠.”라고 답변한다.
[조원장] 홍장원 차장이 독대를 하자고 왔을 때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 보고를 하려면.. 대통령 전화가 왔다. 방첩사 도우라고 하더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야 한다... 그리고 방첩사를 도우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많이 듣던 얘기다.. (중략 : 방첩사 관련 얘기들..)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홍장원 1차장이 국정원장실로 가서 독대를 한 것은 불과 1시간 전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로 받은 지시와 관련하여 국정원장과 의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홍 차장은 그 사실을 23:30 정무직 회의에서는 오픈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정원장과의 독대에서 처음 얘기를 꺼낸 것이다.
한편으로 홍장원 1차장은 만약 자신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지시사항과 같은 내용을 국정원장도 지시를 받았다면 정무직 회의 때 국정원장이 지침을 내리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그에 대해 아무 말도 없으니 그 부분을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가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장의 반응은 전혀 달랐고,“내일 아침에 이야기 하시죠”였다.
국정원장의 헌재 증언을 보면, “방첩사를 도우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많이 듣던 얘기”라면서 그 부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 그런데 그 얘기는 너무 일상적인, 말하자면 평화롭던 시절의 얘기여서 비상계엄이 터진 상황과는 괴리감이 큰 얘기다. 그 말은, 국정원장이 엉뚱한 증언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며, 대통령의 지시내용을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12.3 비상계엄 당일 국정원을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의 재구성이다. 그러면 그 외 분석을 도와주는 정황을 살펴본다.
(7) 2024년 3월말 – 안가 회동 : 신원식 국방장관 경질의 단초
2024년 3월 말 안가회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날 회동의 정황이 비상계엄 전체의 모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원식 안보실장(전 국방장관)의 헌재 증언은 다음과 같다.
정형두 헌법재판관(왼쪽)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전 국방부장관)
[정형두 헌재 재판관] 2024년 3월 말, 대통령 안가 만찬 모임이 열렸죠? 누구누구 참석했나요? [신원식] 윤 대통령과 김용현 경호처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조태용 국정원장과 제가(신원식 국방장관) 참석했습니다. [재판관] 삼청동 안가인가요? [신원식] 청와대 근처인데, 그때 처음 가봤습니다. [재판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한 조치에 대해 언급을 했죠? [신원식] 네 [재판관] 그거에 대해서 증인은 반대하셨다고 했죠? [신원식] 네, 저를 보고 그렇게 하신 것 같아서 저는 군을 책임진 국방부장관으로서 그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재판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김용현, 조태용, 여인형은 그 말을 듣고 다른 얘기 안했나요? [신원식] 네, 그때 저와 국정원장의 다른 의견표명 외에 대통령께서 다른 주제로 전환을 하셨습니다. 그 외 두 분은 말씀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판관] 조태용 국정원장은 찬성했나요, 반대했나요? [신원식] 조태용 국정원장은 다른 의견을 냈던 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만찬 이후 신원식, 김용현, 여인형 세 사람은 국방장관 공간으로 간다. 신원식이 “가는 길이니까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하신 말씀이 화제에 올랐고 신원식은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은 아무리 술자리라도 사람들에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다”라고 두 사람에게 당부를 했다고 한다.
[재판관] “증인이 대통령께서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야 된다. 나는 국방부장관으로서 절대 반대한다. 반드시 내 뜻을 전해 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까? [신원식] 네, 그 조치를 저를 보고 하셨는데, 사실은 제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그런 생각을 아예 안하실라고 그러면 제 입장이 중요하겠다라는 생각하에서 조금 예의에 벗어나지만 제가 경호처장한테 제 뜻을 대통령님께 전해달라고 얘기했습니다. |
신원식 안보실장(前 국방장관)의 헌재 증언은 매우 중요한 많은 사실들을 담고 있다.
첫째, 비상계엄 최초 담합자는 윤석열+김용현+여인형 3인방이며 2024년 3월말 삼청동 안가 회동은 신원식이 그날 처음으로 안가회동에 참석했다. 이런 사실로 비춰볼 때 삼청동 안가 회동은 신원식 국방장관과 조태용 국정원장을 설득하여 비상계엄 동참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모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원식과 조태용이 동의하지 않았다.
둘째, 안가만찬 후 신원식 국방장관을 따라 김용현과 여인형이 국방장관 공관으로 따라갔던 것은 국방장관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비상계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김용현과 여인형이 (윤석열의 암묵적 지시 하에) 신원식을 재차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의하면 같이 가고 반대하면 경질해야 한다.)
셋째, 조태용 국정원장이 안가 회동 후 3인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조 원장이 국정원장이 된지 불과 2달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여서 사실상 국정원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이기도 하고, 국정원장의 경우 매주 대통령 정보보고가 있기 때문에 설득이나 회유는 윤 대통령에게 맡겨놨을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3월 안가 회동 후 6개월 뒤인 2024. 8. 13일자로 신원식 국방장관은 경질되어 국가안보실장 자리로 옮기고, 김용현 경호처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쳐 9월 6일 국방부장관이 된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자신이 경질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함께,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비상계엄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원식을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면서도 그를 안보실장 자리에 묶어 둠으로써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려 했음을 엿볼 수 있다.
(8) 국정원장 정례보고 - 조태용 국정원장의 대통령 정보보고
[변호인] 증인은 주1회 피청구인에게 정보보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보통 몇 분정도 보고를 하셨습니까? [조원장]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만, 아주 간단히 할 때는 2,30분만에 끝나는 경우도 있으나 한 시간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
국정원장이 주1회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하면서 20분~1시간 정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자주 많은 대화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의 성격상 조태용 원장에 대해 매우 집요하게 설득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의 상항이 어떻고, 야당이 어떻고, 반국가세력이 어떻고, 북한에서 날아오는 풍선이 어떻고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설교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태용 원장이 선뜻 동의하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을 거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뼈속부터 외교관이다. 외교라인의 대부 반기문의 별명은 ‘기름장어’다. 장어만 해도 미끄러워 손에 잘 잡히지 않는데, 기름까지 발랐으니 말해 무엇하랴. 조 원장은 국정원의 정치중립 의무, 국제외교관계, 무엇보다 대미외교통으로서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 등등을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 성질 돋구지 않으면서 강력한 거부가 아닌 차분하고도 완곡하게 동의하기 어려움을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2024. 12. 4 - 조태용 국정원장의 미국 출장 계획
오늘 글의 핵심부분이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12. 4 미국으로 출장 갈 계획이었다. 무슨 출장이었을까? 국장원장의 미국 출장계획이 12.3 비상계엄일 다음 날로 잡혀 있었다?
국정원은 엄연히 중대 권력기관이고, 비상계엄은 국가중대사다. 비상계엄이 하루아침에 기분에 따라 뚝딱 던질 수 있는 카드가 아닌 이상, 비상계엄 예정일은 사전에 확정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비상계엄 다음 날 국정원장이 미국출장을 계획해 놓았다? 이해가 되나?
일단, 날짜관계는 잠깐 미루고, 비상계엄과 국정원장의 역할만 놓고 생각해 보자. 국정원의 협조를 전폭적으로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계엄세력이 국정원을 계엄핵심세력에서 조금 비켜두되 소극적 역할로 묶어두려 했을 가능성, 즉 국정원장은 계엄세력이 권력장악에 성공한다면 미국을 설득할 목적으로 미국에 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계엄세력은 사전에 미국과 교신도 없었고 통보도 없이 감행을 계획했기에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할 수단이 필요했을 터다. 그렇다면 정통외교관료로 미국통이고 윤 정부 출범 후 초대 미국대사와 안보실장, 국정원장을 두루 맡았던 조태용 국정원장이 가장 적임자였을 터다. 조태용 국정원장 또한 계엄세력에 적극 가담하긴 부담스럽지만, 사후 수습의 역할마저 마다하긴 어려웠을 터이니 말이다.
만약 그러한 추론이 가능하다면, 국정원장은 비상계엄일 전에 미국에 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출장일이 12월 4일이었다면 비상계엄 예정일은 12월4일 혹은 그 이후에 계획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스케줄을 바꿀 겨를도 없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그것은 비상계엄 실행일이 12월 3일로 갑작스럽게 당겨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대두된 주술적인 택일이었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000일이 되는 날짜에 맞추기 위해서였든 다급하게 12월 3일로 앞당겨졌을 가능성 말이다.
어쩌면 하루 전날인 12월 2일 명태균의 변호사가 소위 황금폰을 검찰이나 민주당에 넘길 수 있다고 기자회견을 한 탓에, 혹은 민주당의 검사3인 탄핵에 열폭한 윤석열이 황급히 당겼을 가능성 등,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국정원장이 일찌감치 12월 4일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일찌감치 예약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분명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 홍장원 1차장에게 왜 전화했을까?
조태용 국정원장은 어쩌면 윤석열 정부내에서 가장 윤 대통령이 대하기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윤 대통령 1년 선배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선배다. 그래서 막 대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법대는 아니지만 서울대 3년 선배다. 1년 가까이 여러 차례의 설득에도 적극 동의하지 않으니 소극적인 범위 내에서 협조를 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불안한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원을 어떻게든 계엄세력 내에 두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Mission을 주는 방법을 택하였고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함으로써 거부할 수 없는 압력으로 느끼게 했다. 22:30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은 22:53 국정원장에 앞서 국정원 1차장에게 먼저 전화를 했고,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계엄세력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패착이 된 셈이다
영부인과의 문자 – 조태용,“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비상계엄 전날 김건희로부터 문자를 받는다. 조 원장은 계엄 전날엔 답신을 하지 않았고, 계엄 당일 답신을 했다. 어떤 내용이 오고 갔을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는 의미는 가끔은 문자를 주고 받았다는 뜻이다.
계엄날짜 변경 추론과 연결지어 본다면, 누군가는 국정원장 미국 방문 스케줄이 흐뜨러진 것에 대해 통보해주긴 해야 한다. 그 통보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 그리고 계엄선포를 앞둔 두 부부 모두에게 마뜩치 않은 존재로 여겨진 조 국정원장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문자를 보냈고 조원장은 장고 끝에 다음 날 아침 NCND의 답신을 보내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새로운 태풍의 눈, 자승과 용산의 관계
이번 사태와 관련 증인석에 두 번 서는 유일한 증인이 되었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일체의 흔들림이 없었다. 뼈속부터 정보요원인 홍장원 1차장은 재외 대사관에서 직함도 없이 현장 블랙요원으로 30년 근무했다고 한다. 홍콩 시장통에서 반바지에 '쓰레빠'를 신고 다니며 은밀히 임무를 수행했다고도 한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80년대 707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할 당시 부하들 중엔 1980년 광주에 다녀온 대원들도 있었고 그는 그 대원들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계엄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후배 707대원들을 다시 과거의 악몽 속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그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홍장원 1차장이 추가로 던진 화두, 조계종 자승 전 총무원장 사망 당시 국정원 요원 7~80명 투입을 용산이 지시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머지않아 사건으로 증폭될 ‘빙산의 일각’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맺는 말
조태용 국정원장은 결국 12월 4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12.3 내란의 진실을 추적하는 데에 국정원장의 12.4 미국행 비행기 예약일이 언제인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한 단초가운데 하나라 생각한다.
이상과 같이 조태용 국정원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적극 가담자는 아니다. 따라서 그를 계엄 핵심세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누락된 진실의 흔적이 보인다.
헌재 증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증언들 대부분 무척 한가하고 평상적인 얘기들로 가득차 있다. ‘방첩사를 도우라는 얘기’는 늘상 듣던 얘기라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있고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 그가 ‘비상계엄 진실규명의 또 다른 축’이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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