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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일 월요일

젤렌스키에게 굴욕 안긴 트럼프의 도발, 무서운 노림수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서막... 기로에 선 한국

25.03.04 06:49최종 업데이트 25.03.04 06:4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2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회담 중 설전을 주고 받았다.연합/EPA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모욕이었다. 트럼프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젤렌스키를 철저히 압박하며 굴욕을 안겼다.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대표로서 트럼프의 모욕을 감내하고 그의 비위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해 미국이 지원을 끊을 빌미를 제공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기습 전략에 젤렌스키는 본능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젤렌스키의 오만한 오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굴욕적 대응을 해도 어차피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을 중단할 명분을 위해 플랜B, C를 가동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미국의 짐짝에서 던져버릴 기회를 만들었고, 그의 의도를 전 세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미-우 정상회담에 러시아는 쾌재를 불렀고,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선택,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서막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수호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경찰이자 심판을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단순한 '이익 추구자'로 변모했다. 심판의 권한과 영향력을 쥔 채, 이제는 선수로 뛰겠다고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국제 기구와 협약, 조약을 무시하며, 다자 외교보다는 힘 있는 국가 간 거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공정성과 규범이 아닌 힘과 거래가 외교의 중심이 되면서, 국제 질서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에게 더 이상 미국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젤렌스키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미국의 지원을 원한다면, 미국의 입맛에 맞춰라." 이것은 단순한 협상이 아니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을 재편하는 선언이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은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다. 철저하게 이익을 계산했고, 필요 없다고 판단한 순간 과감히 버렸다. 트럼프의 행동은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흔드는 태풍이었다.

물론 과거의 미국이 이익을 계산하지 않았다거나,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쥐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미국이 체제수호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을 추구했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체제를 뒤흔들어 이익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변화는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미국이 만든 질서의 최대 협력자였고 동반적 수혜자였다. 하지만 이제 유럽은 미국의 본심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제 유럽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예정된 공동 기자 회견이 취소된 후 떠나고 있다.연합/EPA

러시아의 장기 전략, 유럽을 겨누다

이 분열을 가장 기다린 것은 러시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유럽과의 힘 대결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푸틴은 단기적인 승리가 아니라, 서방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고, NATO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손을 떼면, 러시아는 보다 대담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몰도바, 발트 3국, 그리고 폴란드에 대한 압박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군사훈련은 점점 서방 국경과 가까워지고 있으며, 크렘린은 유럽 내 친러 정당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치적 균열을 심화시키려 하고 있다.

푸틴은 단순한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이 미국 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그는 서방이 독자적인 방위 체계를 구축할수록, 그것이 러시아의 공격 명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동유럽, 30년 전쟁의 서막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다. 이는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30년 전쟁'과 같은 장기적인 안보 지형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1세기 전,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단발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청일전쟁(1894)에서 시작된 충돌은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그리고 태평양전쟁(1941)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일련의 전쟁은 동아시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결국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몰도바, 발트 3국, 폴란드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한 번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유럽 진출 전략은 일본의 대륙 진출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서방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크림반도 병합(2014)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2022)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러시아는 트럼프라는 유리한 변수를 맞이했다.

미국의 고립주의, 러시아의 기회가 되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러시아의 유럽 확장이라는 장기 목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공교롭게도, 1세기 전 일본이 동아시아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할 때도 미국의 고립주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미국의 외교적 개입이 줄어들게 되면서 일본의 확장 가능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았다. 1930년대에 들면서 미국은 본격적 고립주의를 채택하며 유럽과 아시아 문제에서 거리를 두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다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의 경쟁관계에서 발을 조금씩 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확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러시아의 유럽을 향한 서진 정책에 날개를 달아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푸틴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몰도바는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트란스니스트리아지역은 이미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몰도바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발트 3국도 안전하지 않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과거 소련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이면서 가장 가까운 사정거리 안에 있다.

물론 이들 발트 3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회원국이다.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하면 우크라이나와 달리 모든 나토회원국, 또는 일부 회원국이 자동 개입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략은 군사력 동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이미 20세기 초에 핀란드, 그리고 21세기초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익숙한 나라다.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흔들어가는 전략에 능숙하다.

우선 친러 정당을 만들고 정보전을 활용해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고, NATO의 대응 능력을 시험할 것이다. 서방이 단합하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더욱 대담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발트 3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군사 침공이 아니라, 사회적 균열이다.

동아시아의 지각변동

트럼프의 돌발적 행동이 유럽에 충격을 준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마지노선이 아니라, 첫 번째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100년 전 동아시아의 대혼란이 단지 역사 속의 일만은 아니다.

일본이 1894년 조선과 만주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청나라를 패퇴시킨 후, 러시아와 충돌했고, 이후 만주사변을 거쳐 중국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역시 서방의 대응을 시험하며 서서히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20세기 초 국제연맹이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결과,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럽이 지금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길을 밟을 수도 있다.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유럽 전체의 재편이다. 그는 군사적 충돌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분열을 유도하고 새로운 안보질서를 형성하려 한다. 동유럽의 안보 질서가 재편되는 순간, 유럽은 더 이상 과거의 유럽이 아니다.

유럽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100년의 기득권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검증 받는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기로에 선 한국

그렇기에 동북아시아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대만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가 되었고,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화하며 안보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자주국방과 외교적 자율성이 강조된다. 일본의 재무장은 이제 한미일 공조 체제 속에서의 군사력확장이라기보다, 미국의 개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독자적인 움직임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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