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47] 고추와 호두 이야기
한자어에서 유래한 단어를 찾아보면 희한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말의 특징 중의 하나가 모음조화 현상이 잘 발달했다는 것인데 그것에 역행하는 구조가 자주 보인다. 모음조화의 예를 보면 ‘찰랑찰랑’ ‘출렁출렁’ ‘깡총깡총’ ‘껑충껑충’ 등이 있다. 즉 같은 부류의 모음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와서 ‘깡충깡충’도 표준어로 삼았으니 모음조화 현상이 깨져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름다와’보다는 ‘아름다워’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추는 원래 한자로 ‘고초(苦草)’라고 했다. 맵기 때문에 괴롭다고 해서 ‘괴로울 고(苦)’ 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류의 한자어는 식품에 유난히 많다. 그중에 호두도 그렇다. 한자로는 ‘호도(胡桃)’라고 한다. 주로 호두나무의 열매(속살에 지방이 많고 맛이 고소하여 식용하며 한방에서는 변비나 기침의 치료 등에 쓴다)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호도라고 하면 비표준어다.
그러므로 작두·호두·고추·앵두 등의 단어는 모두 양성모음으로 발음하던 것이지만 어느 시절부터인가 음성모음이(ㅜ)이 주를 이루는 단어로 바뀌고 말았다. 이제는 우리말의 특징이 모음조화에 있다고 하는 말도 서서히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언어는 항상 변한다. 그래서 역사성·사회성이 있다고 한다.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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