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령 기자
- 입력 2023.08.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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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
실제 사례 기반한 ‘D.P.2’, 윤 일병부터 22사단 총기난사까지
국가 책임은? “명백한 과실에도 국가 배상 인정 어려워”
“계란으로 바위 친 ‘흔적’이 중요… 그러다 쪼개진다”
‘D.P.2’의 성공에 일부는 코웃음을 친다. 현실은 달라졌는데 드라마가 과장했다는 식이다. 극의 배경 또한 2014년. 그때와 달리 가혹행위가 많이 사라졌고 장병들은 휴대전화를 쓴다. 그렇게 이 드라마를 역사의 한 단면으로, 지나간 추억으로 넘기면 되는 걸까. 군 관련 자문 등 ‘D.P.2’ 제작 과정에 참여했던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드라마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안전장비 없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 이후 군의 은폐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외압을 폭로한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항명’ 혐의로 입건됐고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는 국방부가 회수해갔다. 그 결과 처음 수사단 조사엔 포함됐던 해병대 1사단장의 범죄 혐의가 빠진 국방부 자체 조사가 지난 21일 나왔다. 1사단장을 포함해 관계자 8명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하며 “국방부의 짜깁기”라고 비판한 군인권센터 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7일 김형남 사무국장에 ‘D.P.2’와 똑같은 질문을 물었다.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현실 사례 드러내는 ‘D.P.2’ “군의 조직적 은폐 노력”
D.P. 시리즈의 에피소드는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한다. 군의 구조 지연으로 사망해 책임 문제가 불거졌던 김루리 총기난사 사건은 2015년 육군 22사단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시즌1의 조석봉 일병 역시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가혹행위로 세간에 충격을 줬던 2014년 ‘윤 일병 사건’에서 모티브를 땄다.
“(윤 일병 사건은) 조직적 은폐 노력이 드러났던 사건이다. 선임병에게 구타를 당해서 죽었는데 사건 초기엔 냉동만두를 먹다가 질식사 한 걸로 둔갑돼 있었다. 제보와 양심선언을 통해 군인권센터가 사건 발생 4개월 뒤에 진실을 폭로할 수 있었다. 2021년 고 이예람 중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공군 공보장교가 성추행, 2차 피해가 아닌, 이 중사가 부부싸움을 하다 죽은 거라는 헛소문을 기자들에게 퍼뜨렸다. 그 장교는 얼마 전 사자명예훼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관련 기사 : 이예람 중사 죽음 ‘반전’시키려 상상 이상의 언론플레이에 재판부 철퇴]
군 부조리를 감추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벌였던 공보장교는 지난 6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군 은폐 의혹은 2023년 8월 지금도 논란이다. 지난 7월 급류에 떠내려간 ‘채 상병’에 대한 군·정부 은폐 의혹은 현재 정치권까지 번졌다. ‘D.P.2’의 배경이었던 2014년 이후 9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군의 조직적 행태에 진실공방이 벌어진다. 군 특유의 폐쇄적 문화와 책임 회피 분위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채 상병 사건이 이렇게까지 꼬일 일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있다. 너무 안타까운 사고였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분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윗선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이 서면서 정상적 절차에 따라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항명죄로 압수수색까지 하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남는 건 ‘국가 책임’ 문제, 거대한 시스템 맞선 개인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안 돼요? 깨져도 흔적은 남잖아요. 바위에 묻을 테니까.” 극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신혜연 간사의 대사다. ‘탈영’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나열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거대한 시스템을 상대로 한 개인들의 분투가 하나의 점을 목표로 달려간다. 그 종착점의 이름은 ‘국가의 책임’이다.
“탈영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괴롭힘을 당했을 수도 있다. 살기 위해 군대를 벗어나지만, 문제는 탈영이 ‘이유’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휴전선으로 막힌 반도 국가에서 영원한 탈영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부대로 잡혀가는데 정작 탈영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D.P.는 개인의 몸부림이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을 만나 무의미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필요한 건 ‘시스템의 변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시즌2의 마지막을 장식한 법정씬처럼 국가를 상대로한 유족들의 소송은 실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쉽게 끝나진 않는다. 군에서 민간병원을 보내주지 않아 병명도 모른 채 급성백혈병으로 2016년 사망한 홍 일병의 경우 유족들이 2019년 소송을 제기했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명백한 국가의 과실이 있다. 밖에 있었다면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방부는 군의관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하다가 지금은 헌법상 이중배상 금지 조항에 걸린다고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책임을 인정받기는 구조상 쉽지 않다. ‘이중배상 금지 조항’에 따라 유족들이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 책임을 묻지 못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금지한 국가배상법 규정은 베트남전 파병 시기에 도입됐다. 당시 국력 기준으로 재정적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진 것과 사회적 참사·희생에 대한 경제적 배상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개정할 때가 됐다”며 개정 의지를 밝힌 바 있지만 이후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군에서 괴롭힘으로 자살한 사람은 순직 인정받기도 어려웠다. 자살해서 국가에 손해를 끼친 군인을 어떻게 국립묘지에 안장하냐고 핏대 세우던 국회의원도 있었다.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유가족들은 사망 사건 하나를 마무리하는 데 최소 5~6년이 걸린다. 사망 원인 밝히고, 책임질 사람 처벌하고, 보훈을 받는 과정까지다. 순조롭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소송도 대부분 많이 한다. 정치인들이 무슨 일 있을 때마다 국립묘지 찾아가서 참배하는데 사실 유가족들은 어이없게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군 복무하다 안타깝게 떠난 호국영령들은 거기에 없고, 법원에서 국가랑 재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도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하는 상황이다. 흔적이라도 남겨야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군은 독자적인 법원, 검찰, 경찰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장관이나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 독립된 사법·수사기관이 아닌 거다. 범죄를 수사하는데 수사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너무 많다. 전쟁 중도 아니고 평상시에 군이 독자적인 특수법원, 검찰, 경찰 조직을 갖추고 있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평시에는 군의 사법, 수사기능을 없애고 민간에서 다 맡게 하자는 주장이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계에서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 국방부가 너무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게 결국 ‘채 상병’ 수사 외압이란 기막힌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거다.”
‘D.P.2’ 단순 과거 일 아냐… 변화 위해선 관심 필요
‘D.P.2’를 ‘그땐 그랬지’하며 흘러간 과거로 넘겨선 안 되는 이유다. 지금도 누군가에겐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잔혹하다. 김 사무국장은 지금도 1년에 100여 명의 군인이 복무 중 사망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이 자살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군대 안에서 죽음으로 내몰린다. 내가 겪은 군대가 문제 없었다고 해서 일반화할 수 없다. 2014년과 비교하면 지금은 구타·가혹행위가 많이 없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결국 ‘윤 일병’ 등의 죽음을 딛고 만들어진 거다. 내가 지낸 좋은 군대는 누군가 누리지 못한 시간에 빚진 거라고 생각하면,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 쉽게 할 수 없다.”
그래도 드라마는 ‘절반의 승리’로 끝난다. 안준호, 한호열, 박범구, 임지섭 등의 노력으로 국가 배상 책임이 ‘일부’ 인정됐다. 무력하게 끝났던 시즌1과 달리 군인권센터 등의 활동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은 ‘D.P.2’의 카피를 ‘결코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이라고 적었다.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나아지고 있어요. 그 힘이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한준희 감독이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활동가는 대중의 관심을 말했다. “뭐라도 해야 바뀐다”는 가능성을 암시했으니 그 틈을 어떻게든 열어야 한다. 각자의 노력으로 답을 찾아 변화를 일군 ‘D.P.2’의 메시지다.
“바위를 친 ‘흔적’이 남는다는 게 중요하다. 그걸 보고 누군가 돌도 던지고, 정도 박고, 그렇게 바위를 쪼개는 거다. 군대를 바꾸려면 군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역했다고 남의 일이 아니고 안 간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친구, 내 자식, 내 사랑하는 사람, 전 국민 절반이 군대를 가는 나라에서 군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군대를 경험한 이들은 결국 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산다. 폭력과 왜곡된 조직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거대한 병영이나 다름없다. 많은 시민들이 군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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