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채형복 교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을 꿈꾸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를 소환했다. 연재 ‘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를 11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윤석열 검찰독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편집자]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을까?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는 “대한민국을 공정과 상식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그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의 나라’는 모든 ‘국민’이 법과 제도에 따라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그는 ‘법과 질서가 확립된 나라’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의 꿈이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공정하고, 상식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부가 운영되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이외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다른 유형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되는 ‘적폐세력’으로 몰아갈 것만 같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전문과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전문)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대부분의 논란은‘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로 보는 견해에서 제기된다. 헌법은 어느 규정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본다고 해도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평적 내지는 병렬적 관계에 있다거나 민주주의는 ‘자유’를 전제로 유지되는 정치체제로 보아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를 지향하므로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그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69주년 축사에서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무례하며 폭력적이다.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총 494번의 ‘자유’를 말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2022년 5월 10일 취임식부터 2023년 4월 29일까지 84개의 연설문을 기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1년간 ‘자유’ 발언을 성격별로 분류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분석에 따르면, ‘자유’라는 발언은 [기업·시장(신산업, 규제완화 등) > 외교(한미동맹, 한일관계, 자유진영 등) > 안보(국방, 북한 위협 등) > 시민(기본권, 민주주의 등) > 자유 전반(시민, 시장, 안보, 외교 전반)]의 순으로 발화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는 주로 기업과 시장, 한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한 외교, 안보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시민,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자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는 기업과 재벌 등 부자들을 위한 권리일 뿐 소시민과 약자들을 위한 권리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일반시민들이‘자유’에 공명하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인식하는 이유이다.
윤석열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받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지·운영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치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집권 초반기에 모든 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윤석열 정부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간첩단사건으로 공안정국의 포문을 열더니 곧바로 건폭이니 귀족노조라며 노동조합 때리기에 났다.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단체는 법을 위반하는 사례는 하나도 없고, 진보성향의 단체는 모두 비리집단으로 보이는 것 같다. 시대가 과거로 역행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지난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의 결과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소위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대구경북의 지식인들도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후 이와는 별도로 경북대 소속 지식인들이 따로 성명서를 내었다. 얼마 후 <이대학보> 학생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면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개인 신상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두렵지 않으세요?”란 내용이었다. 개인인 이상 왜 겁나고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두려운 것이 바로 청년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국가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 자유와 법치’가 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을까?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한자어로 ‘이형거형’으로 표기되는 이 말은 순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연원이 오래되었다. 순자는 인치(人治) 중심의 통치지배구조로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법치(法治) 중심의 제도에 기반한 통치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순자는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법의 남용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법치보다는 의치(義治)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자의 법치사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법가였다. 상앙은 신상필벌에 의거한 엄격한 법치를 통해 강력한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한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는 이형거형에는 그가 지향하는 법치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한비자는 상앙의 사상을 받아들여 형벌을 엄하게 집행하여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결국 형벌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형벌을 엄히 집행하면 범죄가 줄어들고, 범죄가 줄어들면 형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이형거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일까? 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범죄 예방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형벌을 엄히 집행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형벌로써 형벌을 없앤다고 하여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형벌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만, 범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범죄가 사라질까? 형사범죄학의 오랜 과제이기도 한 이 말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다양하며, 형벌만으로는 이러한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실제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에는 가난(빈곤), 실업, 교육 부족, 가족해체, 사회불평등,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파생되는 이러한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형벌을 없애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한 형벌을 가하는 대신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난 등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해결하면 범죄의 발생율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재교육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이형거형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법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사회질서의 안전이 필요하다는 그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데에는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형거형에 의거한 엄벌주의 혹은 엄형주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은 제도이다. 특히 이형거형은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해를 가함으로써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그러니 법치주의를 앞세워 법을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컸다는 점은 인정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 말하는 윤석열 검사는 멋있었다. 그 여세를 몰아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압승하지 못할 현실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5년이란 짧은 임기 동안 ‘공정과 상식,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가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고 싶겠지. 그 조급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안다. 그래도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여기서 독단과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가 곧바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에게 공자와 맹자의 아래 말을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인(仁)의 실천 방법으로 능근취비(能近取譬)를 강조하면서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말한다.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에 그치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겼다.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가까이 자기에게서 취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루어 간다면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논어 옹야 6:28)
제선왕이 물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도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하늘의 뜻을 즐기면 천하를 차지할 것이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면 제나라를 보존할 것입니다. 옛 시에
두려워하라 하늘의 무서움을!
그러면 자신을 보존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맹자 양혜왕장구 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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