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분야 의무지출 충당하기도 빠듯…취약계층 사회안전망 부실화 우려
- 조한무 기자 chm@vop.co.kr
- 발행 2023-08-23 17:17:56
23일 정부와 여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지출 증가율을 3%대로 두고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번 달 말 정부 예산안을 확정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다음 달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올해 예산은 638조 7천억원으로, 내년에 3%대 증가율이 현실화한다면 660조원 안팎이 된다. 역대 보수 정부와 비교해도 저조한 증가율이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마저 지출을 줄이면 사회안전망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회복지 예산 구조를 살펴보면 증가율 3%대 긴축 예산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예산 증액 상당 부분은 ‘자연 증분’ 잠식
사회복지 예산 대부분은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고령화 인구구조와 물가 상승 등에 연동돼, 이른바 ‘자연 증분’이 발생한다. 법률에 따라 지원 대상과 규모가 결정돼, 정부가 임의로 지출을 조정할 수 없다. 재량지출은 정부 의지대로 예산을 감액하거나 증액할 수 있다. 의무지출 비중이 높다는 건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따른 예산 확대보다 자연 증분의 영역이 크다는 의미다.
올해 예산을 통해 내년에 예정된 긴축 예산의 문제점을 비춰볼 수 있다. 올해 사회복지 예산은 206조원이다. 지난해 대비 5.7% 늘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해 연속 5%대 증가율에 그쳤다. 2007년부터 17년간의 연간 증가율을 보면, 6% 미만 증가율은 박근혜 정부 시기이던 2013년과 2016년을 포함해 총 4개년도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연평균 증가율은 7.5%를 넘었다. 문재인 정부는 10.4%였다.
올해 사회복지 분야 의무지출은 144조 6천억원으로, 해당 분야 예산 총액의 70.3%를 차지한다. 규모가 가장 큰 건 국민연금으로, 36조 2천억원이 편성됐다. 이어 공무원연금(19조 8천억원), 기초연금(18조 5천억원) 순이다.
정부는 자연 증분의 의미를 확대하며 복지 예산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8월, 올해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노인층의 안정적 소득보장을 위해’ 기초연금 지원 단가를 인상했다고 밝혔는데, 기초연금은 정부 의지와 상관없이 증액되는 대표적인 의무지출 사업이다. 기초연금 지급액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오른다. 정부가 홍보한 기초연금 인상의 실상은 소득보장이 아니라 물가상승이다.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공적연금도 물가상승률에 연동된다.
또한, 기초연금의 지급 대상자는 65세 이상 고령자로 정해져 있다. 고령화 추세가 강해질수록 예산 총액이 커지는 구조다. 다수의 의무지출 사업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다.
자연 증분은 복지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성격이다. 물가상승률에 비례한 지급액 인상은 실질적인 지원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예산 증액분은 1인당 지급액 인상과 무관하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사회복지 예산의 자연 증분은 고령 인구가 늘고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한 사람에게 가는 돈이 느는 건 아니다”라며 “그마저도 물가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으면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인당 지급액을 조정할 때 물가상승률이 아닌 기준 중위소득을 지표로 하는 사업도 있다. 매년 산정되는 기준 중위소득은 70여개 복지사업과 연동돼 개인별 지원금과 지원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매년 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따른 자연 증분이 발생한다. 가령 생계급여는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인 가구에 지급된다. 지급액은 기준 중위소득 30%에서 가구소득을 뺀 금액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내년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기존 207만 7,892원 대비 7.25% 오른 222만 8,445원으로 상향했다. 생계급여 지급 기준도 기준 중위소득 30%에서 32%로 상향했다. 4대 급여(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1인당 지급액과 지원 대상자가 늘면서 관련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내년도 예산 증가율을 3%대로 낮게 잡으면, 예산 증가 상당 부분이 자연 증분에 잠식된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 증가율을 3%대라고 가정하면, 그 규모는 212조 2천억원~214조원이다. 올해보다 6조 2천억~8조원 증액되는 셈이다. 정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연평균 의무지출 증가율 7.5%를 올해 사회복지 분야 의무지출에 적용하면, 내년에는 155억원이 된다. 올해보다 10조 8천억원 증가한 규모다. 3%대 예산 증가율로는 자연 증가분을 충당하는 데만 최소 2조 8천억원이 더 필요하다. 통상 사회복지 예산은 총지출 증가 폭보다 좀 더 늘리는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재량지출을 위한 여유분은 극히 제한된다.
사회복지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재정정보원에 따르면, 2020년 63.1%이던 것이 2021년 65.1%, 2022년 66.8%로 치솟더니 올해 70%를 돌파했다. 내년에는 긴축 예산 탓에 이 수치가 보다 급격하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 중위소득을 예년보다 큰 폭으로 인상한 건 진전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예산 증가율이 3%대에 머문다면 다른 복지 사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상당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취약계층 위한 재량지출 삭감 우려
사회복지 재량지출은 ‘사실상’ 축소가 아니라, 절대 금액이 감액될 우려가 있다. 올해 예산이 축소된 사업이 내년에 다시 감축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정부가 올해 예산안에서 유독 큰 규모로 감액해, 정책 방향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분야가 있다. 공공임대주택 지원이다. 해당 사업들의 올해 예산은 총 17조 5천억원으로, 지난해 22조 5천억원에서 5조원가량 삭감됐다. 예산안이 발표됐을 당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 정부는 장마철마다 침수 피해를 겪는 반지하 거주민을 위한 대책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증액이 요원하다. 정부는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인데, 이를 위한 다가구매입입대 예산은 올해 들어 3조원 이상 줄었다.
노인 부문에서는 올해 요양시설 확충 사업 예산이 크게 줄었다. 올해 해당 사업 예산은 54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0억원 이상 감소했다. 예산 대부분이 증개축과 개보수로 편성됐다. 고령 인구 증가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예산 감액으로 시설 신축이 제한되고 있다. 현재 국공립 노인요양원은 250여 개소로, 장기요양 인정 노인 약 4천명당 1개소에 불과하다. 올해 시설 신축 공사는 8건에 그쳤다.
노인 부문 재량지출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일자리 지원 사업도 감축이 예상된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노인일자리를 두고 ‘질 낮은 일자리’라고 비난해왔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감축했으나, ‘패륜 예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된 바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어린이집 확충 예산도 불안하다. 정부는 해당 사업의 올해 예산을 117억원(19.3%)이나 삭감한 전력이 있다. 정부는 공보육 이용률을 지난해 35% 수준에서 2026년 5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계획을 뒷받침할 예산은 쪼그라들고 있다. 내년에도 예산 삭감이 이어진다면 공보육 강화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대상자가 적은 소외계층 지원 사업도 감액 가능성이 있다. 한부모가족이 언급된다. 관련 사업으로는 한부모가족자녀 양육비 지원, 한부모가족 복지시설 지원, 청소년한부모 아동 양육·자립 지원 등이 있다. 올해 예산은 양육비 지원을 제외한 모든 사업이 감액됐다. 지난 5월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을 방문해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와 주거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직 예산안이 나오지 않아 삭감되는 사업을 특정할 수는 없으나,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의무지출을 감안할 때 3%대 증가율이라고 하면 재량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연구위원 말대로, 특정 사업의 예산 감축은 추정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 선거가 있는 만큼, 특정 사업에서 눈에 띄게 예산을 줄이기보다는 여러 사업에 걸쳐 삭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삭감 사업과 삭감 폭은 차치하더라도, 전반적인 재량지출 사업 예산의 감액은 불가피하고 이는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석진 교수는 “자연 증가분을 다른 사업의 예산 삭감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며 “어디서 얼마나 줄일지는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상자가 투표에 영향을 덜 미치거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른바 ‘약한 고리’가 타겟이 될 것”이라며 “힘든 사람들끼리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관되게 취약계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기조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 재정 운용은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재정 운용 기본 방향에 대해 ‘서민·사회적 약자에 대한 민생지원에 만전’,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자 지속’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노인·취약아동의 맞춤형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쪽방·반지하 거주자의 정상거처 이주를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는데, 긴축 예산으로 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3월 발표한 예산안 편성지침에서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했다. 다만, 재정혁신이라는 명분으로 재량지출을 1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밝혀 우려를 더했다. 집행이 부진하거나 성과가 미흡한 사업을 재검토한다는 방침인데, 사회복지 예산 축소의 빌미로 활용하지는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코로나 위기 대응 국면에서 한시적으로 증액된 사업을 정상화하는 등 지출을 정비하겠다면서, 고용유지 지원과 소비회복 프로그램 등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도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고용 지원과 소비 촉진 사업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취약계층 보호 강화 방안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 강화를 들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의무지출의 자연 증분을 복지 예산 확대로 내세우면서, 재량지출 축소를 무마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 침체 속 재정 역할 방기하는 정부
역대 예산안과 비교할 때 3%대 증가율은 최저 수준이다. 예산 증가율이 3%대에 그치는 건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05년 이후 증가율이 3% 미만인 해는 2010년, 2016년 두 해뿐이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정부 감세 정책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친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앞세워 재정 긴축을 강행했다. 2016년에도 박근혜 정부 들어 지속된 감세 정책으로 4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는 세수 확충 방안 없이 지출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 감세로 세수 부족에 처하자, 예산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성장률과 견주어도 3%대 증가율은 낮은 수준이다. 최근 10년간(2013~2022년) 평균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은 4.2%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3.9%였고, 올해는 4%대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경상성장률만큼은 예산을 늘리는 게 통상적인 범위의 재정 운용이라고 설명한다. 경상성장률에 비례해 세수가 늘고, 세수가 늘어난 만큼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경상성장률을 하회하는 지출 증가율은 ‘균형 재정’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평가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3%대 증가율은 사실상 ‘마이너스 예산’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3.3%로 전망했다. 최소한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예산이 늘어야 실질적인 규모가 유지가 된다. 예산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밑돌면 예산의 실질 가치는 축소되는 셈이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물가가 오르면 사업의 지원 대상자가 받는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증가율 3%대의 예산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찬 회장도 “정부는 취약계층 예산을 축소하지는 않겠다고 하지만,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실질적인 사회복지 지출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존 계획에도 부합하지 않는 규모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발표한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도 지출을 669조 7천억원으로 제시했다. 3%대 증가율이면 당초 계획보다 10조원가량 쪼그라드는 셈이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 재정의 역할이 커지고 있어, 긴축 예산은 부적절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당초 올해 ‘상고하저’의 경기 흐름을 전망했으나,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미미하고 반도체 업황 반등이 지연되면서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물가 상승으로 서민 부담이 가중되고 민간 수요와 투자 부진이 겹쳐, 정부의 재정 확대 외에는 경기 반등 요인이 불확실하다. 정부는 대기업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한다는 구상이었으나, 미국발 자국 우선주의 여파로 주요 기업 투자는 미국 등 외국으로 향하는 실정이다.
김유찬 회장은 “통상 정부는 경기 상황 안 좋을 때 재량지출을 늘려 전체적인 경제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려고 노력한다”며 “바로 지금이 재량지출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시기에는 정부가 기능을 해야 한다”며 “재정 여건이 안 좋다는 이유로 지출을 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경기 상황과 맞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세은 교수는 “경기 회복 조짐이 뚜렷하지 않고 수출도 안 좋아서 정부 재정이 받쳐줘야 하는데, 정부가 경기 부양 역할을 발휘하지 않으면서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정부의 재정 운용이 ‘건전성’이라는 이념에 지나치게 매몰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세수가 감소하는 가운데, 국채 발행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지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건전성을 강조하더라도 최소한의 재정 역할은 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방기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우석진 교수는 “경기 상황을 볼 때 예산 증가율 4~5%는 돼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10조원가량 줄였다”면서 “감액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 기조에 따라 최소한의 예산 규모보다 더 늘리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는데, 증가율 3%대는 이념적인 이유가 아니고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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