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태우지 말고 치르게 하자
일상생활에서 본래 뜻을 잘못 알고 쓰는 표현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친구나 직장 동료 간 대화, 언론 매체 등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아무개가 유명해졌다는 의미로 ‘~가 유명세를 탔다’란 표현이 적지 않게 목격된다. 유명세(有名稅)의 ‘세’는 ‘세금’을 의미한다. 즉 ‘세상에 널리 알려진 탓에 당해야 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이르는 말이다. 유명해지면 그만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유명세를 타다란 표현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은 유명세의 ‘세’를 ‘稅’가 아닌 권세·세력을 뜻하는 ‘勢’로 여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언어는 고착되지 않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표준어가 아니었다가도 대중이 많이 사용하면 표준어가 되곤 한다. 그런 예 중의 하나가 ‘개발새발’이 아닌가 싶다. 원래는 ‘괴발개발’이었다고 한다.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고양이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괴발개발을 발음하기 불편해서인지 대중이 개발새발이라고 하니 어느새 개발새발을 표준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고양이와 개의 발이 개와 새의 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단어를 쓰는 언중이 언어 변화에 미치는 힘이다. 특정 전문가나 당국도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그래도 기준은 필요하다. 혼란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타다’란 표현이 언젠가는 표준말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기 때문에 ‘유명세를 치른다’라고 써야 맞다.
‘금도(襟度)’도 수시로 적확하게 쓰이지 않는 단어 중 하나다. ‘옷깃 금·법도 도’로 이뤄진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이다. ‘그는 친구의 배포와 금도에 감동했다’ 정도로 써야 맞다. 그러나 ‘금도를 지켜달라’ 등의 표현처럼 원뜻과 달리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도의 금 자를 ‘금할 금(禁)’으로 여겨서 이런 표현이 나온 듯하다. 금지하는 선을 넘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금도(禁度)란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표준말로 공인되면 몰라도 ‘금도를 지켜라’는 현행 규범 표기가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도 마찬가지로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풀어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과유불급은 『논어』의 선진편에서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 중에 나오는 표현이다.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자성어로,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자 ‘猶’는 ‘오히려’가 아닌 ‘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모자람만 못하다와 모자람과 같다는 그 함의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명세, 금도, 과유불급을 원뜻과 다르게 쓰는 경우는 한자의 뜻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잘못 전해 들어서 나온 현상이다.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엄밀하게 말하면 외래어의 일종인 한자어를 따로 분류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자어가 언어생활에서 많이 등장해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몰라 곤란을 겪는 일이 꽤 있는 게 현실이다. 순우리말을 지키고 가꿔나가는 노력 속에서도 한자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쓰고자 하는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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