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2년 7월 21일 목요일

[박귀천의 일과 법]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손배소’가 법과 원칙인가

 

  •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발행 2022-07-22 08:59:27
  •  


    수십년을 일한 숙련 노동자도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그동안 삭감되었던 임금을 삭감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파업을 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파업을 둘러싼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없기를, 장기간 옥쇄농성과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누구도 다치지 않고 교섭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면서 뉴스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 보면 대통령, 장관, 보수정치인, 보수언론 등은 모두가 입을 모아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단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이번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파업에 대해서 주로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불법파업이라고 단언하는 기사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기사 내용은 노동조합이 왜 파업을 하게 되었는지, 노동조합의 주장은 무엇이고 회사측 주장은 무엇이며, 왜 교섭이 결렬되었는지 등에 대해 분석하기보다는 주로 회사가 입는 손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것이다.

    0.3평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는 끝장 투쟁 중인 유최안 부지회장의 모습. ⓒ금속노조 제공

    오늘날 법치국가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보장되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원래 그 속성이 업무에 대한 저해, 그로 인한 사용자의 손해 발생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지기 어려운 사용자와 대등한 교섭력을 실질적으로 확보하여 적정한 근로조건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떠한 파업이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관한 판단은 노동법적으로 ‘파업의 정당성’에 관한 판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파업은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합법적인 파업이 되고, 합법적인 파업이 된다는 것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및 업무방해죄 등의 형사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파업의 정당성 판단은 법학자나 법조인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는 오랫동안 법원 판례를 통해 축적된 법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파업의 정당성 판단은 법학자나 법조인도 쉽지 않은 문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첫째, 파업의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여야 하는데 이는 보통 노동조합을 의미한다. 둘째,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법원은 대체적으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에 대해서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요건들을 합법적으로 준수했어도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는 파업의 정당성은 부정되기 쉽다. 셋째, 파업의 시기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단체교섭의 자리에서 그러한 요구를 거부하는 회답을 했을 때 시작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원의 찬성결정을 법령으로 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장일치로 박수를 치며 파업에 찬성하더라도 조합원들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가 없다면 파업의 정당성은 부정된다. 넷째, 파업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폭력 행사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 2001.10.25., 99도4837 등). 유의해야 할 것은 노조의 요구사항이 과도하다는 점만으로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판례에 의하면 노조의 요구사항이 과도하더라도 이는 교섭을 통해 조정해야 할 문제이지 파업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파업기간이 장기간인지, 단기간인지도 파업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판단 요소는 아니다.

    또한, 위에서 말한 파업의 정당성 판단을 위한 각각의 요건들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상당히 까다로운 여러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처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원청업체 사업장을 점거하는 형태의 파업을 하는 것이 정당성이 있는지 여부는 첨예한 다툼이 있는 쟁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 대법원은 원청업체 사업장 안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조원들이 파업을 하는 것의 정당성을 인정한바 있다(대법원 2020.9.3. 선고 2015도1927 판결). 대법원은 “도급인(원청)의 사업장은 수급인(하청) 소속 근로자들이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로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라고 하면서 “쟁의행위의 수단인 파업은 도급인 사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도급인은 수급인 소속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아니지만, 수급인 소속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로 일정한 이익을 누리려 자신의 사업장을 근로 장소로 제공한 것”이라며 “그렇다면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행위로 일정 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해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요건들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면
    ‘불법’이 되고 노조는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판례에 따르면, 위에서 말한 요건들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파업은 정당성이 부정되어 노동조합 및 조합원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사법부에 의해 합법적인 파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조문과 판례들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각종 법리들을 지뢰밭 피하듯이 잘 피해가야 한다. 아니면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함과 동시에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서를 받고, 업무방해죄를 위반한 전과자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즉, 한국에서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노조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손해배상청구와 형사 판결에 의한 구속 등의 무시무시한 법적 효과로 이어진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에 대해 노동자가 평생을 일해서 받는 임금 전액을 모아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실제 발생된 손해를 보전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지 노조활동과 파업을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는 법적으로는 소권남용, 즉,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간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를 받은 조합원들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여러 차례 발생 되어 2017년에는 영국 등 해외 사례를 참조하여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린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 법안은 노조가 아닌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 노조 규모에 따른 손해배상액의 상한선 규정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국제학술대회에서 영국의 노동법학자인 유잉(Ewing) 교수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거의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에 대해 답을 제공할 수 있는 연구를 누구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경영자들이 판단한 것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 함께 일할 파트너인데 건설적인 관계를 위해서 굳이 과거를 문제 삼기보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영국에서 쟁의행위 참여자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하는 법은 1875년에 폐지됐고, 현대 유럽 국가가 파업을 다루기 위해 형법을 이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협상을 재개하고 있다. 노사 협상은 전날 마라톤 협상으로 극적 타결 기대감이 높았지만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022.7.21 ⓒ뉴스1


    손배소는 손해를 보전받기 위함보다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파업의 정당성은 결국 사법부에 의해 최종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법적 판단의 문제이다. 그간 판례를 통해 축적된 여러 기준에 따를 때,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이 불법인가라고 묻는다면, 현재로서는 적어도 불법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간 알려진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파업의 주체, 목적, 절차에서 정당성을 부정할만한 점은 발견하기 어렵고, 다만, 도크 점거라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사정들을 면밀히 따져본 후 판단해야 할 쟁점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만 드러난 사실을 통해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전후사정과 맥락에 대한 검토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번 파업의 정당성 판단 등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선산업 및 조선업 종사 노동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근본적인 대책, 더 나아가 원하청 노동자간 차별 및 격차 해소 방안 마련을 위해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